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史記꾼의 독백... “좋은 시절 다 갔네”
    위대한 대한민국 역정 가지고 장난치지 마라!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   심상치가 않다. 영 분위기가 껄쩍지근하다.
      지난해 난데없이 “대한민국 60여년은 기적(奇蹟)의 역사”라고 썼던 ‘같잖은 국사 교과서’가 나와 검인정(檢認定) 시장(市場)을 어지럽히려 할 때와는 사뭇 다르다. 만만치가 않다.
      그 때야 노동자 선생님들과 좃불놀이 좋아하는 동네 양반들(실은 대부분 양아치들이다)이 학교 안팎에서 열심히 굿을 해 주시는 바람에 그 ‘같잖은 국사 교과서’로 가르친 고삐리 학교가 한 군데도 없었다. 거기다가 ‘같잖은 국사 교과서’ 집필진이 위안부(慰安婦) 할머니들을 모독하는 듯이 기술하는 어이없는 삽질 덕도 보지 않았던가. 

      그 동안 국사학자 해먹기나 국사 교과서 쓰기 참 수월하고 괜찮았다. 수입(收入)도 짭짤하고... 같은 처지, 같은 생각 가진 동료들과 쎄쎄쎄 해 가며 어려움 없이 지냈는데...
      학계나 교단에서 선후배·제자들에게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학자 취급받는 거 별로 어렵지 않았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60여년이야 뻔하지 않은가?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 그러하니 빨리 망해야 한다!” 이 밑그림 하나면 충분했다.



  •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비급(祕笈:가장 소중히 보존되는 책)이 필요했지. 그 비급(祕笈)이야 북녘의 ‘돼지 문집’이 최고였다. ‘천출맹장(賤出盲腸) 회고록’, ‘식견(食見)있는 지도자(脂盜者) 선집’과 좃선통사, 좃선노동당사, 철학사전, 역사사전 등등 ‘원전(原典)’을 잘 찾는 것도 노하우라면 커다란 노하우였다. 그것들 뒤져서 그럴 듯한 거 하나 베껴 내기만 하면 아주 참신한 시각이라고 주목(注目) 받았었다. 하지만 건성건성 베끼지는 않았다. 큰일 나려고... 건성건성 했다간 훗날 북녘 ‘최고 돈엄(豚嚴)’의 고사총에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데. 
      하여간 이렇게 진보적이니 젊은 제자(弟子)들도 들끓을 수밖에. 물론 그 학계라는 데서 90%를 차지하는 동업자들이야 다 알지만, 인생 뭐 있나? 좋은 게 좋은 거지. 상부상조(相扶相助), 유무상통(有無相通)...

      헌데 이번에는 ‘단일 국사 교과서’라고?
    말이 단일이지 이건 나라가 다하겠다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이런 파쇼적인 폭거(暴擧)가 있을 수 있나. 분통이 터진다. 더군다나 ‘북악(北岳)산장 여주인’까지 앞에 나서고 있다고 하니... 역시 유신(維新)의 딸이라 그런가.

      너의도 붉은 새(鳥)떼들이 아우성을 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이 들린다. 고맙고 백만 원군임에는 틀림없지만, 글쎄? 걱정이다. 어떤 무식한 우이기의 “애들에게 주체사상(主體思想) 가르치려고 하냐?” 이 한 마디가 궁민(窮民)들, 특히 학부모들에게 확 먹히고 있단다. 허기사 내가 쓰기는 했지만, 그 국사 교과서로 공부하다 보면 자기 자식들이 자기 대신 ‘북녘의 돼지새끼’를 어버이로 모시게 된다는 걸 알게 될 텐데 좋아할 리는 없지.


  •  더군다나 지난날 ‘광우(狂牛) 뻥튀기’로 재미 좀 봤던 텔레비전 방송의 지원도 기대하기 힘들어 졌지 뭔가. 그 방송국 사장(社長) 임명하는 무슨 진흥회 이사장이라는 작자가 만만치 않다고들 한다. 너의도 새(鳥)연합 왕초에게 “빨갱이”라고 직격탄을 날린데 이어, 돌아가신 그의 주군(主君)에게는 “변형된 빨갱이”라고 서슴없이 들이대고 있다.
      이게 될 법도 아닌 소리지만, 상황은 녹녹치 않고 심각하다. 너의도의 붉은 새(鳥)들이 개(犬) 짖는 소리로 ‘정신병자’·‘공안 좀비’·‘고카시’ 등 막말과 비아냥을 마구 퍼 부어 대는데도, 주위에서는 대 놓고 말들은 안하지만 “빨갱이, 변형된 빨갱이”에 고개를 끄덕이는 궁민(窮民)들이 무척이나 많다네. 절반(折半)이 훨씬 넘는다고...

      그거 참,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니, 북녘 ‘돼지 문집’을 베낀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제자(弟子)들부터 눈치가 달라진다. 와! 세상인심 무섭네. 그러니 약아 빠진 이 나라 궁민(窮民)들도 언젠가는 다 알아채겠지...
     
      아! 정녕 화려한 날은 이렇게 가고 마는가? 돈도 명예도 서늘한 가을바람에 단풍잎처럼 날려 가는가?
      자,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이 곧 망할 떼법 공화국에서는 역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투쟁을 해야 한다. 이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남들이 뭐라고 하던 우리의 슬로건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역사 교과서의 다양성은 보장되어야 한다!” 바로 이거다. 아직도 우리 곁엔 노동자 선생님들과 좃불을 들겠다는 양반들이 넘쳐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   ‘북악(北岳)산장’ 여주인이야 그 자리에 머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2017년부터 ‘단일 국사 교과서’가 고삐리들에게 보급된다고... 겨우 1년이다. 참으면 된다. 잠시 인내(忍耐)는 쓰겠지만, 그러나 그 열매는 더 달수도 있다. 새(鳥)연합 안경 쓴 대선(大選) 재수생에게 희망을 건다.

      시름과 희망이 오락가락하는 상념(想念)에 젖어 있던 차에, 어디서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 동업자 국사학자다. “아직 집에 있어? 오늘 세월 천막 앞에서 ‘국사 교과서 국정화 규탄대회’가 있잖아 참석해야지, 빨리 출발해!” 아차 그렇지 오늘이지. 그런데 뭘 입고 간다... 옷장을 열어 본다.
      그런 자리에서는 행동하는 양심의 면모(面貌)를 보여야 할 텐데... 탄압(彈壓)받는 가난한 진보(進步) 국사학자 아닌가? 개량(改良) 한복이 좋을까? 허름한 콤비는 어떨까...  고민이 깊다.

      거리에 나뒹구는 은행나무 열매 냄새와 함께 정처 없이 가을은 깊어만 간다.
    <더   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