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리 진

      무대는 단순하고 소품은 단출하다. 조명은 무대 한 중간을 비추는 둥근 핀 조명 하나, 왼쪽 손에만 낀 흰 장갑, 검은 양복에 흰 양말, 그리고 중절모 하나가 전부다. 검정색 양복에는 반드시 짙은 색의 양말을 신어야 한다는 남성 패션의 원칙을 무시한 흰 스포츠 양말, 그리고 흰 장갑은 왜 또 하필이면 한 쪽 손에만 끼고 있을까? 
     

  • 열창하는 마이클 잭슨  ⓒ 뉴데일리
    ▲ 열창하는 마이클 잭슨  ⓒ 뉴데일리

  • 마이클 잭슨: 빌리 진 춤 ⓒ 뉴데일리 
    ▲ 마이클 잭슨: 빌리 진 춤 ⓒ 뉴데일리 
    처음엔 무심한 듯 시작된다. 무릎을 약간 구부린채, 서서히 숨을 고르는 드럼 비트에 맞춰 어깨를 규칙적으로 들석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몇 초후 그는 재빠르게 몸을 펴 모자를 앞으로 힘차게 던진다. 마술사처럼 날렵한 동작이다. 이어서 50년대 시골 건달처럼 머리를 두 어 번 빗어 넘기고는 장갑을 끼지 않은 오른 손으로 뒷 주머니에서 마이크를 꺼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 모두가 순식간에 전광석화처럼 일어난다.
      어느 때는 남성적인 목소리로 어느 때는 여성적인 가성으로, 어느 때는 심장의 박동같은 조용한 리듬만으로 또 어느 때는 포효하듯 온 몸을 뒤틀며 노래하는 그의 록 발라드는 가슴 저린 호소력이 있다. 숨 막힐 듯 빠른 리듬이 휘몰아치는 사이 사이 현악기의 청아한 배경음은 그럴 수 없이 서정적이다. 그리고 앞으로 미끄러지듯 뒤로 가는 소위 문워크, 이쯤에서 관중은 자지러든다. 빌리 진.
      이건 걸작이다.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을 유튜브로 다시 보며 전율을 느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가 “나는 하찮은 인간이지만 내가 만들어낸 것은 완벽한 음악이다”라고 말했듯이 몇 십년 뒤 어느 영화감독은 유령처럼 기이한 얼굴의 주인공으로 하여금 똑같은 대사를 말하게 할지 모른다.
  • 반드시 하얀 스포츠 양말, 춤추는 마이클의 발목 놀림 ⓒ 뉴데일리
    ▲ 반드시 하얀 스포츠 양말, 춤추는 마이클의 발목 놀림 ⓒ 뉴데일리


      발을 구르고, 앞으로 발을 차고, 혹은 무릎을 꿇고 뒤로 미끄러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그 일상적인 동작들이 여기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치밀하게 초 단위로 계산되어 완벽하게 음악과 일치한다.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몸매가 보여주는 정교한 몸놀림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그것이 안무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마치 아무런 규칙도 없이 자유롭게 몸을 놀리는듯한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자유분방함, 우리는 그 자연스러움에 편안히 몸을 맡기고 즐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 자연스러움을 얻기 위해 얼마나 고통스러운 연습과 안무의 과정이 필요했을까. 

    칸트의 예술론을 연상시키는 마이클 잭슨의 댄스 뮤직 

      예술은 그것이 동시에 자연인 것처럼 보이는 한에 있어서 예술이다,라는 칸트의 예술론을 마이클 잭슨의 춤과 노래보다 더 정확히 보여주는 사례는 아마 없을 것이다.
      자연은 예술처럼 보일 때에 아름다운 것이었다. 우리는 자연이건 인공물이건 아름다운 것을 보면 “이건 예술이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런데 반대로 예술은 또 자연처럼 보일 때에만 아름답다. 비록 그것이 예술이라것을 우리가 의식하고 있다 하더라도 마치 그것이 아무런 규칙도 없다는듯이, 일체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 있다는듯이 자연스러울 때 그 대상은 우리의 탄성을 자아낸다. 예술은 물론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인공물이므로 자연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자연의 산물인 것처럼 보이도록 하

