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층 제도권다운 성숙-가치-원칙-세련”은커녕 시정잡배만도 못했기 때문"
  • 옥새파동을 일으켜 새누리당 참패를 견인한 김무성 대표.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옥새파동을 일으켜 새누리당 참패를 견인한 김무성 대표.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20대 총선 결과는 충격이다.
    국민의당이 호남 본가를 접수하면서, 2당 구조를 3당 구조로 바꿔내는 대승리를 거뒀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은 호남 본가를 내주는 대신 수도권을 싹슬이했고, 부산-경남에서도 둥지를 틀었다.
    새누리는 무기력과 교만에 대해 유권자의 매서운 심판을 당하며 쭈그러지는 과정에서 당내 권력 구조가 [진공 상태]가 될 지경으로 [자동 숙청]이 일어났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기 및 체제위기가 매우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우리 사회의 정당 정치 지형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다. 


    1.

    우선 새누리에게 내려진 유권자의 심판이 무슨 의미인지, 살펴 보자.

    원래 정당으로서의 새누리는 약체였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한 것은 정당의 힘 덕분이 아니라, [박근혜]라는 후보의 힘 덕분이었다.
    당시 국민들은 75%가 넘는 경이적 투표율을 보이며, 박근혜 정부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국민들은 새누리에게 “지도층 제도권다운 성숙-가치-원칙-세련”을 갖추기를 한 층 더 기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새누리가 밟아 온 길은 이와는 정 반대였다.

    당내 의사결정이 마비된 채 이원집정부제 개헌,  국회법 개악, 아시아 문화궁전 퍼주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설치, 현역 영구 지배체제, 동료의원 전화 도청 폭로,  살생부 찌라시 폭로….
    이 같은 이기적이고, 상스럽고, 탐욕스런 행태만 보여왔을 뿐이다.
    이는 “상류층 제도권다운 성숙, 가치, 원칙, 세련”은커녕 시정잡배만도 못 한 짓이었다.

    새누리의 이 같은 행태는 지도층 제도권답지 못 했을 뿐 아니라, (새누리를 포함한 사회 각계 각층의) 지도층 제도권의 무기력-무원칙-탐욕-이기성을 고스란히 폭로했다.
    결국 이는 공천을 둘러싼 힘겨루기로 폭발했고, 지도층 제도권 정당의 대표가 도장을 가지고 도망치고, 다시 돌아와서 헤헤 웃으며 선거 유세를 다니는 꼴불견까지 보여줬다.
    그 정도로 심각한 힘겨루기였다면, 대표직을 내던져야 마땅했으며 일체의 선거 유세를 다니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김무성은 지금 구원투수로 등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장튀]라는 경멸을 받으면서도 선거 유세를 다녔을 뿐 아니라, 유세장에 나온 열혈 지지자에게 “거기 말은 됐고, 가만히 있어!”라는 반말 비슷한 위압적 언사를 저질렀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보며, 국민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너희, 지도층 맞아?
    너희, 제도권 맞아?
    너희, 국가와 사회를 걱정하는 합리적 집단인 것 맞아?”

    이 같은 환멸과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환멸과 의문은 수도권과 부산-경남에서 매서운 심판으로 현실화됐다.

    새누리 의원들이 지도층 제도권을 대표하는 정당의 의원답게, 가치와 원칙을 위해 스스로의 정치생명을 걸 줄 아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한 새누리는 공중분해 된다.
    그 전에 새누리가 [돈상자]로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박근혜 의원이 나서서 [천막 당사 생활]을 통해 새누리를 살려냈다.
    이번엔 [의원 박근혜]가 없기에 새누리 의원 전체가 나서야 한다.
    게다가 이번엔 천막으로는 택도 없다.

    “지도층이란 무엇인가?
    제도권이란 무엇인가?
    어떤 가치-원칙-행태가 요구되는가?”

    이 같은 근본적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김종인 더민주 대표는 국민의당을 향해 “제3당은 여당에 흡수되는 법”이라 악담했지만, 새누리가 국민의당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새누리가 공중분해 되어 국민의당에 흡수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새누리 의원들이  지도층 제도권을 대표하는 정당의 의원답게, 가치와 원칙을 위해 스스로의 정치 생명을 걸 줄 아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지도층 제도권을 대표하는 정당’의 간판을 내릴 수 밖에 없지 않을까?

