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 추종 세력과 결합, 왜곡되고 변질된 숙주 '민주화' 분노와 투쟁 뿐
  • 김영삼(왼쪽)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화 동지이자 평생에 걸친 정치 라이벌이었다. 유신 시대가 끝나고 '서울의 봄'이 찾아든 1980년 3월 두 사람이 만나는 모습. ⓒ조선일보 DB
    ▲ 김영삼(왼쪽)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화 동지이자 평생에 걸친 정치 라이벌이었다. 유신 시대가 끝나고 '서울의 봄'이 찾아든 1980년 3월 두 사람이 만나는 모습. ⓒ조선일보 DB

     

    최근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문민정부의 공과(功過)를 재평가하자는 주장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서울대병원 빈소에 모인 정치인들은 흔히 YS의 대표적인 공(功)으로 '민주화'를 꼽으며 지난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이다. 반면 'IMF 구제금융 사태와 경제위기'가 최대의 과(過)라는 지적에는 "수십년 동안 쌓인 나쁜 관행과 고름이 일거에 대폭발한 것"이라면서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목소리가 많다.

    주요 언론들도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타계 소식을 전하며 "민주화(民主化)의 상징이 떠났다"고 아쉬워하는 분위기다. 일부 외신(外信) 역시 "한국 민주화의 투사가 시대를 마감했다"고 보도했다.

    YS는 김대중 전 대통령(DJ)와 함께 '민주화의 기수'를 자처하며 줄곧 대립해왔다. 사실 양김의 정치는 늘상 '투쟁(鬪爭)의 정치'였다. 그들의 민주화는 곧 저항(抵抗)을 의미했다. 

    군부 독재에 맞서 죽음마저 불사하는 투쟁, 격렬한 투쟁으로 얼룩진 험난한 시련의 역사. YS가 이뤄낸 당시의 민주화는 바로 '시대 극복(時代 克服)' 그 자체였다.

    어둠을 지나온 빛은 눈부시게 밝았다. 하지만 그 빛이 시들어가자 더욱 짙은 어둠이 밀려들었다.

    '민주화'가 왜곡돼 부패하기 시작했다.

    1989년 5월 부산 동의대학교에서 시위 중 폭도로 변한 학생들이 경찰과 전경을 감금하고 불을 질러 7명이 불타 죽은 일이 있었다. 그 유명한 '동의대 사건'이다.

    1990년 6월 대법원은 사건 관련 학생 31명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들은 방화치사죄로 최고 무기징역에서 징역 2년까지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 때 모두 사면됐다.

     

  • 1991년 추모탑 제막식 때 오열하는 유족들… 23년 동안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던 부산 동의대 사건의 순직 경찰과 유족의 한이 이제야 풀리게 됐다. 경찰청은 1989년 사건 당시 순직한 경찰 유족과 부상한 경찰들에 대한 보상 절차를 시작했다고 23일 밝혔다. 사진은 순직한 경찰관과 전경 등 7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91년 5월 3일 충북 중원군 중앙경찰학교에 세워진‘충의선양탑 제막식’에서 유족이 오열하는 모습. ⓒ조선일보 DB
    ▲ 1991년 추모탑 제막식 때 오열하는 유족들… 23년 동안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던 부산 동의대 사건의 순직 경찰과 유족의 한이 이제야 풀리게 됐다. 경찰청은 1989년 사건 당시 순직한 경찰 유족과 부상한 경찰들에 대한 보상 절차를 시작했다고 23일 밝혔다. 사진은 순직한 경찰관과 전경 등 7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91년 5월 3일 충북 중원군 중앙경찰학교에 세워진‘충의선양탑 제막식’에서 유족이 오열하는 모습. ⓒ조선일보 DB

     

    나아가 DJ 정권에서 사건 관련자들은 돌연 '민주화 운동자'로 둔갑했다.

    방화치사범이 왜 갑자기 민주화 운동자로 바뀐 것인지 쉬이 납득하기 어렵다. 경찰과 전경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의 관련자들이 민주 헌정질서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 자유와 권리를 회복시킨(민주화 운동 보상법) 유공자로 대접받게 된 것이다.

    동의대 사건 주범 등은 1인당 평균 2,800만원씩 보상금도 받았다. 당시 방화 학생들을 변호했던 이는 현(現)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인 문재인 변호사였다.
     
    이에 반해 순직 경찰과 전경 유족들에게는 쥐꼬리 만 한 보상(공무원 연금법과 군인 연금법에 따른 368만~1,890만원)만 돌아갔다.

    당시 경찰은 "법적 정당성을 흔들고 경찰 사기를 저하시키는 결정"이라며 반발했다. 순직 경찰 유족들도 반발하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2005년 10월 헌법재판소는 "학생들을 민주화운동자로 인정해도 유족들의 명예를 직접 훼손한다고 할 수 없다"며 각하했다.