  • 마이클 잭슨: 빌리 진 moon walk dance ⓒ 뉴데일리
    ▲ 마이클 잭슨: 빌리 진 moon walk dance ⓒ 뉴데일리

    지 않으면 안된다고 칸트는 말한다.
      의도된 목적을 가지고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예술작품이 자연스럽게 보이려면 그것은 고통스러운 훈련의 과정을 거쳐야만 힌다. 겉보기의 편안한 자유스러움과는 달리 그 뒤에는 규칙에 대한 엄격한 복종이 있다. 참으로 역설적이지 않은가. 정말로 자연 그대로의 어설픈 행동에서 우리는 자연스러움을 느끼기는 커녕 불쾌에 가까운 불편함을 느낀다. TV 카메라 앞에 처음으로 선 보통 사람의 어색한 몸짓과 말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우리는 거기서 불안과 짜증을 느낀다. 그러나 대본을 외우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문 방송인의 청산유수같은 달변 앞에서는 즐겁고 편안함을 느낀다. 사실은 엄격한 규칙에의 복종인데 우리는 그것을 ‘자연스러움’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한 치의 오차 없이 규칙과 일치하는 치밀한 정확성이 있을 때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는 편안한 자유로움을 느낀다.   
      규칙에 대한 고통스러운 복종에서 작품이 산출된다고 해서 거기에 고통의 흔적이 보여서는 안된다. 힘들게 규칙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 일단 눈에 보이면 우리는 안쓰러움을 느낄 뿐 쾌감을 느낄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술가는 자기가 규칙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전혀 보이지 않아야 하고, 마치 규칙 따위는 없다는 듯이 행동해야 하며, 규칙이 그의 심신에 족쇄를 채웠다는 것을 사람들이 눈치채게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마이클 잭슨의 음악에서 짙은 감동을 느끼는 것은 이 완벽에 가까운 자연스러움과 그 자연스러움을 얻기 위해 그가 들였을 피눈물나는 고통의 고귀함 때문이다. 리듬, 음향, 멜로디, 보컬, 댄스 등 모든 부분에서 완벽한 ‘빌리 진’은 우리의 감정만이 아니라 거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다. 최종 곡이 나오기까지 믹싱(mixing)만 91번을 했다고 한다. 가수 자신의 고통스러운 연습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빌리 진의 가사

      실화에 바탕하여 마이클 잭슨이 가사를 쓰고 곡을 붙인 빌리 진은 노랫말도 특이하다. 서정적인 멜로디와 격렬한 보컬에서 얼핏 사랑하는 여인의 이야기를 연상하게 되지만, 실은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이다. 어떤 여자가 자기 아이 중 하나의 아버지가 마이클 잭슨이라고 주장하며 그를 괴롭히던 사건이 그 내용이다.
      교훈적이거나 서정적인것도 아니고, 록 음악이 흔히 그렇듯이 사랑이나 폭력을 담은 것도 아니다. 마치 아무것도 아닌 내용으로도 심금을 울리는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이 그는 무의미한 가사를 가지고 그토록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앨범 스릴러(Thriller)에 포함되는 것으로 제작되었으나 프로듀서인 퀸시 존스와의 의견차이로 결국 앨범에서는 빠지고 1983년 1월에 싱글로 발표되었다.
      퀸시 존스는 도입부 29초를 자르자고 제안했고, 제목도 ‘빌리 진’이 테니스 선수 빌리 진 킹을 연상시키므로 차라리 Not My Lover로 하자고 주장했다. 마이클 잭슨은 고집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앨범에서 곡을 빼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결과는 빌리 진의 엄청난 성공으로 이어져, 마이클 잭슨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감각까지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주었다. 나중에 펩시의 광고음악으로도 쓰인 이 곡이야말로 마이클 잭슨을 결정적으로 전 세계 팝의 아이콘으로 만든 걸작이다.

