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한미군 철수 협박하는 트럼프, 소 닭 보듯 해도 되나?
    당선 가정하고 미국의 한반도 정책 변화 가능성 대비해야.

    박휘락(국민대 교수)  
     
    트럼프의 한미동맹 공약 위협

     미국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 중 한 사람인 트럼프(Donald J. Trump)는 직설적인 어법으로 유명하다. 한국 신문에서는 트럼프의 “막말”이라고 표현한다. 그래도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현재 트럼프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또한 힐러리와 대통령 경선에 나섰을 때를 가정한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38% : 38%로 동률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될 가능성을 50% 정도로 보지 않을 수 없다. 

  • 트럼프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그가 한미동맹에 의한 안보공약(security commitment)을 위협하는 언사를 공공연하게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지난 4월 27일 워싱턴 D.C. 메이플라워 호텔에서 가진 외교정책 연설에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주창하면서 “만약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동맹국들은 스스로 방어하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하루 뒤인 28일 인디애나 주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는 한국이 경제력에 상응하는 방위비분담을 하지 않는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하였다. 

    지난 4월 2일 위스콘신 주에서의 유세에서도 트럼프는 북한 김정은이라는 '미치광이를 막으려고' 주한미군 2만 8천명을 주둔시키고 있는 것을 불평하면서 한국 스스로에 의한 방위의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이보다 앞선 2016년 3월 25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허용하더라도 스스로가 지키도록 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하였고, 방위분담을 증대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수 있다고 말한 바도 있다. 

    이전에 트럼프가 동맹의 공약을 위태롭게 하는 말을 하더라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은 설마 그가 공화당 후보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트럼프가 미 대통령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50%라면, 그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는 기존의 입장을 바꾸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공식화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학자들이나 정책입안자들은 여전히 트럼프의 말에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고, 분석하여 대비책을 강구하고자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의 전반적 안보공약 이행 여건 악화

     트럼프의 말이 아니더라도 미국의 안보공약 이행 여건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은 연방 정부의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하여 국방비를 지속적으로 삭감해왔고, 그것은 미군의 준비태세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미 국방비는 2010년 6910억 달러에 이르렀으나 2015년에는 5,600억 달러 수준으로 감소되었다. 미 국방부는 2017년부터는 5800~5900억 달러 선에서 국방비를 유지시켜 줄 것을 의회에 요청하고 있지만, 그렇게 될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국방부의 요구가 수용된다고 하더라도 2017년 회계연도의 경우 미군은 24대의 육군 UH-60 수송 헬기, 5대의 공군 F-35 전투기, 5척의 해군 순양함, 77대의 해병대 전술차량 등 180억 달러 규모의 사업을 취소해야한다. 카터(Ashton Carter) 미 국방장관은 국방예산의 감축이 지속될 경우 미국은 상당한 “전략적 위험”을 감수해야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고, 그것은 동맹국에 대한 안보지원 약화로 연결될 것이다. 

    이미 미군은 그 동안 상당한 규모의 병력을 감축해왔다. 미 육군의 경우 2001년 9.11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57만명에 이르렀으나 2012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축하여 2015년 12월 현재 49만명 정도의 규모로 감축되었고, 2018년까지 4만명을 더 줄여서 45만명 선으로 유지한다는 계획이며, 42만명까지 줄어들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한다. 10여개의 여단전투단(BCT: Brigade Combat Team)이 해체될 계획이다. 공군, 해군, 해병대도 육군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할 정도로 규모 및 부대를 감축시키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한반도 위기 시 지원 가능한 미군의 규모는 감소될 수밖에 없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적 경쟁도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우선순위를 낮출 수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비행장을 건설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공무기까지 배치함으로써 군사화를 추진하고 있고, 이것은 항행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미국의 국가이익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한달 전에 개최된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남중국해 문제를 둘러싸고 상당한 이견을 노출한 바 있다. 

