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日本 최초 征夷大將軍, 백제(百濟)계 坂上田村麻呂

    아내 三善高子, 백제계 도래인(渡來人): 漢字를 익히면 歷史가 보인다

    김필재  
  • 京都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淸水寺(청수사, 일본명 ‘기요미즈테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는 780년에 창건됐다. 
      
      淸水라는 명칭은 사찰이 세워진 音羽山(음우산, 오토바네야마)에서 흐르는 물을 셋으로 나누어 머리위에서 떨어지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에서 유래됐다. 
       
      778년 奈良(나라)에서 온 승려 延鎮이 꿈에서 계시를 받아 영천(霊泉)을 찾아 도착한 곳이 바로 清水寺가 자리 잡고 있는 音羽山이었다고 한다. 
       
      당시 音羽山에는 수백 년에 걸쳐 수행을 계속해왔다는 行叡居士라는 이름의 수행자가 있었는데, 이 수행자가 延鎮에게 자신은 지금부터 동쪽 나라로 여행을 떠나니 뒤를 부탁한다는 말과 남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 후 延鎮은 이곳에 관음상(観音像)을 새겨 안치했는데, 이것이 지금의 清水寺가 조성된 계기라고 한다. 
       
      이후 平安시대의 무관(武官)이었던 坂上田村麻呂(판상전촌마려, 사카노우에 타무라마로, 조상은 百濟 도래인)가 이곳에 있던 자신의 집을 기증하면서 清水寺는 한층 세련된 모습으로 변화했으며, 많은 신자들이 방문하는 유명한 절로 번성하는 계기가 됐다. 
      
      坂上田村麻呂는 무장(武將)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용감한 장수로 환무천황(桓武天皇, 母親인 *高野新笠은 武寧王의 후손)의 총애를 받던 일본 최초의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이었다.
      
      그의 아내였던 三善高子(삼선고자, 미요시타카코)의 경우도 ‘清水寺縁起’(청수사연기)에 따르면 원래 錦部(금부, 니시키베)씨로 백제계 도래인으로 알려져 있다.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한반도에서 건너온 백제인들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清水寺는 源氏物語(원씨물어, 겐지모노가타리, 平安 중기의 소설)를 비롯해 많은 고전문학에 언급되고 있다. 여기에서 平安시대에 이미 많은 참배자가 있었던 것을 추측 할 수 있으며, 근세에 들어와서는 가부키(歌舞伎)의 무대로 자주 등장했다.
       
      清水寺는 京都에서는 드물게 法相宗의 사원으로 본당(本堂)을 비롯한 가람은 화재로 인해 소실된 적이 있으며, 현재의 본당(本堂)은1633년 덕천가광(徳川家光,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기부로 재건된 것이며 다른 건물도 대부분 이때에 재건된 것이다. 
       
      경내(境內)는 표고 242m의 音羽山 중턱에 돌담을 쌓아 세운 건물들이 들어서 있으며, 입구의 인왕문(仁王門)을 지나 서문(西門), 삼중탑(三重塔)등을 거쳐 현재 일본의 국보(國寶)인 본당(本堂)에 이른다. 
      
      본당(本堂)의 동쪽 계단을 내려가면 清水寺라는 이름의 유래인 물이 흘러내리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오토와노타키’(音羽の滝)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여기에서 더 남쪽으로 가면 錦雲渓라 부르는 계곡이 나오고, 이 계곡을 넘어가면 子安塔로 불리는 작은 三重塔이 있다. 한편, 清水寺로 향하는 언덕길에는 京都의 기념품과 전통의상, 공예품을 파는 상점이나 찻집, 음식점 등이 줄지어 있다.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2012-11-20
      
      《*高野新笠: 奈良時代,光仁天皇の妃。桓武天皇の母。和乙継と土師真妹の娘。父方は渡来系氏族で,百済武寧王の子孫。天平1(729)年ごろ結婚し,同5年能登女王,同9年山部王(桓武天皇),天平勝𹐤(750)年早良王を出産。光仁天皇が即位すると姓を高野朝臣に改められ,宝𱄉(778)年従三位となる。桓武即位により皇太夫人,正三位となる。2週間ほど病床につき,延񀊄年末に死去。翌年皇太后を追贈され,天高知日之子姫尊と諡されて大枝陵(京都市西京区大枝沓掛町字伊勢講山とされている)に葬られた。母方にちなむ場所である。諡号は,河伯の娘が日精に感じて生まれた王の子孫ということで付けられたという。渡来系氏族出身の一族から桓武という天皇を出しながら権勢は長くは続かず,高野朝臣という姓は新笠と父乙継のみである。長命であったと推定されるが,藤原種継暗殺事件へのかかわりから早良親王に先立たれたことは晩年の痛みであったろう。孫の平城天皇即位により太皇太后。桓武即位10年に当たり,母真妹が外祖母として正一位を追贈され大枝朝臣姓を賜ったことは,新笠の地位の影響を後世まで残した。すなわち,文人の家系として有名な大江氏の祖である。<参考文献>林陸朗「高野新笠をめぐって」(『折口博士記念古代研究所紀要』3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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