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중국 상해 현지와 국내에서 동시 개최
  • ▲ 거사직전의 윤봉길 의사 모습.ⓒ뉴데일리DB
    ▲ 거사직전의 윤봉길 의사 모습.ⓒ뉴데일리DB

    국가보훈처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일대 전기를 마련한 윤봉길 의사를 기리는 매헌 윤봉길 의사 상해 의거 84주년 기념식이 29일 중국 상해 현지와 국내에서 개최된다고 28일 밝혔다.

    이번 기념식은 국내에서는 서울과 예산에서 기념식이 개최된다. 서울에서는 (사)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주관으로 오전 10시 매헌기념관에서, 중국 상해 기념식은 현지시간 오전 10시에 루신공원 매헌기념관에서 개최된다. 이와 함께 윤봉길 의사의 출신지인 충남 예산 충의사에서 예산군 주관으로 추모다례가 개최된다. 

    윤봉길 의사(1908. 6. 21.~1932. 12. 19.)는 충남 예산에서 출생하고, 1919년 3ㆍ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식민교육을 배척하여 학교를 자퇴하고, 사설 서당인 ‘오치서숙(烏致書塾)’에서 한학을 수학했다. <농민독본>을 편찬하여 농촌 청년들에게 농민의 단결과 민족정신의 배양,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등 농촌운동에 헌신하다가 일제의 압박으로 중국으로 망명하여 김구 선생이 이끌던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거사를 자청했다.

    1932년 4월 29일, 일왕(日王)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맞아 일본군의 상해 점령 전승 경축식을 홍커우(虹口)공원에서 거행하자 의거를 감행하여 일본의 수뇌부를 폭사시켰다. 의사의 거사는 우리 독립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으며, 조선과 중국의 항일연대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의거 직후 현장에서 일경에게 체포된 의사는 상해 일본 헌병대에서 가혹한 고문과 취조를 받았으며, 그해 5월 상해 파견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이후 11월 18일 오사카 육군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2월 19일 오전 7시 40분 가나자와 미고우시 육군 공병 작업장에서 총탄을 맞고 순국했다.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김구 선생의 요청에 의해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봉환되어 1946년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국민장으로 안장되었다.정부에서는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