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 함께 하는 '우리 당' 되느냐 판가름… 당직 개편에 촉각
  • ▲ 국민의당 주승용 전 원내대표와 안철수 대표가 지난달 4일 전남 여수에서 공동 유세를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국민의당 주승용 전 원내대표와 안철수 대표가 지난달 4일 전남 여수에서 공동 유세를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국민의당 주승용 전 원내대표가 사임계를 제출했다. 이에 따라 국민의당의 신임 원내대표인 박지원 의원은 국회사무처에 교섭단체대표의원으로 등록하고, 예정보다 일찍 정식 임기를 시작하게 됐다.

    주승용 전 원내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 출석과 발언, 의결권도 일찌감치 박지원 신임 원내대표에게 양보했다. 국회를 찾은 유일호 경제부총리에게도 박지원 원내대표를 만나볼 것을 권했다. 이후 주로 지역구인 전남 여수에 머물며, 4·13 총선 직후 지도부로서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미진했던 당선 인사를 마저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행보는 경선으로 가는 듯 했던 원내대표 경쟁이 합의추대로 급거 마무리되면서 이 과정에 무슨 '불화'라도 있지 않은가 하는 세간의 의구심을 잠재우고, 차기 원내지도부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속깊은 '선당후사'의 배려가 아닐 수 없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안철수 대표가 4·13 총선을 통해 38석 원내 제3교섭단체 대표의 지위에 올라서고 유력 대권주자로서 지위를 극적으로 회복하는 데에는 주승용 전 원내대표 같은 호남 의원들의 보이지 않는 선당후사(先黨後私)와 묵묵한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자세에 힘입은 바가 컸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호남 표심을 놓고 치열한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펼치고 있을 때, 안철수 대표는 한 차례 호남을 순방했지만 이후로는 수도권 격전지 지원유세가 급하다는 이유로 다시 호남을 찾지 못했다.

    반면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김홍걸 씨를 대동한 채 사전투표기간 직전인 8~9일 호남을 방문한 데 이어, 본투표일 직전인 11~12일 다시 호남을 재방문하며 '막판 뒤집기'를 노렸다. "호남이 지지를 거둔다면 정치일선에서 떠나고 대선에도 불출마하겠다"는 배수진까지 쳤다.

    동요하던 호남 민심을 앞장서서 잠재운 것은 현지에서 분투한 주승용 전 원내대표 등이었다. 특히 문재인 전 대표가 11일 오후 부산·경남에서 도(道) 경계를 넘어 전남 동부인 광양·여수·순천으로 침략해 들어올 때, 주승용 전 원내대표는 자기자신을 잊고 한몸을 던져 이에 맞섰다.

    11일 저녁 문재인 전 대표가 전남 여수갑·을의 송대수·백무현 후보를 모아놓고 대규모 지원유세를 펼칠 때, 주승용 전 원내대표는 그로부터 불과 500m 떨어진 곳에서 맞불유세를 벌이며 문재인 전 대표의 행태를 조목조목 비판함과 동시에 "한 표도 주지 말자"고 외쳤다.

    투표일 직전일이었던 이튿날 아침 문재인 전 대표가 순천 아랫장에서 노관규 후보 지원유세를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자기자신의 선거가 다음날이었음에도 주승용 전 원내대표는 원로(遠路)를 마다않고 이웃 순천으로 달려가 안철수 대표를 대신해 친노·친문패권주의 세력에 두려움 없이 맞섰다.

    평의원(平議員)이었더라면 이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었다. 당 지도부의 일원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발현될 수 있던 '노블리스 오블리제'였다.

    덕분에 순천을 제외한 전남 동부에서 선거전 초반의 열세를 딛고 '녹색 바람'의 석권이 이뤄질 수 있었다. 만일 이 지역에서 1~2개의 의석이라도 더민주에 넘어갔더라면 안철수 대표의 처가가 있다는 특성상 향후 정국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컸을 것이다.

