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엽 말대로 "짜여진 각본에 의해 진행된 느낌"… 秘線 의구심
  •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은 27일 원내지도부 선출 과정이 공론화된 토의 없이 진행되는 것에 대해 각본이라고까지 언급하며 절차적 문제점을 성토했다. 사진은 지난 10일 전주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는 유성엽 의원의 모습. ⓒ전주(전북)=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은 27일 원내지도부 선출 과정이 공론화된 토의 없이 진행되는 것에 대해 각본이라고까지 언급하며 절차적 문제점을 성토했다. 사진은 지난 10일 전주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는 유성엽 의원의 모습. ⓒ전주(전북)=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20대 국회 개원(開院)을 맞이하는 국민의당 원내지도부가 박지원 원내대표~김성식 정책위의장 조합으로 결정됐다.

    재선의 김성식 의원은 논외로 하더라도 박지원 의원은 이미 두 차례 원내대표를 지내는 등 경륜과 능력이라는 측면에서 원내대표를 맡기에 흠잡을 곳이 없다. 내심 원내대표 연임을 노리던 주승용 의원이 "박지원 의원 같은 헤비급이 나오면 우리 같은 플라이급은 엄두가 안 난다"며 스스로 출마 의사를 거둬들일 정도다.

    다만 원내지도부 선출 과정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절차적 문제가 너무나 심각했기 때문이다.

    총선 직후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모여 새로운 원내지도부를 선출하는 것은 중차대한 일이다. 그런데도 '박지원~김성식' 카드는 안철수 대표 측 관계자발(發)로 언론을 통해 먼저 노출됐다. 원내대표 출마를 준비하던 다른 의원들조차 언론 보도를 통해서 이런저런 구상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정도였다.

    국민의당의 당내 의사결정 구조가 투명하지 못하고, 실질적인 의사결정을 따로 하는 비선(秘線)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길이 없다.

    몇몇 사람들끼리 당직 인선을 결정하고 이를 언론에 흘리면서 분위기를 몰아가는 것은 민주정당의 모습이라 보기 어렵다. 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투명하게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해야 마땅한 원내지도부 선출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 것은 더욱 문제다.

    안철수 대표 측이 수 일간 지속적인 '언론플레이'를 통해 분위기를 몰아가 사실상 '박지원 원내대표 합의추대'를 다 결정해놓고, 의원들은 모여서 박수만 치는 존재로 전락한다면 원내정당의 공적인 의사결정 절차는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원칙론자를 자처하는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이 27일 워크숍에서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그래서 뜻깊다. 아직 당이 살아있고, 공당(公黨)의 토론 문화가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유성엽 의원은 이날 자유발언에서 "최근 당의 흐름을 보니 안타깝다"며 "전당대회 연기론이나 원내대표 합의추대론 등 일련의 일들이 짜여진 각본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모든 문제는 충분한 토론 후에 진행돼야 한다"며 "그래야 국민의 동의와 박수를 받을 것이고, 집권이 가능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유성엽 의원의 발언은 박지원 차기 원내대표의 능력을 문제삼은 것이 아니다. 유성엽 의원은 지난해 새정치민주연합 2·8 전당대회 때 박지원 당대표 후보의 전북 지역 선거 책임을 맡았다. 제1야당 당대표로 적당하다고 생각해 선거운동을 했었는데, 이제와 새삼 제2야당 원내대표를 맡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했을 리는 없다.

    그보다는 아무런 공론화 과정이나 열린 토론 없이, 안철수 대표 측 관계자가 먼저 언론에 '박지원 의원을 합의추대하는 게 좋겠다'고 공개하고, 곧이어 '박지원~김성식' 카드가 등장하면서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까지 구체화된 과정과 절차를 문제삼은 것이다.

    누군가의 '각본'에 의해 차근차근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후보자가 언론에 차례대로 공개되고, 마침내 워크숍이 열릴 때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중론'이자 '기정사실'처럼 돼버렸다.

    유성엽 의원이 이러한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자, 안철수계로 분류되는 한 당선자는 "당은 단합이 중요하다"며 반박했다. 아무런 공론화 과정이 없이 '언론플레이'만 계속됐는데, 이제 와서 합의추대에 반대 목소리를 내면 무슨 당의 단합을 저해하는 의견을 낸 것처럼 비쳐지게 된 것은 심각한 문제다.

    다행히도 정책위의장 30일·사무총장 45일 재임에 이어 원내대표마저 2개월로 단명하게 된 주승용 원내대표가 "욕심 같아서는 나도 한 번 제대로 해보고 싶었지만 마음을 비웠다"며 선선히 합의추대에 동의함은 물론 총대까지 멨다.

    오랫동안 소외당한 전라북도를 대표해 주요 선출직 당직에 도전해보려던 유성엽 의원도 "아쉽지만 박수 치고 가겠다"고 뜻을 거둬들였다. 이날 이용호 당선자가 "당내에서 당직 등에 있어서 전북에 대해 특별한 배려를 해달라"는 요구를 한 직후라 씁쓸함을 감출 길 없었다.

    4선·3선의 당내 중진 의원이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정신으로 결국 마지막에 박수를 쳤기에 '잡음'이 더 이상 커지지는 않았고 얼추 '만장일치'라는 미명 하에 봉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언론을 통해 먼저 흘려 기정사실화를 해놓고 의원들은 '알아서 따라오라'는 비선식 의사결정으로는 38석의 제3당을 이끌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올바른 리더십이라고 할 수 없고 '새정치'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천정배 대표가 워크숍 막바지에 "원내대표 문제를 우리끼리 이야기하기 전에 언론에 먼저 나갔다"며 "경선이 원칙이나 이번에는 과도기"라고 한정지은대로, 이러한 비정상적 의사결정은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할 것이고 앞으로는 투명한 공론의 장을 거쳐 공당의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