'청문회법 자동폐기론' 급부상···"다수 헌법학자 동의"

  • 이른바 '상시 청문회법(정의화법·국회법 개정안)'의 운명은 결국 대통령의 '보류거부'를 예외적으로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19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는 오는 29일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이 법안에 대해 특별한 제스처를 취하지 않을 경우, 해석에 따라 자동폐기가 불가피할 것이란 얘기다.

    헌법학계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상황에서 19대 국회가 종료될 경우, 보류거부적 효과가 발생해 법안은 결국 자동폐기될 것"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모양새다.

    '보류거부(Pocket veto)'란 헌법상 대통령 거부권의 일종으로, 국회의 폐회로 인해 대통령이 지정기일안에 법률안을 국회에 환부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 대통령이 그 법률안을 거부하기 위해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법률안이 자동적으로 폐기되는 것을 말한다. 

    미국 헌법은 '보류거부'를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예외적 상황에서는 '보류거부'가 인정된다는 게 학계의 다수설이다.

    논란의 '상시 청문회법'이 정부로 이송돼 청와대의 선택에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25일 해외순방으로 출국한 뒤 19대 국회 임기가 종료(29일)된 후인 내달 5일 귀국, 거부권 행사가 여의치 않다는 점에서 자동폐기론이 급부상했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이덕연 교수(헌법)는 24일 기자와 통화에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예외적으로 사실상 보류거부적 효과가 발생해 법안은 19대 국회 끝나는 동시에 자동폐기될 것으로 본다"며 "대부분(헌법학자들)이 그렇게 볼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은 정부에 이송돼 1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해야 한다(헌법 제53조 1항). 헌법은 대통령이 이 기간 내에 공포나 재의의 요구를 하지 아니한 때에도 그 법률안은 법률로서 확정된다'고 (53조 5항)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입법 회기 중에 해당된다는 게 다수의 헌법학자들의 해석이다.

    이 교수는 "의회 회기 변경은 선거결과에 따라 대의(代議) 구도가 완전히 바뀌는, 결정 주체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며 "그런 경우 '회기계속의원칙'이 달리 적용돼 예외적으로 보류거부 효과를 인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회기불계속의원칙'이란 회기 중에 처리되지 않은 의안, 동의는 그 회기가 끝남과 동시에 소멸하고, 차회의 회기로 이월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말하는 것으로, 미국 등 다수의 선진국이 이 원칙을 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원칙적으로 '회기계속의원칙'을 택하고 있으나 국회의원 임기 종료 등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회기불계속의 원칙을 취하고 있다. '국회에 제출된 법률안 기타의 의안은 회기중에 의결되지 못한 이유로 폐기되지 아니한다. 다만, 국회의원의 임기가 만료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한 헌법 제51조의 단서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20대 국회 회기가 시작되는 오는 30일부터는 회기불계속의원칙에 따라 법안을 공포하지 않으면 해당 법안의 효력이 상실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상시 청문회법'에 대한 자동폐기가 확정될 경우 입법부와 행정부간 책임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이덕연 교수는 "국회가 지금과 같이 회기 종료를 앞두고 촉박한 일정 속에서 법안을 만들어 정부로 이송할 때에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여의치 않은 불가피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예외적인 급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국회가 법률제정 일시에 여유 기간을 두고 법을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논란의 상시 청문회법을 급박하게 통과시킨 입법부의 책임도 상당하다는 지적으로 풀이된다.

    이 교수는 "이 경우(대통령이 아무런 제스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제도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입법적으로 대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제도 외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대통령의 공포 없이 입법 회기가 바뀌는 경우에 그 법안이 살아있다는 논리를 구성하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 해외 순방길에 오르면서 손을 흔들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뉴데일리
    ▲ 해외 순방길에 오르면서 손을 흔들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뉴데일리
    이날 정치권에서도 "'상시 청문회법'은 오는 30일 자동폐기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부장검사 출신인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이번엔 (대통령의) 거부권행사도 필요 없다.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이라도 19대 국회 임기 내에 공포되지 않으면 자동폐기되기 때문"이라며 "대통령이 내일(25일) 해외순방을 떠나시면 그러는 동안에 그냥 없어지고 마는 것"이라고 자동폐기론에 힘을 실었다. 

    청와대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뿐만 아니라 이 같은 자동폐기론 등 다양한 대응책을 놓고 검토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학계 일각에서는 "의회 회기 변경과는 관계없이 정부는 국회로부터 넘겨받은 법안을 공포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게 제기된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선택 교수는 상시 청문회법이 이미 국회를 떠나 정부로 이송됐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법안이 정부로 넘어갔기 때문에 이젠 국회와는 상관이 없다. 정부가 15일 이내에 공포해야 한다"고 자동폐기론을 반박했다.

    헌법 제53조 6항은 '대통령은 제4항과 제5항의 규정에 의하여 확정된 법률을 지체없이 공포하여야 한다. 법률이 확정된 후 또는 확정법률이 정부에 이송된 후 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하지 아니할 때에는 국회의장이 이를 공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대통령이 법안에 대해 공포하기 싫으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하는데, 15일 내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 20대 국회로 넘어가더라도 법안은 확정된다고 봐야 한다"며 "대통령이 공포하지 않을 경우 20대 국회에서 새로운 국회의장이 공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법안 자동폐기 주장에 대해서는 "지금까지의 관례상 의회 회기 종료 직전에 통과된 법률안에 대해 대통령이 공포하지 않고 내버려뒀다고 해서 자동으로 폐기된 적이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새로운 국회가 구성됐다고 해서 정부로 이송된 법안이 폐기된다는 것은 말이 좀 되지 않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대통령의 보류거부를 인정할지 여부를 놓고도 학계의 의견은 엇갈려 왔다.

    원로 헌법학자인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 등은 헌법 51조와 53조 2항 단서 등에서 대통령이 15일내 공포도 재의요구도 하지 않으면 법안은 법률로서 확정된다고 규정하기 때문에 보류거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반면 헌법 대가로 불리는 허영 연세대 전 교수 등은 "국회가 법률안을 의결해 정부에 이송한 후, 15일내 의원임기가 만료되거나 국회가 폐회됐다면, 예외적으로 대통령의 보류거부가 인정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