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데일리 기자의 민문연 방문기...게시판 '국정화 반대' 문구 도배
  • 민족문제연구소 건물 안 게시판.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민족문제연구소 건물 안 게시판.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중학교 역사 및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에 대한 정부의 국정 전환 방침 발표로 촉발된 역사전쟁이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싸고 현재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한 갈등은, 교과서 집필기준 및 방향의 변화를 넘어서, 친북적 성향의 전체주의 추종세력과 이에 맞선 자유민주주의 지지 세력 사이의 역사-사상-문화전쟁으로 확전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속칭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은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을 ‘귀태(鬼胎)’의 역사로 비하하면서,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를 비롯한 국부(國父)와 건국유공자들에게 ‘친일-독재’의 낙인을 찍고 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과정을 부르주아의 수탈에 맞선 프롤레타리아의 투쟁, 즉 계급투쟁의 역사로 인식하면서, 이와 대조적으로 평양 전체주의 세습 정권을 미화 왜곡하는 뒤틀린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이들은 북한 땅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아사(餓死)와 무자비한 고문, 성폭행 등 인권참상에 대해선 약속이나 한 듯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현행 검인정 역사교과서 역시 속칭 진보의 역사인식을 그대로 담고 있다. 교과서 파동을 초래한 금성교과서의 근현대사 교과서는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이 교과서는 한국의 현대사를 서술하면서 ‘독재’란 표현을 13번이나 쓴 반면, 북한에 대해선 이 표현을 극도로 아꼈다.

    속칭 진보는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면 친일 독재를 미화할 것”이란 선동적 문구를 앞세워, 여론전을 강화하고 있지만, 국정화를 지지하는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다.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의 여론몰이에도 불구하고, 민심이 크게 기울지 않는 이면에는, 현행 검인정 체제를 유지하는 이상, 왜곡된 역사교육을 바로잡을 수 없다는 공감대가 깔려 있다.

  • 현행 검인정 교과서 8종.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현행 검인정 교과서 8종.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교육청(교육감 조희연)이 친일인명사전 배포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은,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대목이다.

    친일인명사전은 편찬 계획이 언론에 공개됐을 때부터, 집필진 구성과 선정 기준 등에서 균형감을 상실했다는 학계 안팎의 비판을 받아 왔다. 때문에 일부 학부모단체는 친일인명사전을 학교 내 도서로 구입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각급 학교에 보내기도 했다.

    친일인명사전 배포계획을 밝힌 서울교육청의 수장은 조희연 교육감이다.

    성공회대 교수를 지낸 조희연 교육감은,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서 한국사회를 조명한 ‘사회구성체 논쟁’을 집대성한 인물로, 이른바 ‘진보교육감’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에 진영 전체의 힘을 집중하고 있는 속칭 진보가, 조희연 교육감과 친일인명사전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 사전을 펴낸 민족문제연구소(민문련)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1991년 설립된 ‘민족문제연구소는 1986년 문을 연 역사문제연구소와 함께 민중사학의 산실 역할을 한, 속칭 진보의 대표적인 싱크탱크 가운데 한 곳이다.

    민족문제연구수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와 함께 지난 2009년 11월 8일 4,446명의 인물을 수록한 ‘친일인명사전’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자는 편찬 자료의 ‘친북ㆍ좌편향성’ 때문에 큰 사회적 혼란을 일으켰다.

  •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임헌영 소장은 1986년 박원순 서울시장, 남로당 총책 박헌영의 사생아인 원경스님 등과 함께 역사문제연구소 설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뉴데일리DB
    ▲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임헌영 소장은 1986년 박원순 서울시장, 남로당 총책 박헌영의 사생아인 원경스님 등과 함께 역사문제연구소 설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뉴데일리DB

    민족문제연구소가 내놓은 히트상품은 친일인명사전만이 아니다. 이 연구소는 2012년 대선을 몇 개월 앞두고 이승만-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비하한 동영상 <백년전쟁>을 제작, 배포했다.

    동영상 <백년전쟁>은 ‘역사 다큐’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로, 역사적 사실을 악의적으로 왜곡해 두 전직 대통령을 인격적으로 모독했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한국 근현대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인식하는 수정주의적 민중사관이, 국내 역사학계의 주류적 위치를 차지하는 데 있어, 민족문제연구소의 역할은 절대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민중사관을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성과물을 친일인명사전, 동영상 <백년전쟁> 등에 담아 일반 국민들에게 보급하면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본 기자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및 친일인명사전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돼, 민중사학자들의 입장을 직접 듣고자, 서울 청량리에 있는 민족문제연구소를 방문했다. 기자가 민족문제연구소의 문을 열고 들어간 때는 10일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연구소는 건물의 2층과 3층, 5층에 입주해있었다. 문전박대를 당할 각오를 하고 2층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어떻게 오셨느냐”고 묻는 연구소  관계자에게 뉴데일리 기자라고 신분을 밝혔다. 순간 관계자의 얼굴에 잠시 당황한 기색이 돌더니, 3층으로 올라가라는 퉁명스런 답변이 돌아왔다.

    계단을 올라가는 도중, 각종 선전 문구로 도배된 게시판이 눈에 들어왔다. 게시판에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친일독재 미화 절대 안 돼’, ‘역사 쿠데타를 멈춰라’, ‘친일미화 독재찬양, 박근혜 교과서로 배우라고?’ 등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비난하는 문구가 인쇄된 종이들이 붙어있었다.

