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은 왜 참패했는가? 상당수 보수 유권자들이 새누리당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왜 외면했는가? 새누리당의 너절한 민낯을 보았다고 결론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민낯이란 어떤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순천-곡성 출신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적나라하게 제시했다.


    "지금 정당(새누리당)은 가치도 리더십도 없어요. JC(청년회의소)만도 못합니다. 기껏 선거만을 위해 있는데, 그 선거 대비도 못 하지 않습니까. 선거가 예측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정치 일정에 정해진 것인데 이렇게 개판을 만들어 놓았어요. 이런 정치 지도자가 국가 어젠다는 어떻게 끌고 가겠습니까. 이런 감이 안 되는 인간을 '대선 주자' 반열에 올려 여론조사해주고, 언론에서는 날마다 등장시킵니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당 최고 의결기구인 최고위원회를 열면 매스컴에 보여주기 식 발언만 하지, 국가적 정책을 위해 진지하게 회의를 한 적이 없습니다. 비공개회의로 들어가면 환담,·잡담만 합니다. 이게 1년에 6백억~7백억 원 씩 세금 지원받는 우리 정당의 모습입니다. 이번에 난리를 쳐도 좀 지나면 원상으로 돌아갑니다. 저 권력, 저 오만을 어떻게 이겨 냅니까?"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 ‘최보식이 만난 사람’의 한 대목이다.

    필자는 이명박 정권의 한나라당에서부터 박근혜 정권의 새누리당에 이르기까지, 자다가도 그것만 생각하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미는 게 하나 있었다. 이것들이 표는 보수주의-자유주의 유권자들로부터 받으면서 하는 짓거리는 밤낮 좌파 눈치나 보고 좌파에 아첨이나 하는 게 그것이다. 이명박 진영이 그런 성향에선 더 심했다.

    예컨대 이명박 전 대통령은 손학규 전 야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나도 운동권 출신이니 잘 부탁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신문에서 읽은 것이다. 6. 3 사태 때 고려대학 학생회 간부로서 ‘굴욕외교반대 시위’ 좀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게 무슨 내세울 거리인가? 왕년에 데모 한 번 안 해본 사람 어디 있나...

    그런 그는 노무현 정권에 맞서 자유주의 운동 을 했던 홍진표를 청와대 비서로 내정했다가 좌파 진영이 우~하고 반대를 하니까 하루아침에 이를 어마 뜨거라, 취소해 버렸다. 그 후 어떤 진보성향 시민운동 출신을 청와대 비서로 내정했을 때는 우파 진영이 안 된다고 아우성쳤다. 그러나 MB는 이를 간단히 묵살했다. 좌파는 두려워했고, 우파는 개 무시 했다. 그리곤 해외 방문 길에 황석영을 대동했다. ‘무서운 좌파’에 아첨한 꼴이다. (훗날, 너무 그러면 안 될 듯싶었던지 그는 청남대로 작가 이문열을 초청하기도 했다). 이런 MB를 좌파가 그러면 존중했나? 천만에 말씀, 광우병 사태 이래 좌파는 MB를 철저히 얕잡아보았다.

    한나라당 역시, 출신은 진보의 진(進)도 아닌 것들이 국회의원, 장관이 되고부터는 좌(左)클릭을 하느라 바빴다. ‘중도실용’이라는 것이었다. 중도는 단어 자체로서는 근사한 개념이다. 특히 중도를 중용(中庸)으로 간주했을 때는 너무나 심오하고 고매한 개념이 된다. 그러나 이명박 팀이 써먹은 ‘중도실용’이란 그런 고매한 철학이 아니고, 그저 좌파에 아첨이나 하고 떡 하나 더 주자는 것에 불과했다. 이명박 팀은 그래서 관계(官界)-공공부문-반관반민(半官半民)-민간부문에 광범위하게 뿌리내려 있던 좌파 대못들을 언감생심, 감히 뽑을 생각을 하질 않았다. .. MB 형 이상득 실세는 필자도 참석한 어떤 사석(私席)에서 “그 막강한 대못들을 무슨 수로 뽑느냐?”고 반문했다. 겁나서 못한다는 비명이었다. .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한 동안은 신뢰프로세스다, 대중(對中)외교다 하면서 낙관론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던 게 사실이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미국과 중국에게서 동시에 러브 콜을 받는 건 축복...”이라고 했다. 특히 새누리당은 한나라당 때와 거의 달라지지 않은 철학적 빈곤과, 빈곤한 담론(談論)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이 정도는 그래도 있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금 수저’ 출신인 주제에 표는 한나라당-새누리당 지지자들에게서 받고 정책 인심은 좌파에 쓰는 부류가 많았다. 예컨대 시장경제와 딱히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이른바 ‘사회적 경제체제’라는 것을 앞장 서 발의하는 따위가 그랬다. 그러려면 처음부터 이회창, 박근혜 말고 김대중-노무현 밑으로 갔어야지 김부겸처럼 표리(表裏)가 맞지...

    이런 얌체들에 대해 많은 자유민주 진영 인사들과 유권자들은 역겨움과 구역질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선거 때만 되면 좌파에 표를 줄 수는 없어서 할 수 없이, 그리고 속절없이 한나라당-새누리당 친구들에게 표를 던졌다. 속으론 “저런 맹물들에게 또 표를 주어야 하나...” “저 x들 집권하고 당선되면 또 우리를 배신하고 무시하겠지?” 하면서. 이게 지금까지의 자유민주 진영 유권자와 시민사회의 투표행태였다. 그래서 ‘보수 10년 통치’가 그나마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더는 안 된다. 이 ‘노 모아(no more)’가 4.13 총선에서 있었던 새누리당 참패의 가장 큰 요인이었다. 좌파야 처음부터 아예 반(反)한나라당이다. 문제는 이번엔 보수 상당수가 새누리당에 등을 돌린 것이다. 이제는 두 번 다시 “할 수 없이 새누리당 찍을 수밖에...”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만큼 보수-우파-자유민주주의 유권자들과 시민사회는 새누리당 얌체 족(族)에 화가 단단히 나있었다. “그러다가 초가삼간 다 태우면 어쩌려고...?”라는 이견(異見)과 우려도 물론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저런 엉터리 같은 짝퉁 보수 집단에 언제까지나 인질 잡혀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게 이번의 성난 보수민심이었다. 새누리당, 저대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자유민주 진영의 지도적 담론을 재정비하고, 그것을 추동하는 네트워크를 짜고, 그 네트워크가 자유민주 시민사회 운동을 일으켜, 그것이 일정한 힘을 발휘한다는 게 경험적으로 입증될 경우 그것으로 새누리당에 영향력, 강제력, 견인력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의 가설(假說)일 수 있다. 이번 총선에 드러난 보수 민심의 대대적인 이반(離叛)과 그로 인한 새누리당의 참패가 그 가능성을 희미하게나마 그려보게 했다. 자유민주 시민사회의 진지한 고민이 시작돼야 할 시점이다.

     

    류근일 /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