    남중국해에서의 사태에 대비하여 미국은 필리핀의 5개 군사기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받았고, 4월 15일에는 카터 미 국방장관이 필리핀 국방장관과 함께 미 항공모함인 스테니스(Stennis)호에 탑승하여 남중국해 해역을 항행하였으며, 4월 28일 중국 외교부는 이 항공모함의 홍콩 입항을 거부하였다. 이 지역에서 미중 간 군사적 충돌의 잠재성이 커질수록 한반도 사태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어려워지거나 전력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과 관련하여 더욱 우려되는 사항은 한국에 대한 미국 일반국민들의 비우호적인 인식이다. 한때 한국에서 “반미면 어때?”라는 말이 나왔듯이 최근 지속된 부정적인 한미동맹 인식이 전달되어 미국 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점점 줄어들었고,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한국이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였을 때 워싱턴의 정가에서는 한국의 외교정책을 “친중 비미(親中 非美)”로 인식하고 있다는 내용이 보도되기도 하였다. 

    미국의 퓨(Pew) 리서치 센터에서 2015년 4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기념하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 국민 중에서 한국을 신뢰한다고 말한 응답자는 49%에 불과(일본을 신뢰한다는 미국인은 68%)하였다.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한미 양국군 간 비우호적인 인식은 더욱 커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트럼프의 정책이 국내여론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이전에도 미국의 안보공약이 일방적으로 약화된 사례가 없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이 1949년 철수하였고, 이것은 6.25전쟁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1969년 미국의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은 우방국의 방위는 우방국 스스로가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한다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였고, 이로 인하여 한미동맹 관계는 크게 흔들였고, 한국은 대대적인 자주국방 노력을 경주해야만 했다. 

    1977년 출범한 카터(Jimmy Carter) 행정부도 주한미군 철수를 일방적으로 선언하였고, 한국의 반대로 그 규모가 감축되기는 하였지만 결국 3,400명을 철수시켰다. 1989년 부시(George Bush)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주한미군 철수 논의가 재개되어 “넌-워너 법안”(Nunn-Warner Act)이 미 의회를 통과하였고, 결국 1992년까지 7,000명의 주한미군이 감축되었다. 이렇게 볼 때 트럼프의 주장이 전혀 실현불가능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트럼프의 주장에 대한 사전 대비 필요

     이제부터 한국은 동맹의 공약을 지키지 않을 수 있다는 트럼프의 언급을 가볍게 흘려버려서는 곤란하다. 그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점도 있지만, 그의 생각이 다수 미국인들에 의하여 지지받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여건 측면에서도 미국의 동맹국 지원역량은 감소되고 있다. 한미동맹과 관련하여 위기가 도래할 수도 있다는 심각한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북한도 이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고, 미국의 안보공약이 흔들린다고 할 경우 어떤 오판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의 청와대, 외교부, 국방부 등의 실무자들과 책임자들은 트럼프의 주장이 갖는 의미를 분석하고, 그것이 구현될 경우 한국 안보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진지하게 분석해봐야 할 것이다. 트럼프의 주장대로 구현될 경우 한국 안보에 심각한 영향이 미칠 것이라면, 그것을 예방할 수 있는 대책을 모색하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노력해 나가야할 것이다. 

    동시에 한국은 북한의 핵위협과 같은 안보위협을 한국 스스로의 힘으로만 대응해 나갈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와 같이 한미동맹에 의존해나갈 것인가를 두고 심각하게 토론을 벌이고, 분명한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전자는 자주적이지만 국방비의 대폭 증대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위험할 수 있고, 후자는 무난하기는 하지만 자주성의 손상을 각오해야 한다. 자주성도 강화하면서 미국의 안보지원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진지한 토론의 결과로 현재 상황에서 한미동맹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결정하게 되었다면, 한국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한미동맹을 공고하게 만들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나가야 한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종료되기 전에 미국의 관리들과 긴밀하게 협력함으로써 트럼프의 인식을 전환시키거나 나중에라도 미국 관리들이 건전한 조언을 하도록 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야할 것이다. 

    한국의 안보를 위하여 한미동맹이 여전히 중요하다면 지나친 반미성향이나 반미감정 과시의 위험성도 자각할 필요가 있다. 반미시위가 격화되는 것을 볼 경우 트럼프가 주한미군의 철수를 지시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미시위와 같은 감정적 일탈이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태롭게 해서는 곤란하다. 반미시위를 조직하거나 참여하난 사람들의 자발적인 자제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더욱 구체적인 사항으로서 한국은 미국이 방위비분담 증액을 요구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하여 사전에 논의하여 대비해 두어야할 것이다. 현재 한국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9200억원에서 시작하여 전전(前前)년도가 물가상승률 정도로만 증액하는 규모의 방위비분담금을 미국에 제공하도록 되어 있지만,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바로 방위비분담금의 추가적인 증액을 요구하거나 2018년 협상을 해야할 때 대대적인 증액을 요구할 수 있다. 

