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호남 의원 성명, 문재인 '사퇴' 요구 못 담았다

당무를 전횡하고 있는 문재인 대표를 향한 새정치민주연합 호남 의원 18명 공동 명의의 성명이 발표됐으나, 민심의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서는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연대'에 대한 반대와 문재인 대표 사퇴를 요구하는 문안이 성명서에 담길 것으로 전망했으나, 막상 발표된 성명은 "문안박 연대가 '미흡'해 '보완'돼야 한다"고 지적했고 "문재인 대표의 '사과'를 요구한다"는데 그쳤다.

반면 성명이 발표된 같은날 친노 세력은 훨씬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문재인 대표를 결사옹위하겠다는 홍위병(紅衛兵) 행태를 보이기 시작하고, 이에 힘을 받은 문재인 대표는 아직 성사되지도 않은 '문안박 연대'의 권한 문제를 운운하고 나서는 등 야권 내부의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조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전날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23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회동을 가진 새정치연합 호남(광주·전남·전북) 지역구 의원들은 27일 성명을 발표했다.

호남 의원들은 성명서에서 "호남 민심이 당과 멀어진 엄중한 상황"이라며 "호남 민심 복원이 우리 당의 최우선 과제라는데 뜻을 같이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재인 대표의 '문안박 연대'는 취지는 이해한다"면서도 "절차에 있어서 지도부와 협의가 없었고,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한 지도체제로서는 미흡해 보완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지난 18일 광주에서 문재인 대표가 '당대표를 비판한 의원들은 공천권을 요구하는 사람'으로 간주한 것은 폄훼성 발언"이라며 "사과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형식과 내용에서 모두 부글부글 끓고 있는 호남 민심의 기대에 못 미쳤다는 실망이 정치권의 지배적인 여론이다.

전날 오찬 회동에는 23명의 호남 의원이 참석했으나, 이날 발표된 성명에는 18명의 의원만이 이름을 올렸다. 오찬 회동에서 '문안박 연대'를 극력 두둔하며, 주승용 최고위원이 초를 잡은 성명서의 문안을 흠집낸 것으로 알려진 강기정·김성주 의원 등은 끝내 성명서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이처럼 친노(親盧) 성향의 의원들이 빠져나갔음에도 수위도 지나치게 낮았다. 전날 황주홍 전남도당위원장은 "(성명서에 문재인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는) 그런 내용이 안 들어가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했지만, 김동철 의원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선에서 하자면 약간은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했었다.

하지만 발표된 성명서는 모두의 명의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그저 수위만 조절됐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표의 사퇴가 총선 승리의 필요조건"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인구에 회자되는 상황에서 '사퇴'가 아닌 '사과' 요구는 지나치게 김이 빠진다. 황주홍 위원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문재인 대표의 생명연장수단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문안박 연대'에 대해서도 선명한 반대 입장을 피력하지 못하고 "취지는 이해한다"는 둥 "미흡해 보완돼야 한다"는 둥 애매한 입장으로 흘렀다. 오는 29일 입장을 발표할 예정인 안철수 전 대표의 시각에서는 '문안박 연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인지, 거절해야 한다는 것인지 참고자료로도 활용하기 어렵게 됐다는 비판이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역시 당에 비노(非盧)는 없고 친노만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김한길 전 대표가 지난 5월 20일 취재진과의 차담회에서 "친노와 비노가 계파로서 대결하는 구도가 실존하는 게 아니다"라며 "친노가 있고 그 나머지인 '친노가 아닌 사람들'이 있게 됐을 뿐"이라고 설명한 말을 빌린 것이다.

당시 김한길 전 대표는 "비노라고 불리는 이들은 친노가 아니라는 게 유일한 공통점이기 때문에, 단결력이 모자라고 생각이나 행동이 제각각이라는 것은 사실 정확한 지적"이라고 시인했었다. 작금의 국면을 보면, 김한길 전 대표의 지적대로 친노는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폭풍처럼 몰아치는데, 비노는 지리멸렬하며 가끔 하는 대응조차도 이날 성명서처럼 '뜨뜻미지근'한 게 사실이다.

문희상 전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노 중진의원들은 이날 오전 9시에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과장된 어조로 비주류를 꾸짖으며, 독선·독주의 문재인 대표에 대한 일방적인 굴종을 강요했다. 이들 중진의원 18명은 지난 18일 문재인 대표가 '문안박 연대' 제안을 던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튿날 "문안박 체제를 통한 혁신과 통합"을 주문한 바 있다.

이어 오전 10시에는 범친노(汎親盧)로 분류되는 오영식 최고위원이 최고위원직 사퇴를 했다. 오영식 최고위원은 당초 '문안박 연대'를 문재인 대표가 지도부와 사전 협의 없이 제안한 것에 불만을 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날 최고위원직 사퇴 기자회견에서는 "문안박 연대가 비전과 역할로서 실현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오영식 최고위원은 사퇴에 앞서 안철수 전 대표와도 독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당시 독대에서 오간 대화를 놓고 온갖 흉흉한 소문들이 떠돌고 있는 상황이다. 오영식 최고위원은 "안철수 대표의 이런저런 의견이나 고민을 들었고, 내 생각도 말씀드린 바는 있다"고 만난 사실 자체는 시인하면서도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안철수 대표에게 물어보라"고 말을 아꼈다.

일각에서는 오영식 최고위원의 사퇴로 당헌상 명시된 최고당무집행기관인 최고위가 무력화 내지 와해되면서, 자연스레 문재인 대표가 제안한 '문안박 연대'에 모든 권한이 집중되는 초당헌(超黨憲)적 상태에 들어서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하고 있다. 이와 관련,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사실상 당이 유신(維新) 체제에 접어드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문재인 대표의 독선적 독주에 제동이 걸릴 위기가 초래될 때마다, 마치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의 양떼들마냥 나타나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여론을 조작하던 친노 성향 초·재선 의원 48명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이들은 같은날 "문안박 체제 참여가 혁신안 실현의 길이자 당의 단합으로 가는 길"이라며 안철수 전 대표의 백기투항을 압박했다.

한편 문재인 대표는 친노 홍위병들의 조직적인 결사옹위 행태에 상대적으로 여유를 되찾은 듯한 모습이다. 23일 최고위에 감기몸살을 이유로 불참하고, 25일 광주현장최고위는 일방적으로 취소했던 문재인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비공개적으로 유감을 표하는 정도로 사과를 대신하려 했다.

문재인 대표는 "(문안박 연대 제안을) 사전에 제대로 (최고위원들과) 논의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문안박 연대'에 어떻게 실질적 권한을 부여할지, 최고위원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할지 중지를 모아야 한다"고 오히려 반격에 나섰다. 아직 안철수 전 대표가 수락하지조차 않은 '문안박 연대'가 마치 이미 이루어진 양 최고위원회의 권한 일부를 이양할 것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2·8 전당대회 최고위원 경선에서 최다득표로 선출됐으며 지도부 내 유일한 호남 지역구 의원으로 민심을 대변하고 있는 주승용 최고위원은, 문재인 대표의 '꼼수 사과'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승용 최고위원은 비공개 회의가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비공개 사과는 필요 없다"며 공개적인 사과를 거듭 촉구했다. 파문을 일으킨 지난 18일의 문재인 대표 조선대 강연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공개적인 발언의 형태로 이루어진만큼, 사과도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맞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요구다.

그러나 문재인 대표는 마찬가지로 비공개 회의가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공개 사과 여부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자 "대변인에게 들으라. 대표가 왜 그걸 설명하겠나"라고 불쾌한 반응을 보여, 사실상 공개 사과의 의사가 전혀 없음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