  • 마이클 잭슨의 Neverland ⓒ 뉴데일리
    ▲ 마이클 잭슨의 Neverland ⓒ 뉴데일리

    상업주의의 승리 

      1982년에 나온 앨범 ‘스릴러’는 마이클 잭슨을 20세기 최고의 팝스타로 굳히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백인만 등장시켰던 MTV의 인종장벽을 깬 것도 이 앨범 덕분이고, 백악관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만난것도 이 앨범의 인기 덕분이었다. 수록 곡 중 거리 폭력배들의 칼 싸움을 절제된 동작으로 양식화(樣式化)한 Beat it!이 인상적이었다. 64비트로 잘게 부순 빠른 리듬과 폭풍같은 기타 간주(間奏)가 곁들여진 노래와 군무는 폭력도 양식화되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앨범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표제곡인 ‘스릴러’이다. 14분 짜리 단편영화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의 동작인 것처럼 완벽한 춤을 추는, 좀비들의 군무는 장관이다. 그야말로 기획의 승리, 상업주의의 승리라 할만 하다.
      상업주의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철저한 상업주의야말로 인간을 고귀한 자아실현의 단계로 상승시킨다고 나는 생각한다. 미국 문화의 특성이기도 한 상업주의는 한 사람의 인간을 파괴할 정도로 그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 실천의 질(質)을 극대화한다.
      처음의 동기는 물론 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충분한 돈이 생긴 다음에도 그치지 않는 한 개인의 집념은 그 내면에 단순히 돈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이미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 돈과 명예를 다 얻었음에도 끊임없이 완벽을 향해 노력하는 운동선수나 대중 가수들에게서 우리는, 비록 순수예술과 대중문화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예술지상주의자들의 순수 미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플로베르, 보들레르, 말라르메 등의 작가와 시인들은 예술을 완성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인생을 희생시킨 채 예술에 매진하였다. 술과 마약으로 자신의 몸을 망가뜨린 보들레르의 자기 파괴 충동은 더 높은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한 자기 희생이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의 이런 순교자적 표상이 천박한 물질적 욕심이라고 매도되는 상업주의에서 발견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흔히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말해지는 철저한 상업주의에는 이처럼 사물의 질을 높이는 기능이 있다. 어떤 이념의 진영에 속했다는 것만으로 노래의 질이 보장된다는 듯, 거만한 표정으로 관객을 가르치려 하는 일부 한국 가수들은 진정 상업주의가 무엇인지를 배워야 할 것이다.

  • 마이클 잭슨: Superbowl heal the world ⓒ 뉴데일리
    ▲ 마이클 잭슨: Superbowl heal the world ⓒ 뉴데일리

    가상과 현실의 중첩 - 스릴러 

     

  • 마이클 잭슨: thriller ⓒ 뉴데일리
    ▲ 마이클 잭슨: thriller ⓒ 뉴데일리

    스토리는 세 겹의 에피소드로 되어 있다. 처음은 소박한 흑인 청년과 흑인 처녀의 데이트 장면이다. 이때 마이클 잭슨은 아직 스물 네살의 아름다운 흑인 청년이었다. 반지를 주며 사랑을 고백하던 청년이 구름에서 달이 나오는 것과 함께 갑자기 늑대 인간으로 변한다. 아가씨는 소리를 지르고, 그 장면은 그대로 극장 관람석으로 바뀐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관람석의 관객과 동일 인물이다. 그들은 관람석에 앉아 늑대 인간의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영화 속 인물들이 바로 자신들의 모습이다. 기분이 나빠진 아가씨가 영화관을 나오고 청년도 따라 나온다.
      풋풋한 젊은 연인들의 산책도 잠깐, 온 천지의 무덤과 관에서 시체들이 나온다. 좀비들의 장면이다. 청년도 늑대인간이 되어 그들과 같이 춤을 춘다. 여자는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다가 외딴 집에 들어가 문을 잠근다. 쫓아와 집을 공격하는 좀비들, 그리고 늑대인간으로 변해 창문을 깨고 들어오는 그녀의 애인.
      그러나 장면은 급변하여 좀비들은 다 사라지고 허물어지던 벽들도 멀쩡하다. 이때까지 좀비들의 공격은 환영(幻影)에 불과했다. 남자는 연인에게 괜한 허깨비를 보고 그러느냐고 위로하며 어깨를 감싸 안고 거리로 나선다. 여인도 안심하고 편안한 얼굴로 남자의 품에 안긴다. 여자의 어깨를 감싸고 화면에 등을 돌린채 걸어가던 남자가 갑자기 얼굴을 돌려 관객을 바라본다. 그 얼굴은 역시 늑대인간이 아닌가!

