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법자 은신처된 법당… '금욕·해탈'에서 '세속·정치'로 불교 이미지 바뀌나
  • ▲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인 도법 승려와 광화문 폭동을 주도한 민노총 한상균 위원장. ⓒ뉴시스
    ▲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인 도법 승려와 광화문 폭동을 주도한 민노총 한상균 위원장. ⓒ뉴시스

     

    11·14 광화문 폭동의 주동자인 민노총 한상균 위원장의 체포를 둘러싸고, 조계사 내 경찰이 진입해야 한다는 주장과 조계사 승려들의 반발이 뒤엉키고 있다. 양 측의 공방이 뜨거운 가운데, 조계사에 경찰력을 투입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불교사태가 재주목 되는 양상이다.

    불교사태는 교계 내 종권 다툼으로 불교정화운동이 일어나자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공권력을 개입한 사건이다.

    불교사태는 승려들 간 갈등을 중재했다기 보다는 한 편에 치중돼 무력 동원을 한 게 아니냐는 평가도 받고 있다. 조계종의 일부 계파가 당시 사태를 통해 세력을 얻은 과거가 있는 만큼, 한상균 위원장의 체포를 두고 공권력 투입을 반대할 입장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998년, 당시 송월주 총무원장은 원장직 3선을 시도했다. 2선까지만 연임하는 전통을 깨는 것이었다. 이에 반발하면서 등장한 세력이 전국승려대회를 통해 출범한 '정화개혁회의'다. 중앙종회와 정화개혁회의의 권력 싸움은 그렇게 시작됐다.

    월하 종정을 중심으로 구성된 정화개혁회의는 불교 내 부패를 척결하겠다며 제 2불교정화운동을 준비했고, 두 세력은 대립이 더욱 첨예해졌다. 추후엔 법적 소송과 물리적 충돌도 잇따랐다.

    이 같은 상황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개입했다. 일각에선 중앙종회 내 호남출신 승려 일부가 김 전 대통령의 측근 참모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주장도 있다.

    김대중 정부는 언론 매체를 통해 양 측의 중립을 지키겠다면서 간섭을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론 중앙종회의 법적·물리적 승리로 끝났다.

    1998년 12월 23일 새벽,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경 6000여 명 규모인 50개 중대를 조계종 총무원에 진입시켰다. 전경들은 최루탄과 물포, 진압봉 등으로 승려들을 제압했으며, 대형 굴삭기 2대로 조계종 문과 장애물 등을 부쉈다.

    정화개혁회의 승려들은 방화로 전경을 막는가하면, 어떤 승려는 윗옷을 벗고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뿌렸다. 칼로 자해한 승려도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폭압에 대해 불교계 일각에선 아직까지도 반발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 때 호남출신 승려들이 조계종을 점령하면서 좌익 성향이 강해진 게 아니냐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 ▲ 당시 사건을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 ⓒ 캡쳐화면
    ▲ 당시 사건을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 ⓒ 캡쳐화면

     

    불교사태의 단초가 된 교 내 권력투쟁은 언제나 세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불교는 타 종교에 비해 금욕을 추구하고 해탈에 도전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조계사가 사회질서에 연무를 뿌리면서 불교에 대한 세인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는 분위기다.

    조계사는 이번 한상균 위원장 사태 이전에도 수차례 범법자의 신변을 보호한 바 있다. 사실 1980-90년 대에는 체포영장이 발부된 범죄자들이 명동성당으로 피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정진석 추기경 이후 명동성당은 이러한 행태를 멈췄고, 조계사가 범법자들의 새로운 피신처로 각광 받는 형국이다.

    조계사가 과거 명동성당의 행태를 답습하는 셈이다.

    조계사는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를 주도해 집시법 위반으로 수배 대상에 오른 관계자 6명을 받아들여 논란을 일으켰다. 또 2013년에는 체포 대상인 철도노조 박태만 수석부위원장과 노조원 3명을 은신시키기도 했다.

  • ▲ 조계사 승려들이 23일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실에 항의 방문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조계사 승려들이 23일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실에 항의 방문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이 같은 여론에도 조계사는 법원의 '체포영장'이 발부된 한상균 위원장을 여전히 보호하며, 이를 비판하는 사람에게 "불교를 탄압한다"는 논리로 반발하고 있다.

    지난 23일에는 조계사 부주지인 담화 승려와 이세용 총무실장을 비롯한 승려 7명이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을 찾아가 고성을 지르며 항의한 바 있다.

    김 의원이 라디오 방송에서 "한상균 위원장은 빨리 나와서 자수 하든가, 자수할 생각이 없으면 경찰 병력을 투입해서 검거해야 한다"며 "조계종에서 잘 판단할 것으로 믿는다"고 주장한 데 따른 반발이다.

    김 의원을 찾은 조계사 승려들은 "우리 사찰이나 법당이 공권력에 침탈되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거냐"며 "조계종은 한국 불교의 상징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집권 여당의 인권위원장이 공권력 투입을 지시한 건 무언의 압력"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진태 의원은 "만인은 법앞에 평등하다. 오히려 종교가 범법자를 두둔하는 결과 가져와선 안된다"고 못 박았다.

    김진태 의원이 사과하지 않자 승려들은 흥분한 듯 고함을 질렀고, "사과할 때까지 내일도 모레도 계속 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 조계사 승려들은 24일에는 김 의원실을 방문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