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배 벗어난 호남 때문에 'DJ+盧 통합마케팅' 더욱 유난스러웠나
  • ▲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깨어있는 시민을 왼쪽에,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행동하는 양심을 그 뒤에 이어 오른쪽에 써놓은 무대에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등단해 추도사를 통해 김대중과 노무현은 하나로 이해해야 한다고 부르짖고 있다. ⓒ김해(경남)=사진공동취재단
    ▲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깨어있는 시민을 왼쪽에,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행동하는 양심을 그 뒤에 이어 오른쪽에 써놓은 무대에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등단해 추도사를 통해 김대중과 노무현은 하나로 이해해야 한다고 부르짖고 있다. ⓒ김해(경남)=사진공동취재단

    4·13 총선을 통해 호남이 친노·친문패권의 '표 식민지'로부터 벗어난 것이 그토록 신경쓰였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7주기 추도식에서 '호남 정치'를 상징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정치적 독자성을 부정하고 친노(親盧)의 종속 변수로 삼으려는 '말살 정책'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엄수된 노무현 전 대통령 7주기 추도식에서 일부 참석자들은 'DJ와 노무현의 통합' 마케팅을 빙자한 'DJ 말살'에 열을 올렸다.

    기획은 DJ를 존중하는 듯 했다. 무대 뒤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깨어 있는 시민'과 DJ를 상징하는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구호가 나란히 놓였다. 무대 앞 펼침막에도 '노무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도식'이라는 글자 앞에 '깨어 있는 시민,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구호가 쓰여 있었다.

    추도식 도중에는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전 육성 연설이 포함된 특별영상이 상영되기도 했다. 이 영상의 마지막은 '깨어 있는 시민'과 '행동하는 양심'이 악수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됐다.

    외견상 추어올리는 듯 했지만, DJ는 오로지 노무현을 등장시키기 위한 종속 변수에 불과하다는 듯한 뉘앙스가 추도식장 내외에서 느껴졌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추도사에서 DJ를 '씨앗'에, 노무현을 '꽃'에 빗댔다. 헌정 사상 최초로 선거에 의한 수평적 여야 정권교체를 이뤘던 DJ가 그저 노무현이라는 '꽃'을 피우기 위한 수단 정도로 격하된 것이다.

    두 대통령을 상징하는 구호인 '깨어 있는 시민'과 '행동하는 양심'도, '행동하는 양심'이 선행하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반드시 '깨어 있는 시민'이 순서상 선행했다. 시대적 순서나 역사적 순서로 봐도 실제로는 그 반대일텐데, 추도식 내내 DJ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비해 뒤처지는 존재였다.

    이날 추도식에 참석한 청중들의 반응도 이를 뒷받침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육성 영상이 상영되는 동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전 육성 연설이 끝날 때에는 한 차례도 빠짐없이 박수와 환호성이 나왔지만, DJ의 생전 육성 연설이 끝날 때에는 전혀 반응이 없다가 영상 말미에 단 한 차례 박수가 나오는데 그쳤다.

  • ▲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깨어있는 시민을 왼쪽에,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행동하는 양심을 그 뒤에 이어 오른쪽에 써놓은 무대에서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7주기 추도식이 엄수되고 있다 . ⓒ김해(경남)=사진공동취재단
    ▲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깨어있는 시민을 왼쪽에,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행동하는 양심을 그 뒤에 이어 오른쪽에 써놓은 무대에서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7주기 추도식이 엄수되고 있다 . ⓒ김해(경남)=사진공동취재단

    이처럼 DJ에 대한 대우가 박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원기 전 의장은 "우리의 책무가 역사를 진전시키는 것이라면 우리는 김대중과 노무현을 하나로 이해해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실상 이날의 추도식도 친노·친문패권주의자들이 입만 열면 외치는 "노무현과 김대중은 하나다"라는 구호를 뒷받침하기 위해 교묘하게 짜여진 무대였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하나"라지만 애초에 지난 2003년 DJ가 만들었던 새천년민주당을 분당을 통해 붕괴시키고 급진(急進) 친노 정당을 만들었던 자는 누구인가. 이를 통해 DJ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게 하고 투석을 하게끔 만들었으며, 박지원 원내대표의 한쪽 눈을 앗아갔던 자는 또 누구인가. 노무현정권 내내 호남에 대한 인사·예산 차별을 통해 '김대중과 노무현은 하나'라는 말을 무색하게 했던 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과거에 그러한 행적을 보였던 이들이 왜 이제 와서 '김대중과 노무현은 하나'라는 허울좋은 슬로건을 통해 DJ의 정치적 독자성을 말살하지 못해 안달이고, DJ를 노무현과 합친다는 명목으로 지워버리지 못해 안절부절일까.

    올해 추도식에서 유난히 이러한 의도가 부각된 것은 4·13 총선의 결과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4·13 총선에서 호남은 위대한 유권자의 선거혁명을 통해 친노·친문패권을 분연히 심판했다.

    아무런 대가 없이 표를 몰아줘야 할 호남이 '표 식민지'에서 해방되자 친노·친문 계파는 당황했다. 특히 그 중심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분신' 권노갑 상임고문,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역사를 함께 쓸 사람' 박주선 최고위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접 발탁한 인재' 천정배 대표와 정동영 당선인 등이 있다는 것은 신경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DJ의 정치적 독자성을 부정하고 DJ는 그저 노무현이라는 존재로 수렴되는 '과정'에 불과한 것으로 격하하고 폄훼해야, 이들 정통 DJ 세력들의 '호남 정치 복원 운동'을 진압할 수 있다는 게 친노·친문 패권 세력의 속셈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하나'이고 노무현은 문재인이 계승했으니, 문재인에 굴종하지 않는 박지원·권노갑·박주선·천정배·정동영 등은 모두 그릇된 존재라는 삼단논법으로 국민과 호남을 눈속임할 심산이라는 지적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대선이 다가올수록 호남을 향해 '김대중과 노무현은 하나'라고 외치는 정치적 프로파간다 공세가 극렬해질 것"이라며 "DJ의 독자적 의의를 부정함으로써 '호남 정치 복원'을 가로막고 예전처럼 특정 패권 세력에게 아무 대가 없이 표를 몰아주도록 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