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 전략, 실리보다는 1년반 뒤 대선 겨냥해 명분 취할 듯
  • ▲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이 26일 경기도 양평에서 열린 20대 국회의원 당선자 워크숍에서 안철수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이튿날 박지원 의원은 국민의당 원내대표로 합의추대됐다. ⓒ양평(경기)=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이 26일 경기도 양평에서 열린 20대 국회의원 당선자 워크숍에서 안철수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이튿날 박지원 의원은 국민의당 원내대표로 합의추대됐다. ⓒ양평(경기)=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야권의 대표적인 '꾀돌이'이자 '책략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이 원내대표 추대를 받아들인 것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버리고 본격적으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를 야권의 대표 대통령 후보로 옹립하려는 행보로 분석된다.

    국민의당은 27일 경기도 양평에서 이틀째 진행된 20대 국회의원 당선자 워크숍에서 박지원 의원을 20대 국회 첫 원내대표로 추대하기로 합의했다.

    박지원 의원은 원내대표 추대 수락사에서 "이제 마지막으로 20대 국회를 성공시켜서 '국민의당이 집권하면 저런 정치를 하겠구나' '안철수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이런 정치를 하겠구나' 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일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원내대표와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에는 재선의 김성식 의원이 지명됐다. 김성식 의원은 안철수 대표의 복심(腹心)으로 알려져 있다. 원내대표 합의추대를 계기로 안철수 대표와 박지원 의원 사이에 완벽한 '연대 전선'이 형성된 모양새다.

    ◆박지원, 문재인에게 배신당한 '호남 당권론' 재점화

    이로서 박지원 의원은 호남을 대표해 당권(黨權)을 맡고, 안철수 대표는 대권(大權) 가도로 나아가게 된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박지원 의원은 앞서 문재인 전 대표의 친노(親盧) 계파와 이러한 당권~대권 분점을 하려 시도한 바 있다. 친노 한명숙 전 대표가 지난 2012년 4·11 총선을 망쳐놓고 당내에 패권주의 계파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했을 때, 박지원 의원은 뜻밖에 친노 이해찬 의원과 손잡아 그를 대표의 자리에 밀어올리고 자신은 원내대표를 차지했었다.

    문재인 전 대표가 손학규 전 대표 등 유력 주자들을 제치고 당시 민주통합당의 대선 후보 자리를 꿰찰 수 있었던 것에는 '이해찬 체제' 성립이 결정적이었다. 박지원 의원으로서는 문재인 전 대표를 야권의 대통령 후보로 만든 것은 자신이라는 생각을 할법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박지원 의원이 지난해 2·8 전당대회에 출사표를 던지며 "나는 호남을 대표해 당권을 맡을테니, 문재인 당신은 대권의 길로 가라"고 촉구했지만, 문재인 전 대표는 이를 일축하고 직접 전대에 출마해 당권마저 장악했다. 박지원 의원이 격렬히 규탄한대로 "친노는 꿩도 먹고 알도 먹으려 한 것"이었다.

    이렇듯 친노패권주의 세력에 이용당하고 배반당한 박지원 의원은 이번 원내대표 합의추대를 계기로 안철수 대표와 손을 굳게 잡게 됐다. 자신을 배신한 문재인 전 대표를 응징하고, '호남 주도의 정권교체'를 노리는 일거양득의 수를 다시 한 번 놓게 된 셈이다.

    ◆정기국회까지만 맡은 뒤 전당대회서 당권 도전할 듯

    '안철수~박지원 연대'의 장래는 연말로 미뤄질 전당대회에 달려 있다는 관측이다.

    박지원 의원은 정기국회까지만 원내대표를 수행한 뒤, 이후 원내대표에서 물러나 전당대회에서 당권 도전을 할 것이 확실시된다.

