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의원 "국민 여론 대변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양심대로 말한 것"승려들 "설교 들으러 온 줄 아느냐, 내일도 모레도 계속 오겠다"
  • ▲ 조계사 승려들이 23일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실에 항의 방문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조계사 승려들이 23일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실에 항의 방문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조계사의 정치 개입이 정의구현사제단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조계사는 11·14 광화문 폭동 주동자인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의 신변을 보호하면서 경찰의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하는 한편, 이를 비판하는 국회의원들을 찾아가 항의 방문과 시위를 일삼고 있다.

    종교의 본질인 영성과 내세는 뒤로한 채 현세에 치중한 모습이 고려 시대의 정치 승려를 떠올리게 한다. 이들은 여론의 지탄에도 불구하고 '부처의 자비'라는 명목 뒤에 숨어 독선의 합리화를 시도하고 있다.

    조계사 부주지인 담화 승려와 이세용 총무실장을 비롯한 승려 7명은 23일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실을 찾았다.

    조계사가 범법자 한상균의 신변을 보호하는 것과 관련, 지난 20일 김 의원이 YTN 라디오에서 "한상균 위원장은 빨리 나와서 자수 하든가, 자수할 생각이 없으면 경찰 병력을 투입해서 검거해야 한다"며 "조계종에서 잘 판단할 것으로 믿는다"고 주장한 데 따른 반발이다.

    이들은 김진태 의원실에 공식 면담 요청도 하지 않은 채 오후 2시에 방문할 것을 기자들에게 알렸다. 그러나 조계사 내부 회의가 길어지면서 의원실에는 4시께 도착했다. 승려들이 방문하자 김 의원은 법제사법위원회 법안 심사 도중 면담을 위해 의원실로 돌아왔다.

    이날 김 의원은 "국민 여론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양심대로 말한 것"이라고 입장을 견지했다. 이에 흥분한 승려들은 "당신에게 설교들으러 온 줄 아느냐"며 고성을 지르는가 하면, 김 의원이 법사위 회의 차 자리를 비운 후에도 김 의원 방과 의원실 복도에서 불경을 외우며 시위를 벌였다.

    승려들은 김 의원이 끝내 돌아오지 않자 "내일도 모레도 사과할 때까지 계속 오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 ▲ 조계사 승려들이 23일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실에 항의 방문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조계사 승려들이 23일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실에 항의 방문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종교가 범법자 두둔해선 안돼"


    김진태 의원과 마주 앉은 담화 승려는 "우리도 바쁜 날, 딱히 좋은 일로 여기 온 건 아니다"면서 "김 의원이 라디오에서 조계사를 비판한 것에 대해 들어보려고 왔다"고 방문 이유를 밝혔다.

    이어 "김 의원은 새누리당 인권위원장이라던데, 죄가 좀 있는 범법자에게도 인격이라는 게 있지 않나, 범법자는 인격이 존중되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 문제가 있는 사람은 인격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거냐"라며 "우리는 차별없이 누구든 배고프다고 하면 밥을 준다. 왜 김 의원의 잣대로 밥 줄 사람과 안 줄 사람의 선을 긋고 비상식적인 편향을 (주장) 하느냐"라고 따졌다.

    이에 김진태 의원은 "아무나 받아들인다는 말은 한 적 없다. 종교가 중생 한 사람 한 사람을 끌어 안아야 한다는 건 이해한다"면서도 "한상균은 폭력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기 때문에 조계사가 자칫 범법자를 비호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국민적 우려가 많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만큼, 소신 껏 말한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나라가 있어야 종교도 있는 것"이라며 "만인은 법앞에 평등하다. 오히려 종교가 범법자를 두둔하는 결과 가져와선 안된다"고 못 박았다. "그렇게 (수배를 도피하는 식으로) 조계사에 들어온 사람이 검거되지 않고 은신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모습에, 국민들은 치외법권으로 생각할 수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아울러 "우리는 유구한 호국불교(護國佛敎), 애국불교(愛國佛敎)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며 "조계종이 이 명예로운 전통을 살려 난세의 등불이 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를 끌어 내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


    김진태 의원이 사과하지 않자 승려들은 흥분한 듯 고함을 질렀다. 이들은 "우리 사찰이나 법당이 공권력에 침탈되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거냐"며 "조계사에 공권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말은 1만 3000명의 승려들에겐 겁박으로 밖에 안 들린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조계종은 한국 불교의 상징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집권 여당의 인권위원장이 공권력 투입을 지시한 건 무언의 압력"이라며 "2천만 불자를 살인한 행위"라고 단언했다.

    김진태 의원이 법사위 회의를 마무리해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감정이 격양된 승려들은 "공권력 투입해서 조계사를 쑥대밭 만들겠다는 협박이다", "우리에게 훈계하느냐", "내가 당신에게 지금 설교들으러 왔냐", "새누리당 수준이 딱 이 정도네",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테니 끌어내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위협했다.

    방 안에 남은 승려들은 "고집이 보통이 아니다", "전쟁 한 번 하자는 거네, IS가 무서운 게 아니라 국회의원이 무섭다"고 대화를 나눴으며, 의원실과 복도에서 40분 가량 불경을 외우는 등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김진태 의원이 돌아오지 않자 담화 승려는 기자들에게 "법사위를 핑계로 빠져나간 김진태 의원은 우리를 우습게 보는 것"이라며 "사과할 때까지 내일도 모레도 계속 오겠다"고 밝혔다.

    담화 승려는 '한상균을 언제까지 보호할 것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는 "내가 말할 부분이 아니고, 대변인이 할 것"이라고 짧게 답했다.

    조계사 승려들의 항의 방문은 처음이 아니다. 이들은 지난 19일 서청원 최고위원을 찾아가 사과를 받아낸 바 있다. 서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한상균은) 이미 구속영장이 청구된 범법자"라며 "조계종이 (이 자를) 보호하는 듯한 인상을 국민에게 준다면 불교계가 크게 대접받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대접받지 못 한다'는 말에 격노한 조계사 승려 5명은 즉시 서청원 의원실로 갔다. 이에 서 최고위원은 "마음에 걸렸다면 미안하다"며 한 발 물러섰다.

    한편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정치권 일각에선 조계사 승려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조계사 화쟁위원회가 초헌법적 기관인가"라며 "법적·정치적 분쟁을 조계사가 조절하겠다는 건 분쟁을 해결하는 사회적 제도와 장치를 무시한 행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종교가 부패하면 영성을 떠나 세속적 가치에 함몰될 수 있다"며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조계사 승려들의 월권은 불교 신자들이 앞장서 경고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