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1월 19일부터 23일까지 사우디·이집트·이란 등 중동에 86조 원 투자약속비슷한 시기 EU 찾은 로하니, 프랑스·이탈리아 등 찾아 55조 원 구매·경제협력 추진
  • ▲ 이집트를 찾은 시진핑 中공산당 총서기와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뉴시스-신화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집트를 찾은 시진핑 中공산당 총서기와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뉴시스-신화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21일(현지시간) 이집트를 찾아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만난 시진핑 中공산당 총서기는 전력망, 수송, 국가기반시설 등 15개 프로젝트에서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금액으로는 150억 달러(한화 약 18조 원)에 달했다.

    시진핑은 “이는 이집트 경제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고, 엘시시 대통령은 “이번 합의는 양국 간 협력이 증대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라고 화답했다.

    시진핑의 이집트 투자 및 경제협력 약속은 중동 3개국 순방 일정 가운데 이뤄진 것이다.

    시진핑의 중동 투자는 이집트뿐만이 아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에서도 그랬다. 지난 23일 시진핑이 중동 순방을 마치고 귀국할 때 中공산당 관영매체들은 그 성과를 크게 다뤘다.

    시진핑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았을 때 에너지, 국가기반시설 개발 협력 등 14개 프로젝트와 관련해 협약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란을 찾았을 때는 양국 교역 규모를 현재의 연간 500억 달러 수준에서 향후 10년 동안 연간 6,000억 달러 수준으로 늘리기로 합의했다.

    시진핑이 이번 중동 3개국 순방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이집트를 포함, 중동에 ‘풀기’로 한 돈은 무려 720억 달러(한화 약 86조 원)에 달한다. ‘아랍연맹’ 본부에서의 연설을 통해 중동 국가들의 공업화를 위해 지원하겠다고 밝힌 550억 달러를 포함한 것이다.

    시진핑은 이렇게 2016년 1월에만 중동에 720억 달러의 지원·투자를 약속했다. 그런데 2015년 세계 각국에서 투자하겠다고 밝힌 금액 규모를 보면 입이 벌어진다.

  • ▲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은 시진핑 中공산당 총서기. ⓒ뉴시스-신화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은 시진핑 中공산당 총서기. ⓒ뉴시스-신화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2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시진핑이 2015년 미국, 영국, 러시아, 파키스탄, 벨라루스,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14개국을 방문했을 때 최소 2,000억 달러(한화 약 240조 원) 이상의 투자, 자금대여, 원조를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시진핑은 이번 달에도 중동을 방문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카타르와 200억 달러(한화 약 24조 원) 규모의 공동투자기금을 조성하기로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세계 언론들은 시진핑 中공산당 총서기의 이 같은 ‘돈 보따리 해외순방’의 목적이 ‘일대일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미 첫 발을 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이어 ‘일대일로’ 사업에서 중요한 축인 중동 강국들과 손을 잡기 위해 돈을 풀었다는 설명이다. 중동 국가들에 대한 투자 및 자금지원 약속의 전제조건이 ‘일대일로’ 사업에의 동참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 한다. 

    한편 시진핑의 중동 3개국 순방과 비슷한 시기,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EU 국가들을 찾았다. 24일 시진핑을 배웅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프랑스 등 EU 국가를 방문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이탈리아와 고속철도 건설 계약 등 170억 유로(한화 약 22조 원)에 달하는 돈 보따리를 풀었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와는 14개 분야에서 협력하겠다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 ▲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는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뉴시스-신화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는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뉴시스-신화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회담을 가지면서 에어버스 여객기 118대 구매 등 270억 달러(한화 약 32조 원) 상당의 구매 계약을 맺었다. 프랑스 최대의 석유회사 ‘토탈’, 프랑스 국영철도(SNCF) 또한 이란과 계약을 체결했다.