     


  •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가 9일 오전 경기 성남시 중원구 모란시장에서 열린 성남지역 후보 합동지원유세 나선 가운데 한 상인이 권하는 엿을 받아먹고 있다. ⓒ뉴데일리DB
    ▲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가 9일 오전 경기 성남시 중원구 모란시장에서 열린 성남지역 후보 합동지원유세 나선 가운데 한 상인이 권하는 엿을 받아먹고 있다. ⓒ뉴데일리DB

     

    2.

    새누리의 [범털들]이 지난 몇 달 동안 메이저 언론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온갖 해괴망측한 짓을 하는 동안 안철수와 더민주는 목숨을 걸고 사선을 건넜다.

    우선 안철수를 살펴 보자.
    안철수의 분당은 “죽는 자리”였다.
    “야권분열”에 대한 모든 책임을 걸머지는 수순이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자리 잡아 온 2당 체제를 깨고 제3지대를 만든다는 것은 건곤일척의 승부수였다.

    사실 안철수는 지난 2012년 10월에 이 길을 갔어야 한다.
    그때 필자는 칼럼을 통해 안철수더러 “당신은 끝까지 제3지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2012년에 실망한 이후 필자는 안철수가 영원히 제3지대를 향한 길을 가지 못 할 것이라 보았었다.

    그러나 필자의 예단과 달리, 그는 이번에는 끝까지 제3지대를 향한 길을 갔고 대성공을 거두었다.

    안철수는 호남 본가를 장악했을 뿐 아니라 아직 충분히 사용하지 않은 에너지—“온건하고 합리적이다”라는 이미지에 바탕한 중간층, 부동층 공략—를 갖추고 있다.
    만약 안철수가 이끄는 국민의당이 호남 유권자들을 황주홍이나 유성엽과 같은 온건하고 합리적 성향으로 인도할 수 있다면 안철수/국민의당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거대한 업적을 쌓게 된다.
    한편으로 안철수/국민의당이 ‘온건과 합리’라는 이미지에 합당한 노선과 기반을 다지는 데에 성공하고, 다른 한편으로 새누리 의원들이 “지도층이란 무엇인가? 제도권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통해 스스로 환골탈태하는 데에 실패한다면, 새누리 전체가 공중 분해되어 국민의당에 흡수당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안철수/국민의당이 위와 같은 질적인 진화를 이루지 못 한 채, 새누리가 거대한 각성과 재정비에 성공한다면, 안철수/국민의당의 입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3.

    더민주 역시 이번 총선에서 사선을 건넜다.
    김종인을 얼굴로 내세운 채, 당내의 [노땅]들을 쳐내고 전대협-한총련 주역들이 일선에 나섰다.
    그들 중에는 이석기와 같은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여럿 있다.
    이 역시 당의 사활을 건 모험이었다.

    더민주는 이 모험에서 성공했다.

    호남 본가는 국민의당에 빼앗겼지만 수도권 (특히 그 중에서도 수원-부천-광명-고양-군포-광주)을 싹쓸이했고, 부산-경남에도 탄탄한 벨트를 확보했다.
    대구에서도 김부겸과 (더민주에서 탈당한) 홍의락을 당선시켰다.

    더민주는 호남을 빼앗긴 대신 계층 내지 계급적 기반을 확보했다.
    이는 한국 정당정치사에서 주목할만한 사건이다.
    친북 성향이 있든 없든, 처음으로 “지역 기반과 상관없이, 계층 내지 계급적 기반”에 바탕한 거대정당이 탄생한 것이다.
    더민주의 최대 과제는 “북한의 핵/미사일 및 체제위기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할 것인가?”이다.

    더민주가 만에 하나 햇볕정책에 대해 통렬하게 반성하고, 북한 전체주의에 대해 맹렬하게 비판하며, 자유통일을 열렬하게 지지한다면, 가공할 힘을 가진 [사회민주당] 내지 (자유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의회주의의 틀 안에서 자리잡은) [노동당]이 탄생한다.

