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11시, 국회의사당 헌정기념관에서 선생 추모
  • ▲ 이승만 대통령(우측)과 신익희 선생.ⓒ뉴데일리DB
    ▲ 이승만 대통령(우측)과 신익희 선생.ⓒ뉴데일리DB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ㆍ외무ㆍ문교부장 등 요직을 역임하고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한 신익희 선생을 기리는 '해공 신익희 선생 60주기 추모식'이 5일 오전 11시 국회의사당 헌정기념관에서 (사)해공신익희선생기념사업회(회장 박관용) 주관으로 열린다고 밝혔다.

    해공 신익희 선생(1894. 7. 11-1956. 5. 5.)은 경기도 광주(廣州)에서 출생해 1908년 한성외국어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의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했다.와세다 대학 재학 중 고향에 동명강습소(東明講習所)를 열었으며, 졸업 후에는 서울 중동학교(中東學校)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7년 보성법률상업학교(普成法律商業學校) 교수가 되었다.

    1919년 3ㆍ1운동 당시에는 해외 연락 업무를 맡았으며, 그해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 조직을 위한 비밀회의를 갖고 임시의정원 회의를 열어 국호, 관제, 정부 관원 및 임시헌장 등을 의결ㆍ선포함으로써 역사적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탄생에 기여했다.

    그와 동시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무차장, 내무ㆍ외무차장, 국무원 비서장, 법무총장, 외무총장, 내무ㆍ외무ㆍ문교부장 등을 두루 역임하면서 임시정부를 통한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광복 후에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부위원장, 자유신문사 사장, 국민대학 초대학장을 역임했고, 1947년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의장으로, 1948년 제헌국회 부의장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1949년에는 민주국민당을 결성해 위원장에 취임하였고, 1950년에는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국회의장에 지명ㆍ피선되었다.이후 1955년 민주국민당을 민주당으로 확대ㆍ발전시켜 대표 최고위원이 되었고, 1956년에는 민주당 공천으로 대통령에 입후보하였으나 유세 중 서거하였다.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