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도 궁금한 일, 침묵 지켜선 안 돼… DJ는 적극 반박해 용공 의혹 벗어
  • ▲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으로부터 공산주의자라고 확신한다는 지목을 받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문재인 대표는 공산주의자 발언 파문에 대해 직접적인 반박은 않은 채 공개 석상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으로부터 공산주의자라고 확신한다는 지목을 받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문재인 대표는 공산주의자 발언 파문에 대해 직접적인 반박은 않은 채 공개 석상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I'm not a crook!)"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이 한창 논란이 되던 1973년 11월,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국민들은 그들이 뽑은 대통령이 사기꾼인지 아닌지 궁금할 것"이라며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이 발언을 던진 결과, 복잡하게 진행되던 사건은 '닉슨이 사기꾼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것으로 명료해졌다. 사건의 은폐를 지시했던 닉슨의 육성이 녹음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닉슨은 결국 '사기꾼'이 됐고 이듬해 8월 하원에 이어 상원에서 탄핵 결의가 이뤄지기 직전에 자진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고영주 방송문화진흥원 이사장의 '공산주의자' 발언의 후폭풍이 거세다. 고영주 이사장은 지난 2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 국정감사에서 "(문재인 대표가) 공산주의자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6일 같은 상임위의 방송통신위원회 종합감사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렇게 (변형된 공산주의자라고) 봤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은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해임돼야 한다"(이종걸 원내대표) "시대착오적 극우주의자"(주승용 최고위원) "정상이 아닌 인물"(전병헌 최고위원) "극단적인 이념적 편향성을 가지고 백색테러"(오영식 최고위원) "비정상적이고 자격미달"(유승희 최고위원) "나라에 망조가 들지 않은 이상 대단히 부적절한 인사"(추미애 최고위원) "필요한 인사조치 해야"(이용득 최고위원) 등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의아한 것은 정작 '공산주의자'로 지목당한 문재인 대표는 침묵을 지켰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표는 이날 최고위 모두발언에서 누리과정 예산과 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만 언급했을 뿐 고영주 이사장에 관해서는 거론하지 않았다.

    최고위에 앞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도 이종걸 원내대표 등이 공개 발언을 이어갔을 뿐 관례적으로 맨 처음 인사말을 하게 돼 있는 문재인 대표는 연단에 서지 않았다.

    문재인 대표는 고영주 이사장의 발언이 논란이 된 2일에도 자신의 트위터에 "극단적인 편향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내부의 적"이라고 했을 뿐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적극적으로 반박하지는 않았다.

    무엇 때문일까. 새정치연합은 고영주 이사장 발언을 기화로 '임면권자의 책임'을 운운하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공개 질의를 검토하는 등 현 정부를 정조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재인 대표가 공산주의자냐 아니냐'로 사안의 본질이 단순명료해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은 아닐까.

  • ▲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생을 용공 의혹 속에서 고통받았으나, 적극적인 해명과 행동으로 이로부터 벗어났다. ⓒ표=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생을 용공 의혹 속에서 고통받았으나, 적극적인 해명과 행동으로 이로부터 벗어났다. ⓒ표=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평생을 용공(容共) 의혹 속에서 고통받으며 지냈다. 그가 당선됐던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는 그를 직접적으로 지목해 "공산주의자가 아니냐"라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DJ가 이 질문을 한 사람을 상대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내부의 적'이라고 반박·성토하면서 답변을 회피하지는 않았다. DJ는 당시 "공산주의에 반대하고 비판하라는 말에는 이의가 없고 전적으로 공감"이라며 "강릉 (잠수함 침투) 사태 때 공개적으로 김정일과 북한 공산당을 비판하면서 성토하자는 국민대회를 열자고 주장했다"고 적극 해명했다.

    그 결과 DJ는 용공 의혹으로부터 벗어났다. 고영주 이사장조차 6일 국감에서 "지금은 (DJ가 공산주의자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고영주 이사장은 8일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도 "김대중 대통령 때는 대미 관계가 좋았고 주한미군 철수·국보법 폐지 같은 것이 없었다"며 "근거 없이 아무나 공산주의자라고 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DJ의 경우를 보더라도, 공산주의자인지 아닌지는 가만히 침묵을 지키며 다른 사람들의 입을 빌려 지목한 상대방을 성토한다고 결론나는 것이 아니라, 말로써 행동으로써 입증하고 해명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영주 이사장이 신탁(神託)이라도 받아 특정인의 공산주의자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론지을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도 아니다. 고영주 이사장 본인도 2일 국감에서 "(문재인 대표가) 공산주의자라고 한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자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한 것"이라며 "확신하고 있다는 것과 그 사람을 공산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다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야당 의원들은 "말장난"이라고 비난했지만, 말장난이 아니라 이야말로 고영주 이사장의 '공산주의자' 발언 파문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는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고영주 이사장이 '문재인 대표가 혹시 공산주의자는 아닌지' 본인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치열한 논쟁과 토론, 입증을 거쳐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면 용공 의혹은 자연히 벗겨질 것이다. 정작 문제가 제기된 '공산주의자 여부'에 대해서는 침묵을 하면서, 표현과 양심의 자유에 따라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를 이상하게 몰아붙이고 성토해서 해결하려고 할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제는 문재인 대표도 DJ의 전철을 밟아 당당하게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선언을 하고, 적극 해명을 할 필요가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 때 닉슨의 기자회견처럼 '국민들은 그들이 지난 대선에서 48%의 지지를 보냈던 제1야당의 대표가 공산주의자인지 아닌지 궁금할 것'이 아닌가.

    물론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닉슨은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결국 적어도 워터게이트 사건에 있어서만큼은 그가 '사기꾼'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기는 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표가 이를 벌써부터 걱정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