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제 부탁한 고영주 이사장에 '자극적 질문' 던져 돌직구 답변 유도

  • 사상 초유로 국회의원 '면전'에서 정치인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형편 없음을 지적한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의 '돌직구 발언'이 며칠째 국회를 뒤흔들고 있다.

    지난 2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가 진행한 국정감사에 증인 자격으로 참석한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은 야당 위원들의 집요한 질문 공세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평소 소신과 철학을 당당히 설파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고 이사장은 '부림사건'에 무죄 판결을 내린 사법부를 가리켜 "일부 좌경화 된 측면이 있다"는 일침을 가한데 이어 '친북·반국가행위자인명사전'에 박원순 서울시장과 오영식, 우상호, 이인영 의원 등 전현직 의원들이 이름을 올린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밝혀 당시 편찬위원회의 편집방향을 여전히 존중한다는 시각을 드러냈다.

    고 이사장이 밝힌 '강성 발언'의 백미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한명숙 전 의원을 '사법부 자체를 부정한 인물'로 규정지은 것. 고 이사장은 '부림 사건' 재판부의 판결을 문제 삼은 자신의 발언이 도마 위에 오르자, ▲문재인 대표가 과거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을 비난하고, ▲한명숙 전 의원이 자신에게 내려진 대법원 유죄 판결을 부정하는 입장을 밝힌 사실을 우회적으로 거론하며 야당 의원들의 낯을 뜨겁게 했다.

    당시 고 이사장의 따가운 일침에 쏘인 야당 의원들은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다"며 두 차례나 자리를 이탈하는 추태를 부렸다. 이를 두고 다수의 언론 매체는 "국정감사가 또 다시 정파(政派) 싸움으로 파행을 빚고 있다"며 고성과 비방이 오가는 한국 정치의 현 주소를 비판하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물론 고 이사장이 답변하는 와중에 국회의원들의 '신뢰도'를 거론, 한껏 달궈진 국감현장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앞서 새정치민주연합 문병호 의원이 고 이사장을 '수구꼴통'이라고 비하하고, MBC에 대한 신뢰도를 지적하지만 않았어도 이같은 강성 발언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사실상 기름을 부은 쪽은 야당 의원들이었다.

    미방위 야당 위원 자격으로 국감에 참여한 전병헌, 최민희, 문병호, 이개호, 홍의락 의원 등은 국회 증언 감정법상, 형사 소추를 당하거나 당할 염려가 우려 되는 증언은 '거부할 권리'가 있음을 거론하며 발언을 자제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달라는 고영주 이사장의 말은 깡그리 무시한 채, 향후 소송의 빌미가 될 수 있는 발언들을 유도하는 '자극적인 질문'들을 재차 던졌다.

    "국감장이 뜨거워질 수 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공산주의자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밝힌 사실이 있다" "사법부 일부가 좌경화 됐다고 생각한다" "친일인명사전이 사회를 분열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표와 한명숙 전 의원은 사법부 전체를 부정한 인물이다" "국회의원들의 신뢰도는 낮다고 생각한다"는 고영주 이사장의 어록(語錄)은 모두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서 비롯된 발언들이었다.

    국감 현장이 '방문진 감사'와는 동떨어진 문제로 인해 뜨거워질 수 있다며 과거 행적이나 사상을 문제 삼는 질문을 자제해달라는 '사전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야당 의원들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모두 뽑아버리는 무리수를 두고 말았다. 사실상 자신들이 유도한대로 나온 답변들이었으나, 야당 의원들은 고 이사장의 발언 하나하나를 재차 문제삼으며, "막말을 퍼부었다" "국회를 모독했다"고 맹비난하는 고도의 기만(欺瞞) 전술을 보였다.

    "고영주 이사장은 자격미달! 당장 사퇴해야"


    5일 열린 KBS 국정감사에서 불거진 야당 의원들의 성토도 이같은 '기만 전술'의 일환이었다. 시나리오대로 만족할 만한 수준의 '돌직구 발언'이 나오자, 이를 '정쟁의 도구'로 삼는 기민한 모습을 보인 것.

