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 公黨이라면 의총 열어 지역구·비례대표 정수 당론 확정하라
  • 김대년 선거구획정위원장(사진)은 1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거구획정안 국회 제출이 불발된 것에 대해 사과하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김대년 선거구획정위원장(사진)은 1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거구획정안 국회 제출이 불발된 것에 대해 사과하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국민이 패배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고집이 결국 국민을 꺾었다.

    선거구획정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김대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차장은 13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할 법정기한까지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하게 됐다"며 "죄송하게도 우리 위원회가 국민의 여망을 담아내지 못한 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여야 정치권이 자신들이 다툴 싸움의 장(場)의 룰을 스스로 정하다보니, 선거일이 임박해서야 '벼락치기' 식으로 선거구가 획정되는 일이 반복됐다. 18대·19대 총선 모두 선거일을 불과 1~2개월 앞둔 그 해 2월에야 선거구가 획정됐다.

    이 때문에 이번 20대 총선에서는 국회로부터 독립된 별도의 선거구획정위를 구성했다. 획정위원들도 법정시한인 10월 13일(내년 총선 선거일인 4월 13일로부터 6개월 전)까지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그러한 다짐은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형식상으로는 선거구획정위원장이 대표로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지만, 내용상으로는 주권을 행사해야 할 국민 모두의 패배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국민 모두의 패배는 대체 누구 때문일까.

    정치권과 언론 일각에서는 선거구획정위가 여야 대립의 연장선상에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선거구획정위원 9명 중 위원장인 김대년 중선관위 사무차장만 중립적 인사일 뿐, 각 4명씩은 국회에서 여당과 야당이 결정했기 때문에 결국 여당 성향과 야당 성향이 갈려 아무 것도 의결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정확한 지적이라고 할 수 없다. 선거구를 둘러싼 정치권의 구도 자체가 여야 대립이 아니기 때문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여야 대립 구도가 선거구획정위까지 확장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례로 차정인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야당 성향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지난달 11일 중선관위 관악(사당)청사에서 열린 선거구획정위 전체회의에서 차정인 교수는 엉뚱하게도 새정치민주연합 이윤석 의원(전남 무안·신안)과 고성을 주고받았다.

    차정인 교수가 "비례대표를 줄이는 방법으로 획정위가 해결해주기를 기대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하자, 농어촌 지역구를 대표해 의견을 진술하려고 출석한 이윤석 의원은 "의견을 들어서 반영해주려고도 해야지,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 선거구획정안의 법정시한 내 국회 정개특위 제출이 불발된 것과 관련해, 비례대표를 한 석도 줄일 수 없다고 고집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사진)가 결국 국민을 상대로 승리했다는 평이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선거구획정안의 법정시한 내 국회 정개특위 제출이 불발된 것과 관련해, 비례대표를 한 석도 줄일 수 없다고 고집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사진)가 결국 국민을 상대로 승리했다는 평이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이어 이윤석 의원이 "의견을 수렴해서 논의를 하고 합의를 하는 것이지, 아예 (비례대표를 줄이는) 그것은 생각지도 말라고 말하는 것은…"이라고 항의를 이어가자, 차정인 교수도 불쾌한 표정으로 언성을 높이며 "그렇게 이야기한 적은 없다"고 말을 잘랐고, 이윤석 의원은 다시 "그렇게 말씀했다"라고 반박했다.

    분위기가 싸늘해지자 김대년 위원장이 "오해하지 말아달라"며 "(차정인 교수의 견해는 획정위의) 정리된 의견이 아니고 결론을 내린 적도 없다"고 서둘러 수습에 나설 정도였다.

    만일 여야 대립 구도라면 야당 국회의원이 야당 성향 획정위원과 이렇게 고성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여야 정치권 전체 대(對)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한줌 친노(親盧) 세력', 나아가 '국민 대 문재인'으로 구도를 정리할 수 있다. 이 싸움에서 문재인 대표가 승리하고 국민이 패배한 것이 13일 선거구획정위원장의 '사과 사태'의 본질이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왔다. 더 이상 문재인 대표의 고집에 5000만 국민 모두가 끌려다닐 일이 아니다.

    새정치연합이 공당(公黨)이라면 '비례대표를 한 석도 줄일 수 없다'는 대표 개인의 고집이 당론처럼 돼 버린 희한한 상황을 넘어서, 정식으로 당론을 확정해야 한다. 황주홍 의원(전남 장흥·강진·영암)이 이날 오전 불교방송라디오에서 제안한 것처럼 "당론을 확인하고 결정하는 절차"를 밟기 위해 의원총회를 조속히 소집해야 할 것이다.

    선거구획정위를 좌초시킨 농어촌 지역대표성의 실질적인 확보를 위해 지역구 의석 증원과 비례대표 의석 축소 외에도 △최소 4개 군(郡) 의석 할당 조항 △자치구·시·군 경계 분할 금지의 예외 허용 등 정치권에서 제안된 다양한 방안이 폭넓게 논의돼야 한다.

    정치권을 압박할 수 있는 외부 독립기구의 획정안 제출이 불발됐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일이 아니다. 국민은 총선이 있는 해 2월에 선거구가 획정되는 악습에 넌더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국민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문재인 대표가 마냥 승리감에 도취돼 의기양양해 있을 때가 아니다. '이게 다 문재인 때문이다'라는 말을 시중의 유행어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후속 논의에 진지하게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