    필자는 더민주가 이와 같은 자기 혁신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같튼 자기 혁신을 이루지 못 한다면, 더민주는 [소멸 직전에 가장 강렬한 빛을 뿜고 있는 별]과 같은 존재일 뿐이다.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호남 본가를 상실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날이 온건하고 합리적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노동조합과 괴리되기 때문이다.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지난 10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주변에서 열린 최명길(송파을)후보 지원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데일리DB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지난 10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주변에서 열린 최명길(송파을)후보 지원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데일리DB

     

    4.

    이렇게 안철수/국민의당 및 더민주가 정당 전체의 목숨을 걸고 거대한 모험에 도전하고 있는 동안, 새누리에서는 온갖 추잡스런 일들이 벌어졌다.
    새누리가 이번 20대 총선에서 박살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문제는 이 패배가 단순히 새누리의 패배라는 점이 아니다.
    우리사회 지도층 내지 제도권 전체에 대해 국민들이 묻고 있는 상태이다.

    “당신들, 지도층 맞아?
    제도권 맞아?”

    돌이켜 보면, 우리 사회엔 지도층다운 지도층, 제도권다운 제도권이 제대로 존재한 적 없다.
    우남 이승만이나 박정희와 같은 뛰어난 지도자들을 만나 눈부신 발전을 해 왔을 뿐이다.


    잠시 예를 들어 보자.
    일제는 원래 1910년 8월 21일에 한일병탄을 마감지으려 했었다.
    고종과 그 심복들이 일제에 애걸복걸했다.

    “8월 26일이 대한제국 황제 즉위 4주년 기념일이옵니다.
    이 기념일 행사를 치른 다음에 병탄해 주시옵소서”

    일제가 병탄을 8월 27일로 늦춰주었다.
    고종 및 그 심복들이 주도한 [황제즉위식 및 부속 행사]가 한없이 태평스럽게, 한없이 화려하게 3일 동안 펼쳐졌다.
    이게 백년 전 이땅의 [최상류층]의 멘탈이었다.


    의병활동이 있었다고?

    대표적인 의병장 류인석을 예로 들어 보자.
    그가 의병을 일으킨 것은 “근대국가로서의 독립”을 위해서가 아니라 “중화 중심 질서의 붕괴에 대한 저항”을 위해서였다.
    그의 정신세계는 철저하게 중국의 한족을 지배민족으로 섬기는 [조선의 소중화 탈레반] 관점이었다.
    그래서 군사작전에 대해 비판적으로 발언한 평민 정예 저격부대장을 끌어내어 목을 쳤다.
    나중에 망명생활을 할 때에는, 한족이 만주족을 물리친 신해혁명을 일으키자 한 없이 기뻐했으나, 신해혁명의 주역인 손문 세력이 [공화국]을 선포하자, 중화질서가 무너졌다고 생각하여 한없는 우울에 빠져들었다.


    새누리 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망국 전날까지 오로지 [황제 즉위 기념 파티]만 즐겼던 조선의 지배층과 무엇이 다른가?
    당신들은 [저 천한 상 것이 감히 우리 양반들에게 비판적 발언을 해?’]라고 격분해서 상민 저격부대장을 무참하게 살해한 양반 의병장과 무엇이 다른가?”


    5.

    북한 핵/미사일 및 체제위기는 이제 임계치를 향해 치닫고 있다.
    언제 급변사태가 벌어질 지 모른다.
    지금 정부 임기 안에서도 벌어질 수도 있다.
    아무리 늦어도 20대 국회 임기 안에는 이 같은 일이 벌어진다.

    새누리든, 더민주든, 국민의당이든 [북한 급변사태]를 가장 중요한 기본 전제로 삼아야 한다.
    20대국회 임기 동안, 이를 염두에 두고 정치발전의 길을 향해 가는 정당만이 살아남아 번영할 수 있다.
    자유통일을 위한 국회, 자유통일을 위한 정치세력을 향해 스스로를 변모시켜 발전시키는 정당--그것이 바로 당신들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운명을 알아차리고 오롯이 안아 들이면 위대해진다.
    이를 외면하고 짓밟는 자는 ‘민족이 망하든가, 본인들이 망하든가, 둘 중 하나’의 길을 택한 신세다.

    위대한 혁신인가, 추악한 반역인가—이것이 20대 국회의원들에게 던져진 화두다.



  • 박성현 저술가/뉴데일리 주필.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공산주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재심도,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도 일체 청구하지 않았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본지에 논설과 칼럼을 쓰며, 저술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웹사이트 : www.bangm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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