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發 컷오프·호남 물갈이 폭풍 몰아치게 될까
  • 국민의당 김동철·박주선·임내현 의원 등 광주 지역구 현역 의원들이 11일 오후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득권을 내려놓는다는 내용의 공동선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국민의당 김동철·박주선·임내현 의원 등 광주 지역구 현역 의원들이 11일 오후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득권을 내려놓는다는 내용의 공동선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국민의당 광주 지역구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선언, 그 이면에 숨은 함의는 무엇일까.

    권은희(광산을)·김동철(광산갑)·박주선(동구)·임내현(북구을)·장병완(남구) 의원 등 국민의당 광주 지역구 의원 5명은 11일 오후 광주시의회 브리핑실에서 공동성명을 내고 '기득권 포기 공동선언'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권은희·김동철·박주선·임내현 의원이 자리했으며, 장병완 의원은 공동선언문에 이름을 올렸지만 국회 일정으로 참석하지 않았다.

    이들은 공동선언문에서 "4·13총선 공천 과정에서 어떤 기득권도 행사하지 않겠다"며 "국민의당 광주지역 국회의원들은 지역 민심의 높은 기대에 충분히 응답하지 못해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또 "국민의당 공천 과정은 기존의 정당과 다른, 공정하고 투명한 혁신의 모습을 보일 것"이라며 "당에서 정한 공천 룰을 존중하고 의원직을 이용한 어떠한 기득권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정치 신인을 비롯한 모든 후보자들과 함께 민주적 절차에 따라 실시되는 공천 심사와 결과에 승복할 것"이라며 "공천 여부와 상관없이 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선언했다. 기득권을 포기하고 국민의당 당헌에 명시된 공천 기본 원칙인 숙의선거인단 제도를 따르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액면상으로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경선 결과에 따르겠다"는 선언이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들의 '기득권 포기 선언'에 이면의 다른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숙의선거인단 제도는 일반 여론조사나 권리당원 현장투표 등 다른 경선 방식에 비해 현역 의원에게 불리한 것으로 알려졌고, 게다가 정치 신인과 여성·청년에게는 가산점이 부여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굳이 선언식까지 치른 것은, 광주 현역 의원들이 국민의당 천정배 공동대표의 '호남 물갈이론'에 공동 반기를 들고 지도부를 향한 압박에 들어간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민의당 천정배 공동대표는 일찌감치 '뉴DJ' 양산을 외치며 호남권 '현역의원 물갈이'를 주장해왔다.

    천정배 대표는 자신이 이끌던 국민회의와 국민의당이 통합할 당시 "참신하고 유능한 인물, 내가 '뉴DJ'라고 표현해 온 인물들을 공천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로 합의했다"며 "새로운 인재들이 공정한 절차와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달 31일에도 "총선에서 '뉴DJ'를 대대적으로 진출시켜 이 나라의 정치를 재구성하고, 혁명을 이루겠다는 초심을 결코 버릴 수 없을 것"이라며 '뉴DJ 플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정치권에서는 천정배 대표가 지난 3일 "국민의당 스스로 기득권이 되는 일은 결코 없다"며 "기득권을 버리는 헌신의 자세가 되겠다"고 한 것도 현역 의원 교체 의지를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 쪽에서 "기득권을 버리겠다"고 한 것이 현역 의원 물갈이를 시사하는 선전포고의 '장군'이라면, 다른 쪽에서 똑같은 논리로 "기득권을 버리겠다"고 나선 것은 현역 의원도 공정한 경선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멍군'의 의미가 되는 셈이다. 같은 말이지만 다른 독법(讀法)이다.

    정치권에선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된 천정배 대표가 광주 지역의 공천권을 쥐고 컷오프를 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줄곧 제기돼 왔다. 이번 '공정한 경선 선포'는 광주 지역 현역 의원들이 천정배 대표에 맞서 사전 컷오프를 차단하고 공천 경쟁에 뛰어들 명분을 스스로 마련한 셈이다.

    천정배 대표 본인도 같은 국민의당 소속이자 같은 광주 지역 현역 의원임에도 이날 공동선언식에는 불참했다. 공동성명에 이름을 올리지도 않았다. 그가 '뉴DJ론'을 고수하고, 컷오프를 통해 호남 물갈이를 실행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 포기 선언' 이면에 실린 내용을 읽어낸 정치 신인들의 반발이 당장 뒤따르고 있다.

    김경진·김명진·김하중·서정성·정진욱·최경환 등 국민의당 광주 지역 예비후보 6명은 "공천 과정에서 공천 룰을 따르고 의원직을 이용한 기득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말은 너무도 상식적인 것"이라며 "운동선수가 경기에 참여하면서 룰을 지켜야 한다는 상식을 특별히 선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현역의원으로 진정한 기득권 포기는 백의종군을 포함한 희생과 헌신의 결단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며 "국민의당은 친노패권주의와 광주 기존 의원들의 무능에 등돌린 시민의 성난 민심을 직시해야 한다"고 현역 의원들과 대립각을 세웠다.

    천정배 대표의 측근으로 구 국민회의 광주시당 공동위원장을 지낸 김영집 '새로운길' 공동대표도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광주 국회의원들의) 기득권 포기선언이 도대체 어떤 기득권을 포기했는지 모를 정도로 맹탕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광주 민심은 현역의원의 교체 민심이 압도적"이라며 "그간 기득권과 패권·무능정치로 호남정치를 실종시켜 온 현역의원들이 응당한 책임도 없이 경선에 참여해 승복하겠다는 것을 기득권 포기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광주 민심을 한참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국민의당을 향해서도 "만일 이런 정도의 기득권 포기라면 광주 시민은 국민의당을 신당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도로민주당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정배 대표의 '장군'과 광주 현역 의원들의 '멍군', 정치 신인들의 반발이 한데 어우러지는 등 광주 지역구를 둘러싼 국민의당 공천 경쟁이 일찌감치 불붙은 가운데, 공천 대상자가 확실시 될 때까지 양 쪽의 팽팽한 대치는 갈수록 고조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