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 흥정을?

      “미국 정부가 지난 1월 6일 4차 핵실험 며칠 전에
    한국의 ‘휴전’을 종식하기 위해 ‘평화협정’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기로
    북한과 몰래 합의했었다”-월스트리트 저널 2/21자

      위의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에 대해 존 커비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사실이라고 답했다.
    북한이 먼저 미-북 평화협정 체결을 논의하자는 제의를 해왔고,
    미국이 '비핵화'를 논의에 포함시키는 조건으로 이 제의를 수락했으나,
    북한이 이를 거부해 협상은 무산됐고,
    곧이어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했다는 것이다.

  •   문제는 결국 미국의 자세다.

    북한은 4차 핵실험을 할 명분을 축적하기 위해
    평화협정 제의라는 꼼수를 썼는데,
    미국이 이걸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
    비공식 채널(뉴욕 채널)에서 북한과 몰래 소통한 셈이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대량상무기 개발을 억제할 방도가 없어
    그 무대책을 '전략적 인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북한이 만나자고 하니까 그 손을 일단 잡고 본 것이다.
    그것도 한국의 등 뒤에서...

      이 씁쓸한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심각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국제정치에선 동맹국 사이에서도 크고 작은 간극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
    6. 25 전쟁 기간과 그 전후에도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그런 '다른 생각'과 항상 싸워야 했다는 사실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의 건국 전에는 미국 국무부 유화파와 싸워야 했고,
    전쟁 중에는 미국의 쿠데타 기도에도 직면했었다.
    휴전 직전에는 미국의 졸속휴전 기미를 깨뜨리기 위해 '반공포로 석방'으로 맞섰다.
    이게 국제정치의 냉엄한 민낯이다.

     이번에 미국이 "비핵화를 의제에 포함한다면 미-북 평화협정도 논의 못할 것 없다"는
    식으로 임한 것은, 그것도 우리를 따돌린 채 그랬다는 것은,
    이승만-미국 사이에 있었던 것 같은 간극이
    앞으로도 얼마든지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미국이 우리를 소외시킨 채 북한과 직접담판을 한다는 것은,
    그래서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 해체를 초래할 미-북 평화협정 논의까지도
    미국의 흥정 품목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겐 엄중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래서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과 항상 부딪혔고,
    박정희 대통령도 카터 행정부 때 미국과 심각한 갈등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박정희 대통령은 자주국방과 핵개발을 추구하다가 10. 26을 만났다.
    북한이 소형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 탄도탄을 실전배치 할 때
    미국의 정관계, 싱크탱크, 오피니언 계(界) 일각이 또 어떻게 나올지,
    우리로선 깊이 유념해야 할 일이다.

     결론은 자명하다. 지금은 비상시국이다.
    우리가 핵을 거머쥔 북한에 먹히느냐, 살길을 찾느냐의 결정적인 기로다.

    여기서 어영부영, 우왕좌왕 했다가는 그나마 남은 시간마저 잡아먹고 말 것이다.
    시간 여유가 별로 없다. 죽을 각오하고 비상한 결단을 해야 한다.
    그러자면 이승만 대통령처럼 동맹국 조야(朝野)와도 싸워가면서
    그들을 우리 페이스로 끌어 올 위대한 리더십과 위대한 국민의식이 서로 맞물려야 한다.
    응답하라 대한민국, 이럴 수 있나?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