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북벌계획을 간접 실현한 용장
  • 다큐의 한장면ⓒKBS 다큐화면 캡쳐
    ▲ 다큐의 한장면ⓒKBS 다큐화면 캡쳐

    전쟁기념관은 조선 후기 나선정벌을 이끈 신류(申瀏) 장군을 2016년 ‘5월의 호국인물’로 선정, 발표했다.

    신류 장군은 1619년 경상도 인동(현재 경북 칠곡)에서 신우덕(申祐德)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기상이 출중했던 장군은 약관의 나이에 경사(經史)에 능통했으며, 1645년(인조 23)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 비변사낭청, 사복시내승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당시 흑룡강 주변의 자원을 탐내 성을 쌓고 물자를 약탈하던 러시아를 축출하는데 번번이 실패한 청은 조선에 파병을 요청했다.

    1654년 조선은 청의 파병 요청을 받아들여 조총군 100명을 선발해 제1차 나선(러시아)정벌에 투입시켰고, 조·청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러시아군의 공격이 계속되자 청은 조선에 재차 파병을 요청했다. 이에 조선은 2차 파병을 추진하게 되었고, 1658년 함경북도 병마우후(종3품)로 있던 신류 장군은 영병장(領兵將)이 되어 265명의 조선군을 거느리고 두만강을 도하한 뒤 청군과 합류했다.

    200명의 포수들과 함께 의란(依蘭)에서 출항한 조·청연합군은 흑룡강까지 원정하여, 러시아의 스테파노프선대 11척 중 10척을 불태우고 적장과 병사를 괴멸시켰다. 전투가 끝난 후 청군은 러시아와의 지속적인 대치를 이유로 조선군의 영고탑 복귀를 지시했으나, 신류 장군은 귀국을 희망하는 병력들을 강제로 주둔시킬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사고의 위험성을 들어 청의 요구를 거부하고, 조선군으로 무사히 복귀했다. 

    신류 장군의 제2차 나선정벌로 흑룡강 주변에서 활동하던 러시아군은 거의 섬멸되었으며, 효종 즉위 후부터 준비해왔던 북벌계획을 간접 실현함으로써, 조선후기 대표 무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제2차 나선정벌의 전공으로 장군은 가선대부, 삼도수군통제사를 거쳐 포도대장을 역임하는 등 무관으로서 이름을 떨쳤으며, 1680년에 생을 마감했다.

    5월 12일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는 종중과 유관단체 주요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장군을 추모하는 현양행사가 거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