    '민주화'라 쓰고 '비정상'이라 읽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2009년 이명박(MB)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희생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 발의됐다. 그러나 이마저도 친노(親盧) 세력과 야당의 반대에 가로막혀 국회에서 수년간 계류하다 2012년 2월 본회의를 통과했다.

    동의대 사건으로 인해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앞으로 민주화운동 보상 관련 개정 법률안 국회 청원은 물론 헌법소원까지 다시 검토할 계획"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5년 11월, 지금 이시간에도 '민주화'를 부르짖고 있는 세력이 있다.

    수많은 과정을 거쳐 민주화가 이뤄졌음에도 여전히 과거의 원한에서 스스로 해방되지 못하거나 해방되기를 거부하는 정신적 관성(慣性)에 사로잡힌 이들이다.

    1980년대 이후 민주화 운동에 북한 김씨왕조의 가짜 민족주의 선동이 먹혀들어 북한을 동정하고 미국을 미워하는 여론이 형성됐다. 1980년대의 좌경화된 민주화 운동 세대는 대학을 졸업하고 정치, 언론, 노동계, 법조계, 학계 등으로 진출했다. 이들에 의해 친북(親北)-반미(反美) 여론이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 폭력 시위에 신음하는 의경들. ⓒ페이스북 캡처화면
    ▲ 폭력 시위에 신음하는 의경들. ⓒ페이스북 캡처화면


     

    [평양-전체주의]
    추종 세력은 이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비정상의 결합이 이뤄졌다.

    '민주화'라는 탈을 뒤집어쓰고 온갖 이적행위(利敵行爲)를 서슴지 않았다. 이미 민주화된 정부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고 악담을 일삼았다.

    '민주화'를 악용한 세력은 주한미군철수 → 국가보안법철폐 → 평화협정체결 → 연방제통일이라는 북한의 대남(對南) 노선을 추종했다.

    갈길을 잃은 분노와 투쟁심이 그릇된 폭력행위로 이어졌다. 

    YS가 낳은 '민주화'의 씨앗이 결국 종북(從北)-친북(親北) 세력의 숙주가 된 셈이다. 절차적 민주주의 도입에는 성공했지만, 전체주의 추종 세력의 사회 진출을 방조(幇助), 방기(放棄), 방관(傍觀)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전체주의와 자유주의]의 대결 구도, 이러한 인식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오직 민주화와 투쟁만을 강조하고,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분법적 구도로 보는 시각은 하루 이틀 사이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11.14 광화문 폭동] 쇠파이프와 철제 사다리로 의경들을 폭행하던 세력을 보면 1989년 동의대 사건이 떠오른다.

    테러를 방불케하는 폭도들의 고함에 수많은 시민들이 벌벌 떨었다. 언제부터인가 '폭력성'이 '민주화'로 변질되고 있다. '거짓 선동, 왜곡 날조, 폭력 집회'가 마치 민주화의 일환인양 왜곡되고 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방관(傍觀)해 나온 '가짜 민주화'의 피해를 차기 지도자들이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있다.

     

  • ⓒ채널A 방송화면
    ▲ ⓒ채널A 방송화면

     

    심지어 '원조 종북(從北) 숙주'라 불리는 친노 세력의 좌장, 문재인 대표도 2003년 청와대 민정수석 당시 "경찰의 저지선인 폴리스 라인을 힘으로 무너뜨리는 것은 잘못됐다. 권리를 누리는 만큼 질서유지의 의무도 지켜야 한다"면서 폭력 시위를 비난했었다. 시시각각 말을 바꾸는 문재인 대표지만 당시 같은 진영의 팀킬(Team Kill)이 얼마나 불편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발언이다.  

    광우뻥 선동에서 광화문 폭동까지. '뇌송송 구멍탁'을 떠올리게 하는 일련의 사태들은 '민주화의 변질'이 얼마나 큰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지를 투영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광화문 폭동을 '불법 폭력사태'로 규정한 뒤, "불법 폭력행위는 대한민국의 법치를 부정하고 정부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에야말로 배후에서 불법을 조종하고 폭력을 부추기는 세력들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처리해서 불법과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YS가 발탁했다는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이 아니다. YS가 뿌려 놓은 '가짜 민주화'를 바로잡고 있는 이는 바로 자신이 "독재자의 딸", "칠푼이"라고 비난했던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날 오후 2시쯤 YS 빈소를 찾아 7분 간 조문했다. 따로 방명록 쓰지 않았다. 침통한 박 대통령의 표정 뒤에는 어떤 속마음이 숨겨져 있었을까.

    '저에게 왜 이렇게 많은 짐을 남겨두고 가셨나요?'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낳은 비정상을 바로 잡으며, 한켠으로는 답답하고 안타까워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오후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를 방문해 조문하고 있다. ⓒ뉴데일리
    ▲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오후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를 방문해 조문하고 있다. ⓒ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