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李承晩이 아이크에게,
    "미국이 하자는대로 하면 한국은 赤化될 것."

    대한민국은 전쟁을 결심할 수 있는 나라인가(3)

    趙甲濟   


노태우(盧泰愚)와 이승만(李承晩) 비교

우리의 정부·군대·언론·국민은 침략을 받으면 저항은 했지만,
그 이전에 미리 자신들의 책임 하에서 스스로 안보와(安保)와 전쟁을 놓고 고뇌하면서
결단해 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 그리하여 국가와 국민이 위기에 대해서 일체감을 느껴보지 못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그 해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은 1988년 7·7 성명에서 [남·북은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렀으며… 서로를 불신·비방하며 서로를 적대시하는 고통스런 분단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남한의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남북관계를 중립적인 입장에서 가치판단을 배제한 채 논평하는 언론인의 문법을 쓰고 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동족상잔의 전쟁이 아니라 南侵전쟁이다.

우리가 절대로 잊어선 안될 한국전쟁의 책임소재를 애써 애매모호하게 만든 盧 대통령은
이 성명에서 [북한이 미국·일본 등 우리 우방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협조할 용의가 있다]고까지 했다.

그 뒤 우리 정부는 과연 그런 협조를 해오고 있는가. 북한의 허물은 덮어주고 북한을 감싸주는 것이 정치적 인기를 높이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은 일부 在野, 정치권 인사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일과 북한이란 장르가 정치적 인기를 높이는 황금어장이라고 본 일부 정치인들은 지금도 남과 북의 중간에 서서 兩非論이나 兩是論을 토해내고 있다.

남북한 대결구도에서 과연 중립적 입장이 가능한가.
나치즘과의 대결에서 중립적 입장이 가능했던가?

UN의 승인 하에, 즉 국제사회의 공인 하에 세워진 국가, 그것도 민주화된 국가를,
그런 공인을 받지도 못한 노예사회와 평등하게 놓고 객관적 입장을 견지하려는 사람은
한국인인가 외국인인가.
그런 입장을 유행시킨 노(盧)대통령의 6공정부가 휴지화 돼버린 남북합의서를 제외하면 남북관계에서 아무런 실질적 진전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북한을 움직이는 힘은 그들에 대한 아부가 아니라 힘이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이승만(李承晩) 박정희(朴正熙) 두 대통령은 국방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의 문제점을 뼈저리게 느꼈던 지도자이다.
두 대통령은 국방을 미국에 의존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하다가는
한국의 안보를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데서도 같다.

이스라엘은 미국이 하자는 대로 안하고 독자적인 국방정책을 폈기 때문에 살았고
월남은 미국이 하자는 대로 순응했다가 망한 경우다.
  • 이승만 대통령이 방한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에게 경무대(대통령관저)에서 대화하고있다.
    ▲ 이승만 대통령이 방한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에게 경무대(대통령관저)에서 대화하고있다.

  •  이승만(李承晩)은 북진통일이란 카드로써, 朴대통령은 자체적인 무기체제 개발이란 카드로써 미국을 위협하고 자극하여 國益을 도모하였다.

    1954년 2월4일 이승만(李承晩)이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는 최근의 외교 문서 공개 때 포함돼 있었다. 이 친서는 외교적 문체를 무시한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표현으로 차있다.

    [당신은 '우리와 협력하고 전쟁을 다시 시작하지 말자'고 말하는데, 한국의 생존을 부차적인 중요성으로 다루고 있는 나라와 어떻게 협력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한다면 우리는 중국처럼 赤化되든지 지난 40년간의 한국과 같은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敵에게 팔려갈 바에야 차라리 싸워서 같은 민족과 통일을 이루는 게 나을 것이다. 우리가 성공하면 자유민이 될 것이 홀로 싸워 실패하면 노예가 되겠지만 어쨌든 통일은 되는 것이다]

    [좌우간 우리는 결심을 해야 할 때다. 한국의 통일에 대한 당신의 현재 정책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알려주시오]

    '예스냐 노냐'고 단독 직입으로 들이대는 李承晩의 대담한 안보외교 덕분에 한미상호방위조약 체제의 구축과 한국군의 증강이 이루어졌다. 오늘의 한국안보와 경제번영, 그 토대는 李承晩 대통령의 처절한 자주국방 의지가 마련한 것이다.
  • 휴전 반대-북진통일을 외치며 미국을 굴복시킨 이승만 대통령(뒷줄 가운데)이 한미상호방위조약 가조인을 지켜보고 있다. 앞줄 왼쪽 변영태 외무장관과 미국 덜레스 국무장관.(1953.8.8)
    ▲ 휴전 반대-북진통일을 외치며 미국을 굴복시킨 이승만 대통령(뒷줄 가운데)이 한미상호방위조약 가조인을 지켜보고 있다. 앞줄 왼쪽 변영태 외무장관과 미국 덜레스 국무장관.(1953.8.8)
    북핵(北核)문제를 외국사건 다루듯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은 미국과의 관계를 호전시키려고 자주국방의 기치를 내려버렸다.
    그러나 북한에 대해선 [힘의 논리]를 대담하게 구사함으로써 그들의 도발의욕을 최소한의 수준으로 통제하면서 경제안정·정권교체·서울올림픽을 준비하는 데 성공했다.
    노(盧)대통령은 북방외교엔 성공했으나 남북한 협상에선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특히 김일성(金日成)과의 정상회담을 기대하면서 당연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북한핵(核) 문제에 대해서 애써 과소평가 하려는 자세를 유지하였다.

    1989년 여름 미(美) CIA팀이 한국 정부에 대해 북한 核개발의 의혹을 브리핑한 뒤에도 정부와 대부분의 언론은 그 심각성을 축소, 또는 은폐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초기에 북한 核문제를, 외신기사를 인용하여 주로 보도함으로써 마치 외국문제 다루듯 하였다.

    기자는 지금도 1990년 봄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청와대 출입기자, 고위 관료들을 찾아다니면서 북핵(北核)문제가 머지않아 세계적인 뉴스가 될 것 같으니 우리가 적극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말했으나 '미국이 알아서 하겠지' '통일되면 우리 核이 될 텐데' '그런 게 왜 기사거리가 되죠?' 하는 식의 반응이었다. 군인 출신인 노(盧)대통령까지도 우리 국방은 미국이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생각을 갖고 核문제를 등한시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盧대통령이 이 문제를 놓고 고민했다면 지금쯤 그런 비화가 흘러나올 만한데 아직 그런 게 없다. 기자는 김종휘(金鍾輝) 안보담당 수석비서관을 그가 미국으로 도피하기 직전에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때까지도 그는 북한 핵(核)개발의 상황이 별 것 아닌데 과장되고 있다는 인식을 내비치고 있었다.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