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에 대한 북한의 반발이 현실화됐다.

    북한은 13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안보리의 대북 결의 1874호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우라늄농축 작업 착수, 새로 추출한 플루토늄의 전량 무기화, 봉쇄시 군사적 대응 등 3개 대응조치를 선언했다.

    특히 북한은 외무성 명의의 발표중 격이 가장 높은 '성명'을 통해 이번 사태의 본질이 '조미(북미) 대결'임을 분명히하고 나섰다.

    ◇성명의 핵심은 '우라늄농축' = 이날 북한 외무성 성명의 골자는 우라늄농축 작업 착수와 새로 추출한 플루토늄의 전량 무기화, 봉쇄시 군사적 대응으로 요약된다.

    이 가운데 핵심은 우라늄 농축작업 착수다. 성명은 "자체의 경수로 건설이 결정된데 따라 핵연료 보장을 위한 우라늄 농축 기술개발이 성과적으로 진행돼 시험단계에 들어섰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미 지난 4월 성명을 통해 우라늄농축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시 성명은 "경수로발전소 건설을 결정하고 그 첫 공정으로서 핵연료를 자체로 생산보장하기 위한 기술개발을 지체없이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수로 발전소에는 저농축(3∼5%) 우라늄이 연료로 사용되지만 농축의 수준을 90% 정도로 높이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고농축우라늄(HEU)이 된다. 북한이 평화적 이용을 명분으로 사실상 핵무기를 만들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보는 이유다.

    고농축우라늄을 이용한 핵무기 개발은 비밀리에 작업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임계질량(20kg)만 모이면 쉽게 폭발하는 장점이 있다. 지금까지 북한이 플루토늄을 이용,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여러차례 핵실험 등을 해왔지만 굳이 이런 실험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얘기다.

    게다가 방사선 노출이 적어 외부로의 핵이전이 매우 용이하다. 2002년 10월 미국의 대통령 특사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터진 'HEU 파문'으로 북.미간 2차 핵위기가 발생한 것도 그만큼 HEU가 심각한 사안이라는 점을 방증한 것이었다.

    북한은 이번 성명에서는 "성과적으로 진행돼 시험단계에 들어섰다"고 했다. 특히 '시험단계'라는 말이 주목된다.

    북한의 농축우라늄 기술 수준은 그동안 논란의 대상이 돼왔다. 2차 핵위기가 터진 이후 미국 당국은 북한이 파키스탄으로부터 20여기의 원심분리기(농축용)를 반입한 것을 확인하는 등 '증거수집'에 열을 올렸다.

    또 원심분리기를 만들 수 있는 150t 가량의 고강도 알루미늄 튜브(관)를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밀수입했다는 사실도 어느정도 드러났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북한이 파키스탄(칸 박사 네트워크)을 통해 입수한 원심분리기를 시험가동하는 단계가 아닌가 보고 있다. 핵무기를 만들 수준으로 가자면 여러단계를 밟아야 하는데 아직 북한의 수준이 그정도까지 가지 않았다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북한이 우라늄 핵무기를 만들 결심을 하고 있다면 결국 시간이 지나면 핵무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번 성명에서 '우라늄 농축'을 선언하고 나선 이유다.

    북한이 성명에서 '새로 추출되는 플루토늄 전량을 무기화한다'고 밝힌 것은 불능화 과정을 중단하고 폐연료봉을 재처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읽힌다. 8000여개의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최대 8kg의 플루토늄을 추출할 경우 핵무기 1개 정도를 만들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동안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플루토늄의 양은 핵무기 6∼8개를 제조할 수 있는 40kg 안팎으로 추정돼왔다. 6자회담 차원에서 북한이 미국에 신고한 약 26㎏에 1994년 북.미 기본합의서 체결 이전에 추출한 것으로 추정되는 10∼14㎏을 더한 수치다.

    2006년 1차 핵실험과 최근 2차 핵실험에서 얼마만큼의 플루토늄을 사용했는지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플루토늄의 양도 세부적으로 추산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성명은 이밖에 "미국과 그 추종세력이 봉쇄를 시도하는 경우 전쟁행위로 간주하고 단호히 군사적으로 대응한다"고 밝혔다. 이는 이번 안보리 결의에서 규정한 대로 유엔 회원국들이 북한을 드나드는 '위험선박'에 대해 선박검색 등을 시도할 경우 북한이 어떻게 대응할 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의 대응 주목 = 북한 외무성 성명은 현 국면을 '본질에 있어서 조미(북미) 대결'이라고 규정했다. 장거리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 이에 맞선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 등 국제사회의 조치를 관통하는 흐름이 북한과 미국간 대결이라는 것이다. 결국 관건은 미국의 대응이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 채택을 계기로 국제사회와 함께 보조를 맞추며 북한 압박을 계속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들어가는 '돈줄'을 철저히 차단하는 미국 당국의 향후 움직임이 주목된다.

    유엔 안보리 결의와 함께 미국 재무부 등은 최근 초정밀 100달러 위폐인 '슈퍼노트' 문제 등을 고리로 다시한번 2005년의 'BDA(방코델타아시아)'와 같은 대북 금융제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BDA 사태 당시 북한은 재외공관으로 제대로 달러를 송금하지 못하는 등 큰 고통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당시 해외 금융기관에 몰래 예치돼있던 김정일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수뇌부의 '통치자금'의 존재도 미국 당국이 상당부분 파악하는 수확을 거뒀다는 관측도 있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취임초 북한에 건넸던 '대화의 손길'이 외면된 만큼 당분간 강경대응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은 끝까지 '대화의 기회'를 닫아버리지는 않겠다는 점도 강조한다.

    결국 선택은 북한이 하라는 것이다. 국제사회와의 무모한 대결을 택하지 않고 6자회담에 복귀하거나 미국과 양자회담을 하겠다고 할 경우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기세로 볼때 쉽게 협상장으로 돌아올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올 여름 내내 북.미간 팽팽한 기싸움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 탓에 외부 변수가 관심이다. 현재 북한에 억류돼있는 미국 여기자 문제는 미국 정부의 '정치적 사안과의 분리' 원칙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끄는 이슈가 되고 있다.

    또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개입도 향후 주목되는 변수가 되고 있다. 중국이 6자회담의 허망한 붕괴를 그대로 지켜보지 않겠다고 할 경우 고위급 특사를 평양에 보내 김정일 위원장의 마음을 돌릴 노력을 할 수도 있다. 또 다음달 태국에서 열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북한의 박의춘 외상이 참가할 경우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의 회담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북.미간 대결 국면에서 예기치 않는 변수에 의해 상황이 반전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이유들이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