    이처럼 호남 의원들은 비록 창당된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국민의당을 '우리 호남의 당'이라고 여기며 선당후사를 마다않고 있는데, 안철수 대표는 그에 걸맞은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 ▲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주승용 전 원내대표가 지난달 4일 전남 여수에서 공동 유세를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주승용 전 원내대표가 지난달 4일 전남 여수에서 공동 유세를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박지원 원내대표~김성식 정책위의장 조합' 카드는 안철수 대표 최측근발(發)로 언론에 먼저 보도됐다. 임명직도 아니고,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해야 하는 원내대표에 대해 마치 안철수 대표가 이런저런 의중을 가지고 있다는 듯한 보도가 계속해서 나오는 바람에 의원들은 혼란에 빠졌다.

    워크숍 첫날이었던 26일 저녁, 복수의 의원들이 "(원내대표 관련해선) 안철수 대표의 의중이 가장 중요하다"고 취재진에게 토로한 것도, 안철수 대표에게 어떠한 의중이 있다면 그것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공론의 장에서 토론하자는 우회적인 요청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튿날인 27일 오전 자유발언·집중토론에서도 안철수 대표는 묵묵무답으로 일관했다. 보다못한 주승용 전 원내대표가 직접 나서서 "박지원 원내대표를 합의추대하자"고 제안하자, 애초 경선 참여를 선언했던 유성엽 의원은 "두 분 대표의 말씀을 듣고 내가 말하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대표에게 마지막으로 '직접 의중을 설명할 기회'를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도 안철수 대표는 마지막까지 이 출구를 열고 나아가지 않았다. 천정배 대표가 대신 나서서 "원칙은 경선이지만 이번엔 합의추대"라는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했다. 결국 박지원 원내대표가 합의추대됐다. 원내대표를 하기에 경력상 흠잡을 데는 없지만, 절차상 중대한 하자 끝에 20대 국회 1기 원내지도부가 출범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승용 전 원내대표가 이임사를 할 기회도 따로 없었다. 애초부터 워크숍 자체가 '국회의원 당선자 워크숍'인 만큼 원내(院內) 행사로 봐야 하기 때문에 공동대표 인사말 다음에는 원내대표 인사말이 식순에 있었어야 정상이지만 그 또한 생략됐다. 어떤 각도에서 바라봐도 안철수 대표에게 총선을 함께 어렵게 치러낸 동료 의원들에 대한 배려는 찾을 길이 없었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성어의 주인공인 월(越)나라 왕 구천은 원수인 오(吳)나라 왕 부차를 쳐부순 뒤 연회를 베풀었다. 그 자리에서 '군신(君臣)이 함께 공업을 이루었도다'라는 노래가 나오자, 구천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고 전한다.

    이를 본 월나라 재상 범려는 "구천은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지만 즐거움은 함께 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가여공환란 불가여공락(可與共患難 不可與共樂)이라는 말이 이로부터 비롯됐다.

    혹시 안철수 대표는 국민의당이 4·13 총선에서 승리한 공업을 모두 오롯이 자기자신의 공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진작부터 탈당해 신당을 준비하고 있던 천정배 대표와 박주선 최고위원, 지난해 연말에 안철수 대표의 뒤를 이었던 문병호·유성엽·황주홍·김동철·주승용·장병완 의원 등의 분분한 탈당, 그리고 1~2월 짧은 기간 동안 진행됐던 시·도당과 중앙당의 창당, 3월초 당을 쪼갤듯 진행됐던 '통합·연대' 논란 속에서 안철수 대표에게 힘을 실어준 호남 의원들…

    모두가 어려움을 함께 헤쳐왔는데 이제 와서 안철수 대표가 월왕 구천처럼 '즐거움은 함께 할 수 없는 인물'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장경오훼(長頸烏喙)의 인물은 어지러운 춘추(春秋)의 정국 속에서 결코 패업을 이룰 수 없다.

    국민의당을 '우리 호남의 당'으로 여겼던 사람들 사이에서 "당이 이렇게 가면 안 된다"는 말이 들려온다. 안철수 대표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특정인의 사당(私黨)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국민의당은 연휴가 끝난 직후인 9일 대규모의 당직 개편을 예고하고 있다. 박선숙 사무총장의 진퇴 여부가 사당설 여부를 가르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평이다. 안철수 대표가 '괴로움도 즐거움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인지, '괴로움은 함께 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같이 할 수 없는 사람'인지가 판가름날 날이 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