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삼 묘역 '돌덩이'를 '봉황알'로 둔갑 시킨 韓國 언론

    구제 불가능의 韓國 언론이 얼마나 미개한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

    김필재  
     
    김영삼 前 대통령이 사망하자 너나할 것 없이 그를 '민주화의 영웅'으로 추켜세우는 것을 보면서 이승만-박정희 이후 대한민국에는 위인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끝판왕’은 김 前 대통령 묘역에서 알모양 돌덩이 7개와 관련된 보도일 것이다.
    이를 두고 거의 모든 언론이 “풍수지리상 좋은 징조”라는 장례위 관계자의 발언을 지금 이 시간에도 기사화하고 있다.

  • ‘YS 묘역 봉황알’ 보도는 한국 언론이 얼마나 미개한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미신은 나라 망치는 지름길이다.

    구한말 나라가 망해가는 꼴을 보고 《매천야록》(梅泉野錄)을 쓴 황현(黃玹)은 조선이 “미친 사람들이 날뛰는 귀신의 나라”라고 했다.

    명성황후(민비)는 첫째 왕자를 낳았으나 항문이 없어 죽자 전국의 명산대천 곳곳에 제를 드리게 하고, 무당을 불러들여 굿판을 벌리며 득남을 기원했다.

    민비는 풍수에도 광신적 집착을 보였는데 1866년부터 자신이 시해당하기 1년 전인 1894년까지 28년 동안 무려 네 번이나 친정아버지의 무덤을 옮겼다. 1875년에는 세자로 책봉된 외아들 순종이 자폐증에 걸리자 좋다는 절 좋다는 약 좋다는 무당은
    다 불러 국고를 탕진했다.

    고종은 병적으로 미신에 빠졌던 인물이다. 1895년 갑오개혁 기간 중에는 궁중에서 쫓겨났던 무당들이 궁중의 모든 일에 영향력을 미치고 국고(國庫)로 들어가야 할 세금까지 가로챘다고 한다.
    러일전쟁 때는 러시아가 승리할 것이라는 무당들의 말을 듣고 안심하기도 했다.

    대원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집권하기 전 지관에게 부탁해 명당 터를 수소문했다.
    이후 지관은 최고의 명당 터라면서 덕산의 한 산기슭을 알려왔다. 대원군이 가보니 그곳에는
    가야사라는 절이 있었다. 그는 가보로 내려오는 귀한 벼루를 팔아서 충청감사에게 뇌물로 주고 가야사를 헐어 버렸다. 그리고 연천에 있던 선친 남연군의 시신을 상여에 담아 모셔왔다.

    그 결과 7년 후에 차남 명복이 태어나고 훗날 고종이 되었다고 한다.
    과연 이 터가 명당일까? 며느리(민비)는 일본 자객의 칼에 맞아 죽고, 자손은 일본으로 끌려가고 후손도 모두 흩어져 버렸다. 대원군도 평화롭게 죽지 못했다. 오히려 나라를 망친 인물로 역사에 남아 있게 되었다. 

    미신은 저속한 영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종교이다.
    IMF로 200만 명의 실업자를 양산하고, 북폭(北爆)을 반대해 지금의 북핵(北核) 위기를 만든
    장본인을 ‘민주화의 영웅’으로 추앙하는 것을 보며, ‘쉽게 잊어버리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구제가 불가능했던 조선의 민낯을 봤던 황현은 결국 자살을 택했다.  

    김필재/spooner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