    그 동안 한국에서는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진행될 때마다 그에 대한 반대여론이 증폭되었고, 이로 인하여 협상이 상당한 지장을 받았으며, 예산시한을 넘겨서야 겨우 타결되곤 하였다. 추가적인 증액을 요구할 경우 어느 정도로 수용하고, 어떤 논리를 강조할 것이며, 어떻게 해야 협상 간 국내의 비판적 여론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하여 사전에 고민해두지 않을 경우 수습하지 못할 정도로 사태가 악화될 수 있다. 

    현재 상태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트럼프의 주장에 대하여 전혀 개의하지 않거나 대비하지 않는 것이다. 요구하면 그때 가서 대응방향을 정하겠다면서 무시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미국으로 하여금 한반도 정책을 선택하도록 한 후에 한국이 대응해 나가는 소극적이고 무책임한 태도이다. 한국이 먼저 한미동맹과 미국에 관한 최선의 정책방향을 선택한 다음, 우리가 바라는 대로 미국이 대한반도 정책을 선택하도록 유도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적극성과 주도성이야말로 국가지도자와 외교 담당자들이 구비해야할 기본적인 자질일 것이다. 미리 대비한만큼 위험은 줄어든다.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예상되는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것도 참고가 될지 모르겠다. 아마도 일본은 미국의 방위비분담 증액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미일동맹을 손상시키지 않는 데 성공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반미감정이 격화되면서 협상의 타결이 계속되어 지체될 것이고, 정부의 선택방안은 제한받을 것이며, 결국 한미동맹이 손상되는 사태에 이를 개연성이 낮지 않다. 지금부터 한국의 바람직한 대응방향을 진지하게 고민해 나가야하는 이유이다. 

    한미동맹 유지를 위한 근본 원리에 대한 이해 필요 

     트럼프의 주장에 대한 대비책의 논의와 합리적 결론 도출을 위해서는 강대국과 약소국 간 동맹이 유지되는 원리에 관한 이론 중 하나인 “자율성-안보 교환 모델”(Autonomy-Security Trade-off Model)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알트펠드(Michael F. Altfeld) 교수가 창안하고 모로우(James D. Morrow)가 발전시킨 모델로서, 약소국은 자신의 정책적 자율성을 강대국에게 양보함으로써 강대국의 안보지원을 획득하고, 강대국은 약소국이 자율성을 양보하여 자신의 요구조건을 들어주는 댓가로 안보지원을 제공한다는 이론이다. 즉 한국이 주한 미군기지를 제공하거나 미국의 제반 정책을 지지하거나 미국이 요구하는 방위비분담을 수용하는 등으로 자율성을 양보할 때 미국은 안보를 지원한다. 안보지원의 적극성은 당연히 한국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자율성을 양보하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십여년 동안 한국에서는 자주성을 중요시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자율성 양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왔다. 한국은 아시아 재균형(Asia rebalancing)이라는 미국의 정책에 보조를 맞추는 대신에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고자 노력하였고,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요구함으로써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고자 하였으며, 방위비분담 제공과 관련해서도 지루하면서도 끈질긴 협상을 고집하였다. 사드배치를 둘러싸고도 한국은 상당한 기간 동안 불분명한 태도를 보여 왔고, 남사군도를 둘러싼 입장표명에 있어서도 분명한 입장 표명을 꺼려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자율성-안보 교환 모델”에 의하면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에게 적극적으로 안보지원을 제공할 동기가 감소되고 있는 셈이다. 

    국가안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하면서도 부담이 되는 사항은 항상 만전지계(萬全之計)를 도모해야한다는 점이다. 개인이 건강을 도박할 수 없듯이 국가의 경우도 안보에 대하여 요행을 바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위협이 계속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에 의존하는 것이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안보전략이라면, 우리는 트럼프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미리부터 대비해 나가야 한다. 미국의 안보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면,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양보하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한국은 미국이 대한반도 정책을 변화시킬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허둥지둥하다가 위태로워지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글/박휘락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장 hrpark550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