    이날 오전 KBS 본관 5층 국제회의실에 모인 여야 미방위 위원들은 국감 대상인 KBS는 제쳐두고 엉뚱하게 방문진 이사장의 자격 문제로 '격론'을 벌이는 촌극을 빚었다.

    미방위 야당 간사인 새정치연합 우상호 의원은 "지난 '방문진' 국감에서 공영방송인 MBC 방문진의 이사장이 극단적인 사고의 소유자이며 공영방송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적임자가 아님이 드러났다"면서 "국회 상임위 차원에서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에 대한 해임결의안을 여야 공동으로 제출할 것을 위원장에게 건의드린다"고 밝혔다.

    우상호 의원은 지난주 방문진 국감 당시 자신이 '친북·반국가행위자인명사전'에 포함된 사실에 격노하며 '고영주 이사장을 해임해야한다'고 열을 올렸던 인물. 당연히 이번 '해임결의안 제청'에도 여야 위원 중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방문진 국감에서 우리는 매우 충격을 받았습니다. 공영방송인 MBC 방문진의 이사장이 극단적인 사고의 소유자이며 공영방송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적임자가 아님이 드러났습니다.

    국회의원 전체를 모독하는 발언을 했고, 야당 대표를 공산주의자라고 한 발언을 부정하지 않는 등 이사장으로서 치명적인 하자를 보였습니다. 많은 언론도 이같은 충격적인 점을 보도했습니다.

    국회 상임위 차원에서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에 대한 해임 결의안을 여야 공동으로 제출할 것을 위원장에게 건의 드립니다.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고영주 이사장의 '과거 발언'을 끄집어 내 논란을 자초한 새정치연합 최민희 의원은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말한 사실이 동영상에서 확인됐는데, 자신은 공산주의자로 확신한다고 밝혔다"면서 "동일한 취지의 말을 갖고, 어미가 다르다는 궤변을 늘어놨다"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짧은 의정 활동이었지만 국회의원이 MBC의 신뢰도를 물어봤을 때 증인이 그런 식으로 국회를 모독하는 건 처음 봤다"면서 "방문진 이사장 자리에서 자진 사퇴했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저는 다른 문제점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고영주 이사장은 말바꾸기를 했습니다. 궤변을 늘어놨습니다.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말한 사실이 동영상에서 확인됐는데, 자신은 공산주의자로 확신한다고 밝혔다면서 어미가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저는 짧은 의정 활동이었지만 국회의원이 MBC의 신뢰도를 물어봤을때 그런 식으로 국회를 모독하는 건 처음 봤습니다. 여기에는 여당 의원들도 저희와 마찬가지 생각일 겁니다. 홍문종 위원장님도 "국회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떡하느냐"며 역정을 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방문진 이사장으로 적절치 않은 분입니다. 본인에게도 방송사에도 적절치 못한 인사입니다. 자진 사퇴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퇴 결의서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전병헌 의원은 "고영주 이사장은 '전문성'과 '자질'과 '공정성' 측면에서 3박자 모두 완벽하게 부적격한 인물임이 확인됐다"며 "방문진과 공영방송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자진 사퇴하는 게 맞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영주 이사장은 전문성과 자질과 공정성 측면에서 3박자 모두 완벽하게 부적격한 인물임이 확인됐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여야 의원님들께서도 당파나 정파성을 떠나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시각으로 보면 이 분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방문진과 공영방송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자진 사퇴하는 게 맞습니다. 더 버티면 본인 뿐 아니라 대통령과 정권에도 큰 부담이 될 겁니다.


    또한 전병헌 의원은 "'고영주 전 검사장을 방문진 이사로 추천한다'며 방통위에 전달한 추천서에는 '우리 사회에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는 이유가 좌경 노조 때문'이라는 지독한 편견으로 가득찬 글도 있었다"며 "방통위는 대체 무엇을 보고 이런 인물을 이사로 추천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추가적으로 경악스러운 사실은 방통위원회에 전달된 고영주 이사장에 대한 추천서입니다. 대한민국 전반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찬 표현들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는 이유는 좌경 노조 때문이다. 지금은 미디어 전쟁, 사실상 내전 중에 있다.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조차 전국언론노조와 야합해 언론 3사를 이지경으로 몰아 넣었다" 이런 지독한 편견과 막말로 점철된 추천서를 봤습니다.

