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위기 통감한 새누리당이 하나로 뭉쳤던 그 날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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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3 총선 참패의 후폭풍이 청와대를 뒤덮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새누리당 역시 당명(한나라당)을 변경한 이후 가장 낮은 정당지지율을 기록했다.

    한국갤럽이 22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박 대통령의 지지율(직무 긍정률)은 지난주에 비해 10%p 하락한 29%를 기록했다. 콘크리트 지지율로 평가받던 30%가 무너진 것이다. 부정평가는 지난주에 비해 10%p 오른 58%로 나타났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연말정산 논란과 메르스(MERS) 사태가 있었던 지난해 1월 넷째주 29%를 기록한 바 있다. 한국갤럽 측은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1년전과 비슷하지만 당시에는 새누리당 지지율이 40%를 기록했던 것과 상황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날 발표된 새누리당의 정당 지지율은 30%로 지난주에 비해 7%p 가까이 떨어졌다. 반면 경쟁 상대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주에 비해 4%p 오른 24%, 국민의당은 8%p 오른 25%를 기록했다.

    이번 여론조사는 19일부터 21일까지 전국 성인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대상으로 진행됐다. 전화조사원이 휴대폰 RDD표본 프레임 추출된 번호에 인터뷰 형식으로 조사됐으며 응답률은 20%,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성심의위원회를 참고하면 된다.

     

    당장 출구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들은 여전히 무기력해 보이는 모습이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최근 만난 청와대 관계자들은 총선 얘기가 나오자 대부분 고개를 떨궜다.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는 새누리당의 분위기와 흡사했다.

    계파별 책임론을 묻자, 저 멀리 보이는 북악산을 바라보며 한숨을 짓기 일쑤였다.

    하지만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질문에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지 않느냐."

    "국민을 위한 일인데 하던 일은 마저 해야 하지 않느냐."

    이러한 반응은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발언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 야당과 대화 OK, 단 기존 정책은 유지

    박근혜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기존 정책을 중단 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국정동력 확보를 위해 꽉 막혔던 야당과의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4.13 총선 후 첫 공식석상인 수석비서관회의에서다.

    박 대통령은 지난 18일 "앞으로 민의를 겸허히 받들어서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민생(民生)에 두고, 사명감으로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마무리하도록 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한 "20대 국회가 민생과 경제에 매진하는 일하는 국회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정부도 새롭게 출범하는 국회와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당-정-청(黨政靑) 의사합의에 집중하던 기존 기조의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었다.

    이념적 대결보다는 경제정책을 통한 실리(實利)에 방점을 두겠다는 얘기다.

     

  •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제33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데일리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제33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는 곧 가시적 결과물로 이어졌다.

    정부는 21일 정치권과 한계기업(좀비기업·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감당하지 못하는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여야정(與野政) 협의체' 구성을 추진하기로 했다.

    야권이 경제 회생을 위한 적극적인 기업 구조조정을 제안한 데 대해 정부와 여당이 화답한 것이다. 새누리당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이미 기업의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한 법적 기반은 갖춰진 상태로, 여야정 협의체를 구성해 경제적 약자에 대한 안전장치와 같은 구체적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정부도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야당과 협의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르면 다음주 야당을 방문해 협조를 구하고 필요하면 여야정 협의체를 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일호 부총리는 "구조조정에 협력하겠다고 밝힌 야당에 감사한다"는 인사를 남기기도 했다.

    국정동력 상실을 우려하던 청와대 입장에선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다. 다만 여야의 정치적 셈법이 복잡한 만큼, 정책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신경전은 불기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 경제정책, 국민이 판단해 달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국민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기류가 짙다.

    박근혜 대통령은 22일 청와대에서 '2016 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수술이 무섭다고 안하고 있다가는 죽음에 이를 수도 있으므로 구조조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우리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보건의료 분야 등이 신산업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길을 터줄 수 있고, 파견법은 자영업자와 청년층에게 일자리를 주는 대책인 동시에 뿌리산업 등의 구인난을 해소하는 중소기업 대책"이라고 역설했다.

    핵심 국정과제들을 반드시 관철시키기 위해 대국민 여론전에 나서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국정동력 누수 차단 전략으로 요약된다.

    박 대통령은 나아가 "포퓰리즘적 내용을 담은 법안이나 사업은 현재와 미래세대 모두에게 부담을 지우는 일로, 그 폐해를 국민 모두가 떠안아야 한다는 점을 소상하게 알려서 낭비되는 재정 누수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 ▲ 400조원 빚더미에 파산하는 그리스. ⓒ조선일보 인포그래픽스
    ▲ 400조원 빚더미에 파산하는 그리스. ⓒ조선일보 인포그래픽스

     

    표퓰리즘(Populism)은 흔히 망국병(亡國病)이라 불린다.

