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기비행 필수화 하겠다"는 안전처, 기존 조종사 자격 없어도 침묵
  • ▲ 2014년 7월 17일 강원소방 소속 헬기가 세월호 수삭작업을 마치고 춘천으로 복귀하던 중 광주 도심에 추락했다. ⓒ당시 SBS 보도화면 캡쳐
    ▲ 2014년 7월 17일 강원소방 소속 헬기가 세월호 수삭작업을 마치고 춘천으로 복귀하던 중 광주 도심에 추락했다. ⓒ당시 SBS 보도화면 캡쳐

    2014년 7월 17일,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지 석 달 뒤까지도 현장에서는 수색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이날 강원도 소속 소방헬기 한 대가 수색 작업을 마치고 춘천으로 복귀하던 중 광주광역시 도심에 추락, 조종사와 소방대원 등 탑승자 5명 전원이 사망했다.

    당시 사고 원인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1년 8개월 뒤 항공철도조사위원회는 '조종 과실'이라고 결론내렸다. 조사에 따르면, 사고 당시 기상 상황이 나빠 계기 비행을 해야 했는데, 헬기 조종사의 계기비행 자격이 정지 상태였다는 것이다.

    2일 국민안전처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전국 소방헬기 조종사 가운데 31%가 계기비행 자격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충청북도의 경우에는 소방헬기 조종사 4명 중 1명만이 계기비행 자격증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계기비행이란 야간, 눈비가 내리거나 연무가 심한 악천후 때 레이더와 음향탐지기 등 장비에만 의존해 항공기 조종을 하는 방식이다.

    참고로 항공기 조종 자격증은 일반적으로 자가용, 상업용, 운송용 등으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서 다른 사람을 태우고 업무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상업용 이상부터로 분류한다.

    회전익기(헬리콥터)를 포함한 상업용 항공기 조종 자격은 150시간 이상의 계기 비행이 필수이며, 매년 6시간 이상의 계기비행을 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안전처가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전국의 소방헬기 조종사 91명 가운데 29명(31%)은 계기비행 자격증이 없거나 정지된 상태였다고 한다. 쉽게 말해 '2종 오토' 면허를 가진 사람이 특수 앰뷸런스를 몰고 다닌 꼴이다.

    더 어이 없는 부분은 정부가 소방헬기를 '사업용'이 아닌 '공용 헬기'로 분류해, 계기비행 경험이 없는 사람도 비행시간만 길면 조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았다는 점이다.

    참고로 대한항공, LG그룹, 포스코 등 민간 분야에서 헬기 조종사를 모집할 때는 계기비행 자격과 경험을 필수적인 요건으로 강조하고 있었다.

    안전처는 이번 조치를 통해 문제점을 개선한다며, 앞으로 새로 채용하는 소방헬기 조종사에게는 계기비행자격을 필수요건으로 하고, 최소 비행 시간도 2.000시간으로 높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존의 계기비행 무자격 조종사에 대한 제재는 없다고 한다.

    안전처는 2일 "앞으로 소방헬기 조종사의 채용 요건을 강화, 계기비행 자격을 필수로 포함시키는 등 소방항공 안전관리 개선을 위한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미 채용된 '반쪽 면허' 소방 헬기 조종사들은 그대로 유지할 계획이라고 한다.

    뉴데일리가 "계기비행 자격 미보유자의 경우 운항을 막도록 조치했느냐"고 묻자 안전처 관계자는 "운항은 조종사의 판단에 맡긴다"며 "계기 비행 자격이 없다고 해서 조종을 못 하는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안전처 관계자는 "계기비행 자격이 없는 기존 조종사에게는 계기비행 자격을 취득하도록 '권고'했다"면서 "하지만 계기비행 자격 취득 전까지 특별히 조종을 막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향후 신규 채용부터는 계기 비행을 의무화하지만, 기존 조종사의 경우 계기 비행이 없어도 헬기 조종사 지원이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즉 만약 악천후 때 소방헬기의 도움으로 구조를 받거나 응급 후송되는 일이 있으면, 헬기에 오른 뒤에도 31% 확률로 안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2014년 7월과 같은 사고가 일어날 수 있으니 말이다. 

    안전처는 이날 항공구조구급대의 인력을 43명 더 보강하겠다고 밝혔지만, 여기에 필요한 재정은 제대로 확보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항공구조구급대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이보다 44명이 더 필요한 것으로 나타나, 안전처가 가야할 길이 여전히 멀다는 것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