    프랑스 최대의 자동차 업체인 ‘푸조-시트로엥(PSA)’ 또한 이란 자동차 업체 ‘호드로’와 계약을 맺고 향후 5년 동안 4억 유로(한화 약 5,300억 원)을 투자, 연간 20만 대의 자동차를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이렇게 EU 회원국들에게 뿌린 돈은 모두 450억 달러(한화 약 55조 원)에 달했다. 인구 8,000만 명에다 석유 매장량 세계 2위,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4위라는 잠재성을 본다 하더라도 엄청난 규모의 ‘투자’였다.

    中공산당과 이란 ‘이슬람 혁명정부’의 이 같은 행보에는 공통점이 별로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반서방 동맹 강화’를 위한 포석들이라고 보는 해석들이 많다.

    中공산당은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미국과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 회원국들이 그들의 동맹국과 함께 만들려는 ‘중국 포위망’을 뚫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란은 국제사회의 제재는 2016년 1월 16일을 기해 모두 풀렸지만, 여전히 ‘서방세계’에 대한 불신과 반감을 갖고 있다.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은 ‘시아파 무슬림 혁명국가’이기 때문이다.

    中공산당이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이란을 찾아 돈 보따리를 풀고, 곧이어 이란 대통령이 이탈리아, 프랑스를 찾아 돈 보따리를 풀었다는 것은 中공산당의 ‘일대일로’ 사업이 ‘과거 실크로드 영광의 재현’이라는 명분보다는 ‘반서방 동맹의 현실화’에 가까운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 ▲ 하산 로하니 대통령을 환영하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뉴시스-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하산 로하니 대통령을 환영하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뉴시스-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이탈리아를 찾았을 때 마테로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이란과의 협력은 이탈리아 등 유럽 투자자들이 중동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와 지중해, 북아프리카 지역의 안정성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역으로 해석하면, 이란에게 이탈리아, 프랑스 등은 중동, 아프리카와 EU 진출의 교두보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中공산당에게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와의 협력은 중동 지역에서 미국과 NATO 회원국들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는 데 상당한 ‘지렛대’로 활용될 수 있다. 특히 최근 ‘셰일 에너지 혁명’을 막으려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갈등으로 폭락한 석유 가격 때문에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자본·기술이 필요한 이집트 입장에서 中공산당의 ‘도움’은 미국이나 서방 강대국이 제공하는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다른 측면도 있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궁지에 몰리고 있는 中공산당이 미국의 풀리지 않는 숙제인 ‘중동 정정불안’을 노린 것이라는 해석이다. 주변국이 모두 中공산당을 싫어하는 남중국해 문제와 달리, 중동 지역에서는 ‘친미국가’로 분류된 나라들마저도 미국을 싫어하는 게 보편적이어서, 이 지역에 中공산당의 영향력을 확대한다면, 미국과 남중국해 문제와 중동 문제를 맞바꾸거나 충분히 대등한 지위에서 협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들이 나온다.

    한편 이란 입장에서는 ‘시아파 무슬림 국가’라는 종교적 핸디캡을 넘기 위해서는 중동 무슬림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인 ‘대국’이 전면에 나서는 게 좋다. 바로 중국이다. 이란의 시아파 무슬림이 中공산당을 등에 업게 되면, 시리아 내전에서 러시아를 등에 업고 활동하는 것처럼 중동 곳곳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펼 수 있다.

    미국과 서방 강대국, 그리고 그 동맹국들이 차지하고 있는 세계 패권을 빼앗기 위해 ‘일대일로’ 사업과 AIIB, 대중동 및 이란 투자를 추진하는 中공산당, 과거 북한과 대량살상무기 관련 기술을 공유하면서 협력했던, 친중 국가인 이란의 행보는 철저히 자국의 이익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런 ‘큰 그림’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한국 정부는 이란과의 교역을 늘리기 위해 국장급 TF를 만들고, 기업들의 이란 진출을 돕는 데만 급급해 있고, 中공산당의 ‘일대일로’ 사업에 대해서도 매우 우호적인 평가와 함께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느라 노력 중이다.

    친중-친이란 전략이 한미동맹이나 북한 핵문제와 어떻게 연결돼 있고, 어떤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한 검토는 거의 없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