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진입 시도 끝 평화적 해산… 향후 삭발 등 투쟁 강도 높일 듯
  • 여당과 야당, 영남과 호남을 넘어서 농어촌 지역대표성 확보를 위한 목소리가 힘차게 울려퍼졌다. 강원·충북·충남·전북·전남·경북·경남 등 7개 권역에서 모인 농어민 3000여 명(경찰 추산 1500명)은 6일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집회를 열고 농어촌 선거구 현행 유지를 주장했다.

    분노한 농심(農心)이 대규모 상경 투쟁을 전개함에 따라 같은 날 저녁 6시부터 전체회의를 진행할 예정인 선거구획정위원회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역구 증원·비례대표 축소를 통한 농어촌 지역구 유지라는 방안에 나홀로 반대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에게 가해지는 정치적 압력도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 경북 영주에서 상경한 농민들이 농어촌 선거구 통폐합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경북 영주에서 상경한 농민들이 농어촌 선거구 통폐합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농어민 3000여 명 상경 투쟁… 빨갛고 파란 깃발 함께 휘날려

    전국 7개 권역에서 모인 농어민 3000여 명은 이날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1시간여에 걸쳐 집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새누리당 강석호(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 경대수(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 김광림(경북 안동) 김재원(경북 군위·의성·청송) 김종태(경북 상주) 김태흠(충남 보령·서천) 박덕흠(충북 보은·옥천·영동) 안상수(인천 서강화을) 염동열(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 이완영(경북 고령·성주·칠곡) 이이재(강원 동해·삼척) 이철우(경북 김천) 이한성(경북 문경·예천) 장윤석(경북 영주) 한기호(강원 철원·화천·양구·인제) 홍문표(충남 홍성·예산) 황영철(강원 홍천·횡성) 의원이 참석했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강동원(전북 남원·순창) 김성곤(전남 여수갑) 김승남(전남 고흥·보성) 김영록(전남 해남·완도·진도) 김춘진(전북 고창·부안) 박민수(전북 무주·진안·장수·임실) 신정훈(전남 나주·화순) 유성엽(전북 정읍) 이개호(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 이윤석(전남 무안·신안) 주승용(전남 여수을) 황주홍(전남 장흥·강진·영암) 의원이 자리했다.

    이처럼 여야 의원들이 함께 하고 각 의원들의 지역구에서 농어민들이 상경함에 따라, 집회 장소에는 새누리당 당원협의회의 빨간 깃발과 파란 플래카드, 새정치연합 지역위원회의 파란 깃발과 빨간 피켓이 함께 어우러졌다.

  • 경북 영주에서 상경한 농민들(사진 왼쪽)이 구호를 외치고 있는 가운데, 전북 무주·진안·장수·임실에서 올라온 농민들이 같은 장소에 합류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경북 영주에서 상경한 농민들(사진 왼쪽)이 구호를 외치고 있는 가운데, 전북 무주·진안·장수·임실에서 올라온 농민들이 같은 장소에 합류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강동원 "모두 도시에서 사는 비례대표 54명"… "없애야 한다!"

    이날 발언에 나선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농어촌과 농어민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20대 총선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농어촌 선거구가 축소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역설했다.

    새정치연합 황주홍 의원이 "대한민국의 천하지대본이 누구냐"라고 내지르자, 3000여 군중은 "농민이다!"라고 외치며 호응했다. 이어 황주홍 의원이 "이 나라의 주식을 공급한 사람이 누구냐" "이 나라에 쌀을 제공한 사람이 누구냐" "이 나라에 고기를 댄 사람이 누구냐" "누가 대한민국을 먹여살렸느냐"고 물을 때마다 "농민이다!"라는 외침은 점점 커져 주위를 진동시켰다. 황주홍 의원이 "농어촌 선거구를 통폐합해 300만 농민을 적으로 돌리려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자, 군중들은 "늘려야 한다!"고 답했다. 황주홍 의원은 "마지막 한 석까지 사수해달라"는 당부를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넘겼다.

    같은 당의 강동원 의원은 "산업화 과정에서 농촌과 농민, 농업은 충분히 희생했다"며 "뭘 더 희생하란 말이냐"고 부르짖었다. 강동원 의원이 "모두 도시에서 살고 있는 비례대표 54명, 이게 균형 발전을 위한 정책이냐"고 지적하자, 군중들은 "말도 안 돼" "없애야 한다"며 분노로 몸을 떨었다.

    새누리당 김광림 의원은 "경북 안동은 선거구 획정 대상이 아니지만, 가만히 앉아서 보니 이것은 농어촌을 다 죽이려는 정책이라 이 자리에 함께 했다"며 "이렇게 가면 앞으로 농어촌 국회의원은 씨가 마를 것이니, 힘을 합쳐 비례대표를 줄이고 농어촌을 사수하자"고 거들었다.

