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공감할 수 있도록 수위 조절해야"… '뜨뜻미지근'해질 듯
  • ▲ 새정치민주연합 호남(광주·전남북) 의원 23명이 26일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오찬 회동을 가진 가운데, 이 회동을 주도한 주승용 최고위원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호남(광주·전남북) 의원 23명이 26일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오찬 회동을 가진 가운데, 이 회동을 주도한 주승용 최고위원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주승용 최고위원의 주도로 광주와 전남·북 등 호남 의원들이 모였으나, 천만뜻밖에 호남 민심과는 유리된 방향으로 결론이 날 조짐이 보여 당 안팎의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

    '문재인 체제로는 안 된다'는 아우성이 영산강과 섬진강, 지리산과 내장산 곳곳에서 울려퍼지고 있는데도, 호남 의원들이 고담준론만 하고 있다보면 결국 분당으로 상황이 치달아 자칫 통합을 위한 마지막 기회마저 잃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표가 지난 18일 조선대 강연에서 호남 정치인들을 '공천권을 노리는 사람들'로 매도한 후폭풍이 잦아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새정치연합 호남 의원들이 26일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2·8 전당대회에서 최다 득표로 선출된 유일한 호남 지도부 인사인 주승용 최고위원과 유성엽 전북도당위원장, 박혜자 광주시당위원장, 황주홍 전남도당위원장은 물론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 호남 현역 27명의 의원 중 23명이 참석했다.

    이날 회동을 주도한 주승용 최고위원은 "호남 민심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어서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수도권이나 호남이나 공감하고 있다"며 "우리 당은 호남을 뿌리로 두고 있는 당이기 때문에 호남 민심의 복원이 최우선 과제"라고 포문을 열었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유성엽 전북도당위원장은 "공개·비공개로 직간접적으로 (결단을) 요구했지만 문재인 대표는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면서 여러 가지 미봉책들을 찾고 있는 상황"이라며 "문재인 대표가 무책임하고 적극적인 수습 의지가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황주홍 전남도당위원장은 "전국적인 수준에서는 우리 당의 지지율이 지금보다 더 나빴던 적도 있었지만, 호남에서 이처럼 우리 당에 대한 지지와 (문재인) 대표에 대한 지지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은 전례가 없는 초유의 일"이라며 "(문재인) 대표의 문제에 대한 인식, 대처에 대한 경로를 보면 '이것은 정말 더더욱 큰 문제구나'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 ▲ 새정치민주연합 호남(광주·전남북) 의원 23명이 26일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오찬 회동을 가진 가운데, 이 회동을 주도한 주승용 최고위원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호남(광주·전남북) 의원 23명이 26일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오찬 회동을 가진 가운데, 이 회동을 주도한 주승용 최고위원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참석자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공개 발언을 하게 된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혁신위 구성 전에는 친노패권주의와 486이 혁신의 대상이었지만, 이제 그분들은 다 어디로 가고 호남만 개혁 대상으로 남았다"며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는데 이 이상 우리 호남이 어떻게 더 죽느냐"고 문재인 대표의 전날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식 메시지를 정조준했다.

    최근 국토교통위원장으로 선출된 김동철 의원은 "호남 민심, 호남 민심 하는데 호남이 아니라 전국 민심이 '문재인 대표로는 총선 승리를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고, 문재인 대표의 살신성인의 결단을 촉구해왔다"며 "문재인 대표의 사퇴는 총선 승리의 필요조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공개 모두발언이 이어질 때만 해도 당장 점심식사도 필요없이 당대표실로 달려가 문재인 대표를 끌어내릴 듯 하던 호남 의원들의 기세는 약 2시간에 걸친 오찬이 진행된 뒤 급변했다.

    당초에는 회동을 끝내고 취재진을 상대로 브리핑을 하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이렇다할 브리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회동 결과를 하루 미루기로 했다"는 통지만 취재진들에게 이뤄졌다. '국상(國喪) 중'이라는 점이 명분이었지만, 문재인 대표의 '문안박 연대' 제안에 대한 안철수 전 대표의 장고(長考)도 '거절이 더디다'며 탓했던 호남 정서와는 동떨어진 '하루 연기' 결정이 아닐 수 없다는 지적이다.

    결과 발표 형식도 기자회견이 될지, 성명서 발표가 될지 계속 조율하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오찬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이견이 노출돼 공감대 형성에 실패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 오찬을 마치고 나선 황주홍 위원장은 "(문재인 대표의 사퇴 촉구) 그런 이야기가 안 들어가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했지만, 강기정 의원은 '사퇴'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에에?"라고 천만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 ▲ 새정치민주연합 호남(광주·전남북) 의원 23명이 26일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오찬 회동을 가진 가운데, 이 회동을 주도한 주승용 최고위원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호남(광주·전남북) 의원 23명이 26일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오찬 회동을 가진 가운데, 이 회동을 주도한 주승용 최고위원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는 "호남 민심이 엄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통합과 혁신의 길을 같이 나아가기로 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을 내놓은 채 말을 아꼈다. 당초 모두발언에서 강경 발언을 내놓았던 김동철 의원은 "광주·전남북 의원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선에서 하려면 너무 비판적이어도 안 되고, 그렇다고 해서 목소리가 없는 것은 더욱 무책임한 것이니까 무언가 목소리는 내야 하고… 좀 더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한 발 물러섰다.

    야권 관계자는 "문재인 대표 사퇴를 요구한 선명한 입장이 있었으나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며 "내일 발표될 성명이 (문재인 대표의) 사과 요구 정도만 실리는 뜨뜻미지근한 성명이 될 지도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이처럼 들끓는 호남 민심을 호남 의원들이 있는 그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전히 호남 요소요소에 친노패권주의에 부화뇌동하는 의원들이 '알박기' 형태로 박혀 있어, 하나의 단합된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광주·전남 의원들은 당이 4·29 재·보궐선거에서 전패하고 주승용 최고위원이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하며 사퇴를 선언한 직후인 지난 5월 18일에도 광주 모처에서 회동했으나, 이 때에도 당직을 갖고 있던 일부 친노 성향 호남 의원들의 반대로 문재인 대표 사퇴 요구를 내는 데 실패했던 적이 있다.

    이 관계자는 "그 때 광주·전남 의원들이 문재인 대표 사퇴 요구에 뜻을 합했다면 당이 이 지경이 됐겠느냐"며 "반년 동안 하릴없이 허송세월만 했는데, 문재인 대표로는 안 된다는 게 더욱 분명해진 지금에 와서도 합의가 안 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탄식했다.

    호남 민심이 '문재인 체제로는 안 된다'며 문재인 대표의 즉각 사퇴를 요구하고 있음에도, 민심을 대변해야 할 지역의 대의대표(代議代表)들이 사분오열된 채 지리멸렬한 논의를 계속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도 높다.

    회동에 참석했던 호남 지역 의원은 "이대로 가다가는 참지 못하고 탈당하는 사람이 나올 것"이라며 "지금 문재인 대표 체제를 개편하는 게 우리 당의 깃발로 통합·단결해서 총선을 치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데, 사라져가고 있다"고 분열 상황을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