    남자가 늑대로 변하는 처음의 에피소드는 영화 속 장면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환영(幻影)이다. 그러나  환영은 부정되어 영화관의 장면이 된다. 여기서부터는 현실이다. 그러나 영화관을 나와 산책을 하기 시작하자마자 좀비들이 출몰하기 시작한다. 다시 현실이 환영으로 바뀐 것이다. 이 환영은 젊은 여인이 도망가 숨은 외딴 집으로 좀비들이 쫒아와 집을 부수는 장면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여인의 애인인 남자가 정상적인 모습으로 변하면서 장면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이제 정말 현실 속에서 두 남녀는 서로 껴안고 집으로 향한다. 현실이 승리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뒤돌아 보는 남자의 얼굴은 역시 늑대 인간이 아닌가. 진짜 현실인줄 알았던 현실이 다시 한 번 환영인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것은 더 뒤바뀔 여지도 없이 결정적으로 환영이다.  

    가상이 현실을 압도한 마이클 잭슨의 인생     

      가상이 현실을 거듭 부정하고 마침내 결정적으로 가상의 세계가 들어서는 ‘스릴러’의 스토리는 마이클 잭슨의 인생과 그대로 오버랩된다. 아직 거울 단계도 채 끝나지 않았을 다섯살 때부터 무대 위에 섰던 그는 거울을 보며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기 보다는 비디오 화면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현실과 가상의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학대와 좀비가 출몰하는 세상에 대한 공포가 그로 하여금 정상적인 어른이 되어가는 것을 방해했을 것이다.
      상습적인 아동 성추행의 혐의는 그가 유아적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는 주변에 아이들을 두는 이유에 대해 “아이들을 통해 내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19살이던 77년의 한 인터뷰에서는 쥐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쥐들과 놀 때면 친구와 얘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얗게 분칠한 얼굴에 높은 코, 꺼진 볼, 푹 눌러 쓴 검은 모자, 검은 옷, 마이클 잭슨의 마지막 몇년간의 모습들은 아무리 보아도 현실같지 않았다. 깡통으로 된 허깨비여서 한 번만 내려치면 댕겅 하고 양철 가면이 떨어질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결혼을 두 번이나 하고 아이도 세 번이나 낳았지만 그 아이들 역시 생물학적 아버지도 모르는 가상의 실체들이다. 나비 가면을 쓰고 외출하는 아이들이 하나같이 백인인 것을 보면 마이클 잭슨의 백인 선망이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끝내 그는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고 환상 속에 쌓아 올린 가상의 이미지에 갇힌 채 불행하게 죽었다.