    지난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위원장을 역임한 홍문표 의원은 "이대로 방관하면 농어촌은 행정·문화·교통은 물론 예산에서도 방치된다"며 "잘못된 획정안을 더 이상 두고볼 수 없으니 농어촌을 전혀 모르는 획정위를 해산하고 새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전남 장흥군에서 상경한 농어민들이 [비례대표 웬말이냐 문재인은 각성하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전남 장흥군에서 상경한 농어민들이 [비례대표 웬말이냐 문재인은 각성하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문재인, 욕 먹어도 싸다"… 호남서 "문재인은 각성하라" 피켓 등장

    이날 집회에서는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에게 농어민들의 원성이 집중됐다. 여야를 막론하고 비례대표 의석을 줄이는 대신 지역구 의석을 늘려 농어촌의 지역대표성을 확보해야 한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문재인 대표가 반대하는 바람에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주시민 우롱하는 선거구 통폐합에 시민들은 분노한다'는 피켓을 들고 집회 장소에 가장 먼저 도착한 경북 영주의 농민들은 "문재인은 각성하라" "새정치를 규탄한다"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 때 전북 무주·진안·장수·임실 지역의 농민들이 나타나자, 장윤석 의원은 "오늘은 여야가 함께 하는 자리이니 그런 구호를 외쳐서는 안 된다"고 만류했다. 하지만 전북 무주·진안·장수·임실 지역 농민들이 되레 "괜찮다" "계속하라"며 "문재인 (대표)은 욕 먹어도 싸다"고 응원했다.

    전남 장흥·강진·영암에서 올라온 농어민들은 '비례대표 웬말이냐 문재인은 각성하라'는 피켓을 들고 나타났다. 전통적인 새정치연합 지지 기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호남에서도 호남 선거구 통폐합에 무심한 문재인 대표를 향한 적개심이 무섭게 꿈틀대고 있다는 점이 느껴졌다. 이들 농어민들은 피켓 문구보다 더 과격한 "문재인은 물러나라"를 외치기도 했다.

    장흥군에서 올라온 박영선(50)씨는 "(선거구 획정이) 우리 농촌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돼 가고 있다고 해서, 사수해야겠다는 생각에 시골에서 올라오게 됐다"며 "주변 사람들도 다들 현재 선거구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전국 각지에서 모인 농어민들은 서로의 열악한 환경에 새삼 놀라기도 했다. 농어촌·지방주권지키기모임 야당 간사인 새정치연합 이윤석 의원이 "정부의 손길이 미쳐야 할 곳은 농촌이고 어촌"이라며 "전남 무안·신안의 행정면적은 서울의 24배이지만 서울에는 48석이 있고 나는 혼자인데, 그것마저 두고볼 수 없다고 한다"고 호소하자, 군중들은 "와따" "크다"라며 놀라움을 표했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인파가 전국 각지에서 집결함에 따라, 일부 농어민들은 집회 주최측에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한 농민은 "얼마나 사람이 많이 왔는데 무대를 안 만들었다"며 "(연단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다"고 불평했다. 역설적으로 이번 집회에 쏠린 농어촌 지방 거주민들의 관심이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 농어촌·지방주권지키기모임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들이 돌아가며 공개 발언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농어촌·지방주권지키기모임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들이 돌아가며 공개 발언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국회 진입 시도 후 평화 해산… 황영철, 향후 삭발 투쟁 시사

    오후 3시 무렵 집회를 마친 농어민들은 "국회로 들어가자"고, "(농어촌 선거구 통폐합) 결사 반대"를 외치며 국회 진입을 시도했다. 이에 국회 정문을 100m 앞두고 경찰 저지선에 충돌하자, 농민들은 "평화적으로 국회에 호소하겠다는데 왜 가로막느냐"며 "빨리 비켜라"고 외쳤다. 이에 농어촌·지방주권지키기모임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이 나서서 "의경도 여러분들의 아들 딸"이라며 "우리의 요구는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주장돼야 한다"고 만류해 집회는 평화적으로 해산됐다.

    다만 농어민들은 해산하기에 앞서 "농어촌 지방 죽이는 선거구획정 결사반대한다" "여야 지도부는 즉각 협상에 나서라" "선거구획정위는 우리의 목소리를 경청하라"는 구호를 함께 외쳤다. 인근에서 이 집회를 지켜본 직장인 나모 씨는 "민심이 정말…"이라며 "나는 서울 사람이지만, 농어촌 선거구가 더 이상 줄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밝혔다.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은 집회를 마치며 "우리의 요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다"며 "획정위나 여야 대표가 우리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투쟁의 수위를 더 높여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은 삭발하지 않겠다"고 밝혀, 향후 선거구획정위의 결정이나 여야 지도부의 협상 경과에 따라 삭발 등 투쟁의 강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