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좌로 정확히 간다면야 별문제지만… 朴의 길과 安의 길이 일치할까
  • ▲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도중 휴대전화를 꺼내들자, 옆자리의 안철수 대표가 이를 넘겨다보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도중 휴대전화를 꺼내들자, 옆자리의 안철수 대표가 이를 넘겨다보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연산군의 폭정이 그 끝을 향해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반정군이 분분히 떨쳐일어나 연건동 지금의 이화사거리 자리에 있던 진성대군(晋城大君)의 잠저로 몰려갔다.

    진성대군, 곧 훗날의 중종(中宗)은 연산군이 자신을 죽이려 군사를 보낸 줄 알고 자결하려 했다. 부인 신 씨가 "말꼬리가 사저를 향해 있으면 우리를 호위하려 하는 것이고, 말머리가 사저를 향해 있으면 죽이려 하는 것이니, 살펴보고 그 때 결단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해 비로소 왕위에 올랐다.

    애당초 몰려온 군대가 자신을 죽이려 온 것인지, 왕으로 봉대하려 온 것인지도 몰랐는데 어찌 정국을 주도했겠는가. 중종은 반정 3대장으로 불린 박원종·성희안·유순정이 퇴청할 때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이 물러날 때까지 예를 갖출 지경이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진성대군이 될 것인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수장으로 하는 친노·친문패권주의 계파의 폭정이 극에 달한 지난해 연말,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분연히 당을 떠났다.

    〈한겨레〉가 지난달 29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안철수 대표는 처음부터 제3당을 하기 위해 탈당한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문재인 전 대표와의 불화 끝에 아무 대책도 없이 '광야'로 뛰쳐나왔는데, 공천 탈락 위기에 몰린 호남 현역 의원들이 몰려왔다"는 것이다.

    이어 "4·13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에 대한 심판이라는 두 개의 바람이 동시에 불어닥쳤고 두 개의 바람을 등에 업은 안철수 대표와 국민의당이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아마 국민의당 성공에 가장 놀란 사람은 바로 안철수 대표 자신"이라는 관측이다.

    사저에 있다가 몰려온 반정군에 의해 임금으로 추대된 진성대군의 놀라움이 이와 같았을까. 최근 박지원 원내대표 합의추대 이후 정국의 흐름을 살펴보노라면, 정말로 중종반정 이후 진성대군의 처지가 오버랩된다.

    호남을 들어 안철수 대표에게 바쳐, 실로 '반정 3대장' 중 하나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전라도주(全羅道主)' 박지원 의원이 원내대표로 합의추대되자, 그 압도적인 정국 장악 능력에 안철수 대표의 존재감이 가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 ▲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3일 의원회관에서 열린 초선 의원 정책역량 강화 워크숍 도중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3일 의원회관에서 열린 초선 의원 정책역량 강화 워크숍 도중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최근의 정국은 그야말로 '정치 9단' 박지원 원내대표의 일거수일투족에 들썩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구성 협상과 국회의장 선출 문제부터 시작해서 더민주 김종인 대표의 진퇴 문제까지 국회와 타 정당을 가리지 않고 휘젓고, 또 한편 능수능란하게 흔들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개 원외(院外) 인사에 불과한 김홍걸 씨가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각을 세우면서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을 높이려는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정국의 중심에 박지원 원내대표가 위치하게 된 모양새다.

    비단 당 밖의 일만이 아니다. 당내에서도 박지원 원내대표의 장악력이 높아지고 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3일 오전 국민의당 초선 의원들을 모아놓고 강의를 했다. '정치 9단'의 노련한 정략(政略)이 어찌 강의로 누구에게 전수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랴 싶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가족·친구와 밥 먹는 사람은 정치인의 자격이 없는 것이니 삼시 세 끼를 기자와 먹으라"면서 "기자 전화는 잘 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기자 말을 듣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등 오랜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언론 대응 기법'은 취재 나간 현장의 기자들조차 무릎을 칠 정도였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정국을 휘젓는 것까지는 좋다. 이것은 애초부터 박지원 원내대표를 합의추대할 때 기대했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 존재감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보니 상대적으로 안철수 대표의 존재감이 흐려지는 게 문제다. 당헌까지 고쳐가면서 전당대회를 연기한 것은 안철수 대표가 '당의 얼굴'로 계속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던 것인데, 최근에는 박지원 원내대표만 부각되고 안철수 대표는 가끔 터져나오는 실언과 농담으로만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물론 진성대군 신세가 되더라도 '킹메이커' 박지원 원내대표가 옥좌로만 잘 이끌어준다면 무슨 상관이랴. 그런데 박지원 원내대표는 최근의 '임을 위한 행진곡'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중도·우파와는 결이 다르다.

    안철수 대표는 중도에 위치하면서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중도·우파의 표를 일정 부분 잠식해들어가며 스펙트럼을 넓게 가져가야 단독 집권이 가능한데, 박지원 원내대표가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정국을 휘저으면서 걸어가는 길의 방향이 안철수 대표가 추구하는 그러한 방향과 일치하는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