    대체 뭘 보고 방문진 이사로 방통위에서 추천했는지 경악스러울 뿐입니다. 허원제 방통위 부위원장님 이런 추천서 들어온 거 맞죠?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추천서를 갖고 추천한 방통위도 참 대단한 위원회입니다. 전문성, 자질, 공정성 등에서 완벽한 하자를 가진 완벽한 하자를 가진 이사장에 대한 해임안 결의를 요청합니다. 먼저 방통위에서 해임 조치를 밟아 주시길 바랍니다.


    "과거 지향적 '사상 검증', 지양해야"

    반면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은 "지난 국정감사 현장에 증인으로 나온 고영주 이사장의 답변 태도가 불손했던 측면은 있으나, 국정감사는 국민을 대신해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자리이지, '특정 개인의 과거 역사관이나 사상을 검증하는 자리는 아니"라며 "방문진 이사장으로서 앞으로 방송 문화 진흥을 위해 역할을 다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국정감사 현장에 증인으로 나온 고영주 이사장의 답변 태도에 대해서는, 제가 비록 여당 간사지만 상당히 문제제기를 했었죠. 때때로 고압적인 태도로 국회 전체를 무시하는 발언이 있었다는 것은 잘 압니다.

    그러나 국정감사는 국민을 대신해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자리이지, '특정 개인의 과거 역사관이나 정치적 생각, 사상 등이 무엇이다'라고 검증하는 자리는 결코 아닙니다.

    더 살펴봐야 할 것은 고영주란 인물의 과거나 개인 소신을 보는 게 아니라, 방문진 이사장으로서 정말로 이 사람이 역량을 다해 앞으로 방송 문화 진흥을 위해 역할을 다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사회에서 호선이 된 사람입니다. 9명의 이사 중에는 야당 추천 이사들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8월 23일 취임하신 분입니다. 해임도 방통위에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단 KBS에 왔으니 여야 의원들과 신중하게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도출하면 좋겠습니다.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도 "방문진 국감 자체가 개인의 신념이나 이념, 사상 등에 대한 검증에만 집중이 됐다"며 "과거에 했던 일들, 검찰을 그만두고 나와서 한 일련의 활동들을 캐는 것보다는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밝혔다.

    야당 위원님들 지적은 충분히 이해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다만 방문진 국감 당시 제가 기억하기로는 고영주 이사장이 과거에 문재인 대표를 공산주의자로 확신한다는 발언을 한 사실이 있는 것으로는 확인이 됐지만, 현재도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확인 과정이 없었다고 기억합니다. 실제로 그것을 물었을 때 대답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우상호 간사님, 결과적으로 고영주 이사장께서 발언하는 과정에 조금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이 있었지만 본인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고…, 상식을 가진 분이라면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개인의 신념이나 이념, 사상 등에 대한 검증에만 집중이 됐습니다. 서로간에 합리적인 질의 답변이 오가지 못하고, 대답이 또 다른 오해의 소지를 낳고 그런 측면이 있었다고 봅니다.

    고영주 이사장이 과거에 했던 일들, 검찰을 그만두고 나와서 한 일련의 활동들은 명백히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단체 중 어느 일방에 치우친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다만 공영방송 MBC 방문진 이사장으로서 특정 이념과 신념을 계속 갖고 갈 것인지는, 우리가 계속 주시하고 평가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책임을 묻고 소명을 들어야겠죠. 여야 간사님들께서 해임 결의안 협의를 하실 때 여당의 이런 의견도 감안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국회 미방위는 6일 오후 방통위 소관 감사 대상 기관에 대한 확인 감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주부터 이어진 방송 기관 국정감사의 마지막 날인 셈.

    전날 여야 위원들은 "확감 때 고영주 이사장의 '이념 상태'를 다시 확인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국감에서의 미진한 질의 내역을 보충하는 자리가, 특정인의 사상을 검증하고 자격시비를 논하는 '인사청문회'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

    오늘은 또 어떤 '강성 발언'들이 국감장에서 쏟아질지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