    치프라스가 이끄는 급진 좌파세력이 정책을 좌지우지한 그리스가 대표적이다.

    그리스의 재정파탄은 '상대적 과잉 복지' 같은 포퓰리즘 정책을 내놓은 정치권, 세수결손과 왜곡된 세출이라는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의 합작품이다.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면 퍼주기식 공약을 무분별하게 내세운 친노(親盧) 더불어민주당과 잃어버린 10년이다.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이 본격화되면서 경제활성화보다 경제민주화에 편승한 포퓰리즘의 달콤함에 빠져 경제위기가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상식과 여론의 판단에 국가 미래를 맡겼다.

     

    #. 여소야대, 새장 속에 갇혀 있을텐가?

    새누리당 내부 갈등 봉합, 다음은 차기 대권창출이다.

    정무라인 교체가 기정사실화한 상황에서 청와대 내부에선 아직 새누리당의 차기 당권과 원내지도부 선출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 아예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기보단 조심스레 흐름을 읽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강하다.

    친박(親朴)과 비박(非朴) 계파 다툼이 2차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염두한 일종의 배려다. "대통령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친박 내부에서까지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이렇다할 포지셔닝을 가져가는 것도 부담이다.

    일단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할 판이다. 당-청(黨靑) 관계의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로를 향해 총구를 들이대는 최악의 사태는 피하고 볼 일이다.

    지난 2012년 총선과 대선 직전, 위기를 통감하고 모두가 하나로 똘똘 뭉쳤던 기억을 되새겨야 할 때다.

    당내에서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당-청(黨靑) 주도권 경쟁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목소리도 많다. 거대해진 야권에 대항해야 한다는 공통된 목적의식을 갖고 있다면 굳이 싸워야 할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당청관계와 대야(對野) 관계를 함께 조율할 수 있는 중립적 인물이 지도부에 등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정치권은 올해 말부터 사실상 대선정국에 돌입하게 된다.

    강력한 '3자 구도 전략'이 필요하다.

    최악의 패권세력으로 불리는 친노(親盧),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 국민의당, 하염없이 갈 길을 잃고 떠도는 새누리당.

    한국판 삼국지(三國志)가 펼쳐지게 된다.

    여소야대 속에서 '고도의 아젠다' 세팅은 필수적이다. 야권의 독주를 가로막고 차기 정권을 창출해야 할 새누리당이 앞으로 6개월 내에 풀어야 할 숙제다.

    '34% 대 33% 대 33%'

    단 1%를 두고 벌이는 싸움이 앞으로의 대선정국을 가를 수 있다. 양립할 수 없는 친노(親盧)와 안철수 대표다. 어느 정도의 분열과 이탈을 감안하더라도, 세 정당의 대권주자가 향후 팽팽한 신경전 속에서 줄다리기를 할 것으로 관측된다.  

     

  • ▲ 좌측부터 박근혜 대통령,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뉴데일리 DB
    ▲ 좌측부터 박근혜 대통령,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뉴데일리 DB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긴밀한 관계와 국정장악력이 삼각구도를 뒤집을 열쇠라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199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같은 해 3월 열린 14대 총선에서 여당인 민자당은 194석에서 149석으로 크게 줄어 과반(150석) 확보에 실패했다. 이에 여소야대 정국이 조성됐으며 여권은 내분에 휩싸였다. (현재의 새누리당 모습과 흡사하다.)

    당시 민자당 총재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선거 다음날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은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며, 당풍을 쇄신하고 총선에 표출된 민의를 당운영에 적극 반영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같은 달 27일 김영삼 당시 당대표와 단독회동한 후 당무를 일임하고 5월 전당대회 개최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당내 선거 패배 책임론 공방은 대선 후보 선출 국면으로 전환됐다.

    또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같은 달 30일 국가안전기획부장을 비롯해 내무부 등 3개 부처 장관을 교체하는 개각을 단행하고, 경제수석 등 일부 참모진도 교체했다. 전략적인 쇄신안이었다.

     

    하지만 현재 정치권을 살펴보면, 삼국지(三國志)는 있지만 제갈공명(諸葛亮)은 없다. 순욱, 방통, 노숙은 있지만 조조, 유비, 손권은 없다.

    어느 쪽에도 도원결의(桃園結義)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권에 등을 돌린 보수지지층의 마음을 되돌릴 전략이 없다면, 새누리당은 앞으로의 선거에서 백전백패일 수밖에 없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사자성어는 바로 '권토중래(捲土重來)'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