  •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3층 연구소 사무실은 회색 철문으로 닫혀 있었다. 두세 번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사무실 안은 마치 독서실을 연상케 할 만큼 조용했다. 사방이 칸막이로 막힌 책상을 앞에 두고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열심히 몰두하고 있었다. 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놓인 탁자 위에는 반국가적 메시지를 담은 전단지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며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는 기자에게, 연구소 사무국장 A씨가 굳은 표정으로 다가와 “뉴데일리에서 오셨느냐”고 물었다. A국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무실 안에 있던 사람들의 눈길이 일제히 기자에게 쏠렸다.

    기자가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연구소의 설명이나 입장을 듣고자 왔다”고 방문 목적을 설명하자, A국장은 “우리는 조선-동아-중알일보 취재에 응하지 않고 뉴데일리는 더욱 그렇다. 험한 꼴 당하지 말고 나오라”며 사무실 밖으로 기자를 내보냈다.

    사실상의 ‘문전박대’이긴 했지만, 사무실 밖에서 A사무국장과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기자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들에 대해 여러 논쟁이 있다”고 언급하자, A사무국장은 “예를 들어 박정희가 문제라면 친일을 한 명백한 사실이 있는데도 인명사전에서 박정희를 지워야 하느냐”고 반문하며, “이것은 양보의 문제가 아니다. 그럴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이 동영상은 사진조작 등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뉴데일리DB
    ▲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이 동영상은 사진조작 등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뉴데일리DB

    A사무국장은 뉴데일리를 비롯해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일부 언론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 연구소)에 대해 좌편향이라면서 나쁘다고 하는데 좌편향이 왜 나쁜지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객관적인 사실을 인정하고 가야 대화가 되는 것이고, 그것이 안 되니 대화가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복도에서 짧은 대화를 나눴지만, A사무국장은 기자의 질문에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밝혔다. 기자는 대화를 마치고 A사무국장과 악수를 한 뒤 건물을 나왔다.

    과연 민족문제연구소 측이 말하는 것처럼, ‘친일인명사전’은 ‘객관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 있을까?

    ‘친일인명사전’이 균형감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기초 자료의 편향성 때문이다.

    2001년 12월 2일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는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제1차 국민공청회`를 열었다.

    당시 이만열 편찬 위원장(숙명여대 한국사학과 교수)은 기조발제문을 통해 ‘친일파의 개념과 범주’를 정리했다.

    이만열 교수가 편찬기준을 설명하면서 제시한 기초자료는 다음과 같다.

    1. 조선인민공화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 소집요강(1946.1.30)
    2.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친일파 규정(1946.2.14)
    3.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지방선거 행동강령 중 친일파 규정(1947.1.22)
    4. 경성법조회의 ‘부일협력자, 민족반역자 규정안’(1947.4.14)
    5. 민주주의민족전선의 미소공위 공동결의 6호 답신안(1947.6.12)
    6. 북조선노동당의 미소공위 공동결의 6호 답신안(1947.6.12)
    7. 과도입법의원의 ‘부일협력자·민족반역자·전범·간상배에 대한 특별법률조례’ 초안1947.3.17)
    8. 과도입법의원의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간상배에 대한 특별법률조례’(1947.7.2)
    9. 제헌국회의 반민족행위처벌법(1948.9.22)

    위 내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친일인명사전 편찬위가 기준으로 삼은 기초자료에는 북한과 남한 내 공산주의자들이 만든 문건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 ⓒ 4.16연대 홈페이지 화면 캡처
    ▲ ⓒ 4.16연대 홈페이지 화면 캡처

  • ⓒ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 화면 캡처
    ▲ ⓒ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 화면 캡처

    이 가운데 <조선민주주의민족전선>은, 박헌영이 주도한 <조선공산당>, 연안파의 지도를 받은 백남훈의 <조선신민당 남한지부>, 여운형 주도의 <조선인민당> 등 40여개의 남한 내 좌익세력이 우파진영에 대항해 만든, 범 좌익단체다.

    기초자료의 편향성 때문일까? 친일인명사전은 좌파진영의 친일행위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반면, 우익인사들에 대해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예를 들어 일제 말 징병을 권유하는 글을 썼던 여운형은 친일파 명단에서 빠져 있다.

    오는 14일 ‘민주주의국민행동’과 ‘4.16연대’ 등은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민중 총궐기 대회를 열 예정이다. 최소 5만명 이상이 모여들 것으로 예상되는 이날 집회의 가장 큰 목적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다.

    세월호 참사를 여전히 정쟁의 도구로 삼고 있는 속칭 진보는, 역사교과서 논란을 ‘세월호’ 앞에 슬그머니 갖다 붙였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삼겠다는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기자가 방문했던 민족문제연구소에도 토요일 민중총궐기 대회를 안내하는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민중 총궐기 대회를 알리는 포스터에 인쇄된 선전 문구는 섬뜩했다.

    “모이자 서울로! 가자 청와대로! 뒤집자 세상을!”


    친북-반대한민국적 역사 서술의 편향성을 바로잡자는 것이 과연 세상을 뒤집을 일일까? 포스터의 선정적인 문구가 오래도록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