    아들

      마이클 잭슨이 2002년 작성한 유언장은 재산을 어머니 캐서린에게 40%, 세 자녀에게 40%, 자선기관에 20%

  • 8살의 스타 마이클 잭슨 ⓒ 뉴데일리
    ▲ 8살의 스타 마이클 잭슨 ⓒ 뉴데일리

    남긴다고 되어 있다. 아버지 조 잭슨(79)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1993년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그는 “8살때부터 쉴 새 없이 일했다. 아버지만 보면 무서워 구토증이 났다. 지금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청소년기에는 여드름이 심해 무척 소심한 성격이 되었고, 아버지는 그가 못생겼다고 늘 말했다. 그의 얼굴을 만신창이로 만든 과도한 성형은 아마도 이 때 받은 상처 때문인듯 하다.
      권투선수, 록 밴드 기타리스트였던 아버지는 레코드 취입에 실패하자 철강회사 크레인 기사로 일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밴드를 구성했고, 특히 어린 마이클에게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
     그는 가혹하고 엄격한 아버지였다. 창문을 닫고 자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어느 날 밤 무서운 가면을 쓰고 마이클의 방 창문으로 들어가 소리를 지른 적도 있다고 한다. 그 후 몇 년 동안 마이클은 심한 악몽에 시달렸다.  
      아버지는 마이클을 세계적인 팝스타로 만들었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아들을 뒷바라지했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 마이클은 어린 시절을 잃어버렸다.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울 청소년기도 없었다. 8살 때부터 이미 스타였던 그는 주변에 그를 이용하려는 연예계 사람들만 넘쳐났을 뿐 또래의 친구는 하나도 없었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정신적 외상(外傷)(트라우마)이 그의 인생을 내내 지배했고, 그는 평생 처절한 고독 속에서 불행하게 살았다. 

    아버지

      그러나 아버지 잭슨 쪽에서 이야기를 구성해 보면, 그는 성공한 흑인 가장이다. 감정에 동요되지 않는 강철같은 사람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고, 경제적 성공을 이루었으며, 자식들을 모두 출세 시켰다. 60년대 초에 잭슨 일가가 살던 인디애나 주의 게리는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흑인 지역 중의 하나였다. 보통의 흑인 아버지들이 나태와 알콜에 빠져 자기 가정을 버리기 일쑤였지만, 조 잭슨은 9자녀를 이끌고 악착같이 살아 그들을 모두 스타로 키워냈다. 그 중에서도 마이클의 재능을 일찌감치 발견하여 그를 세계적인 스타로 키웠고,

  • 마이틀 잭슨 카툰: 아버지와 아들 ⓒ 뉴데일리
    ▲ 마이틀 잭슨 카툰: 아버지와 아들 ⓒ 뉴데일리

    평생 아들의 방패막이 되어 주었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일방적으로 매도할 일만은 아닐지 모른다. 백인 사회 속에서 천대 받는 흑인 가장이 별다른 직업도 없고, 먹여 살려야 할 아이들은 아홉이나 있을 때, 그래서 유일한 재능인 음악으로 가족 밴드를 결성했을 때, 먹고 살 돈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일해야 했을 것이고, 그 와중에 아이들을 다소 학대하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 전통적인 마초(macho, 철저하게 남성중심적인 사람)로서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워야 한다는 이론은 배워 본적도 없고, 그럴만한 정신적 경제적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마이클의 심성이 너무 여려서 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마이클 잭슨의 부자관계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가장 적나라하게 그리고 가장 최근에 입증해 보여준 사례로 연구해 볼만 하다. 프로이트는 ‘친부살해’의 충동을 인간의 원초적 본능으로 보고, 이것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할 때 정상적인 성인이 되지 못하고 신경증의 인간이 된다고 하였다.
      도스토엡스키, 플로베르, 카프카 등이 모두 아버지로부터 학대 받은 작가들이다. ‘친부살해’의 욕구를 정상적으로 해소하지 못하여 간질이나 신경증의 단계에까지 이른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억압된 욕구를 문학으로 승화시켜 불멸의 걸작을 탄생시켰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모차르트 역시 그러하다. 사르트르의 말마따나 아버지 아들 그 누구도 잘못은 없고, 다만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가 문제인지 모른다.
     
      마이클 잭슨의 죽음 후 전 세계 팬들이 보낸 트위터나 댓글들에는 그와 함께 자신의 유년도 끝났다는 애도의 글이 많았다. 오바마 대통령도 그의 음악을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실토했다. 초등학생이던 두 아이들을 빌미로 그와 함께 제 2의 유년 시절을 보냈던 나도 그의 죽음으로 두 번째의 어린 시절을 떠나 보냈다. 그는 진정 전 세계 젊은이들만이 아니라, 젊은이의 나이 든 어머니들에게도 한 시대의 표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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