    이날 워크숍에서 합의추대를 받은 직후 취재진과 만난 박지원 의원은 연말 전당대회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 때 일은 그 때 가서 이야기하자"며 "모든 것을 너무 앞질러서 빨리 이야기하면 재미가 없다"고 확답을 피했다. 그러나 임기를 채울 생각이라면 그렇게 공언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이는 전당대회 출마에 무게를 실은 답변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박지원 의원이 연말 전당대회에 출마했을 때 안철수 대표가 그를 밀어주면 '호남이 당권을 맡아 몫을 확실히 챙기면서, 비호남 대권 주자를 밀어주는 그림'이 마침내 완성된다.

    출발은 일단 순조롭다는 지적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당권에 도전할 예정인 박지원 의원이 원내대표를 맡게 되면서 이른바 출발선이 달라졌다"며 "연말 전당대회에서 박지원 의원이 50m쯤 앞에서 달리는 모양새가 됐다"고 평했다.

    ◆실리보다 명분에 무게중심 놓는 협상전략 펼칠 듯

    안철수 대표를 대권 가도로 밀고 자신은 당권을 노리는 구상의 포석으로 원내대표를 맡게 됨에 따라 '박지원 원내대표 체제'의 역할도 지난 두 번의 원내대표 때와는 상이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박지원 의원은 정치권에 남은 몇 안 되는 '정치 9단'으로 통한다. 명분과 실리를 다 가져가는 노련한 협상가 스타일이다. 현재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에서 하마평에 오르는 원내대표 후보군 중에 '밀당'과 '흔들기' 같은 전통적인 '정무적 수단'으로 박지원 의원을 넘어설 인물은 없다는 게 한결같은 지적이다.

    다만 박지원 의원도 종래의 양당제 하에서 제1야당 원내대표 때처럼 굳이 실리를 끝까지 고집하기보다는 오히려 명분 취하기에 중심을 둘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박지원 의원은 지난 2012년 19대 국회가 개원(開院)할 때에는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에 맞서 끝까지 '버티기'로 일관했다. 당시 상임위 두 곳이 추가로 야당에 넘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한구 원내대표가 국방위·외통위를 거론했지만, 박지원 원내대표는 끝까지 국토위와 복지위를 고집했다.

    그 스스로도 이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그 때는 절대 양보하지 않고 무려 두세 달을 국회를 공전시켰다"며 "우리 당 초선 의원들이 찾아와서 '국민들에게 욕을 먹고 무노동무임금 소리가 나오니 그만하자'고 사정했을 때도 '당신들은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 내가 끝까지 욕을 얻어먹고 버텨서 그 두 개의 상임위를 가져오겠다'고 해서 결국 가져왔다"고 회상했다.

    ◆"당리당략 고집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하겠다"

    하지만 이번에는 '문제 해결 정당'을 자임하는 제3당 국민의당의 원내대표가 됐다. 양당제 하에서 '여당에 맞서고 반대하고 발목잡는 게' 능사인 야당과는 역할 자체가 달라졌다.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버텨서 당리(黨利)를 챙기더라도, 명분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현재 국민의당이 처해 있는 입장이다.

    박지원 의원도 이 점을 의식한 듯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의당만을 위한 당리당략적인 그러한 일은 하지 않겠다"며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는 국민의당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고집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합의를 하겠다"고 천명했다.

    수권(受權)이 불가능한 친노·운동권 정당에 있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1년 반 이후의 대선에서 수권이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에 원내 협상 과정에서 명분을 취할 수 있다면 소소한 이익은 내줄 수도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에 따라 향후 20대 국회 원구성 과정에서 박지원 의원의 협상 전략도 기존과는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관계자는 "국민의당 일각에서 캐스팅보터로서의 지위를 최대한 활용해 3개 이상의 상임위를 확보하자는 말도 나오지만, 명분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박지원 의원이 상임위 추가 배분 요구는 하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의당 몫인 2개만 가져가되 산자위와 농해수위 등 '알짜배기' 상임위를 골라서 챙기려고 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 박지원 의원도 "1당이든 2당이든 (원구성 협상을) 자기들 마음대로는 안 된다"며 "내가 합리적으로 나오면 그분들은 더 합리적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