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방문진 국정감사서 野의원들, 부림사건 검사였던 고영주 이사장 맹공

  • 만약 어제 야당 의원들이 저에게 했듯이 당시 검찰 조사에서 제가 그런 식의 질문을 가했으면 저는 '고문 검사'나 '살인 검사'라는 소리를 들었을 겁니다.


    지난 2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국정 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문병호 의원으로부터 '수구꼴통'이라는 모욕을 당한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은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제가 검사 시절 지금의 야당 의원들처럼 피의자들을 다그쳤다면 '살인자 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고영주 이사장은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는 정말 큰 일이 날 수가 있기 때문에 공안 검사가 피의자들에게 손을 대는 것은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다"며 "당시 '정치사범'이 오면 저희는 '칙사대접'을 했고, 불행한 환경에서 조사를 한 적은 단언컨대 단 한차례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검사장과, 대검찰청 감찰부장, 청주지방검찰청 검사장 등을 거쳐 현재 법무법인 케이씨엘의 대표를 겸하고 있는 고영주 이사장은 1981년 제5공화국 시절 발생한 '부림사건(釜林事件)'의 담당 검사로 널리 알려진 인물.

    고 이사장은 이날 방문진 국정감사에서 "지난해 9월 25일 부림사건 피의자 5명에 대한 재심 사건 상고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린 사법부가 좌경화됐다고 보느냐"는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일부 좌경화 된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피력했다.

    고 이사장은 한 야당 의원이 "당시 수사기관에서 피의자들을 불법 감금하고 고문을 가한 사실이 인정돼 사법부가 무죄 판결을 내린 것 아니냐"고 묻자 "검찰 수사 단계에서는 절대로 피의자에게 손을 댄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어제 제가 그렇게 말씀드린 것은 마치 영화 '변호인'에서처럼 잔인한 고문을 가해 수사가 이뤄졌고 이를 사법부가 인정한 것처럼 비쳐졌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구금기간이 길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절대로 불합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강압 수사를 벌인 적은 없습니다.


    고 이사장은 "지난해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이 나온 이유는 불법 구금기간이 장기화 됐고, 당시 피의자들이 진술 조서의 증거 능력을 전부 부정했기 때문에 나온 결론이었다"며 "근본적으로 이들의 행위에 면죄부가 내려진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고 이사장은 "당시만해도 임의동행 제도라는 게 있었다"며 "보통 공안 사건은 피의자의 진술이 주요 증거로 인정되기 때문에 조사 기간을 고려해 여관방에서 경찰관 함께 투숙·조사를 벌이는 일이 흔했다"고 말했다.

    공산주의 의식화 학습을 한 것이 처벌 대상이 되기 때문에 피의자들로부터 그때 무슨 얘기가 있었다는 식의 진술을 받아야 합니다. 이들의 대화가 증거 능력이 되는 관계로 조사가 길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 나중에 피의자들이 신문 조서나 진술 조서의 증거 능력을 전부 부정해버리니 재판부에선 증거가 소멸됐다고 판단한 겁니다.


    고 이사장은 "말씀드린 것처럼 그때에는 경찰간들이 피의자들과 함께 자고 밥을 같이 먹으면서 진술을 받는 조사가 많았는데, 지금 시각으로보면 '불법 구금'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엔 통용된 수사 방법이었고, 이들의 진술을 토대로 모두 유죄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차후에 지속해서 항소 상고를 제기해 재판이 열린 거죠. 예전엔 정당했고 유죄로 인정된 사안이었지만, 지금 시각에서, 과거의 일을 소급 적용해보니 증거로 인정될 수가 없다는 판결이 나온 겁니다.


    고 이사장은 나중에 "수사과정에서 고문을 당했다" "허위자백을 유도했다" "용공조작이다"란 말들이 나온 것은 전부 재판 중에 거론된 것들이라며 "조사를 할 때에는 목소리 한 번 높인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고 이사장은 "물론 고문을 당했다는 피의자 측의 주장을 모두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며 "경찰서에 가면 그냥 오는 법이 없었던 당시 시대 상황을 감안하면 피의자들이 경찰 조사 때 한 대도 맞은 적이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검찰 조사 만큼은 정말로 깨끗하게 진행했다"고 말했다.

    고 이사장은 "당시 '부림사건'을 '용공조작'이라고 한다면 80년대 후반, 운동권 학생들이 급격히 좌경화에 빠진 점과, 오늘날 종북세력이 자리잡게 된 배경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며 "'부림사건'이 기폭제가 돼 공산주의자들이 생겨났고 현재까지 맥을 이어왔기 때문에 현시대에 '종북세력'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전히 "강압수사다" "조작이다" 말이 많죠. '공산주의 얘기'는 피의자가 스스로 꺼낸 겁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먼저 유물사관을 언급하며 공산주의 시대의 도래를 예언했어요. '부림사건' '학림사건'은 여러 공안 사건 중에서도 제일 강력했던 사건이었습니다. 그 무리 중에서도 의식 수준이 가장 높았던 사람들이 연루됐기 때문이죠.


    고 이사장은 "얼마나 분위기가 유했으면 피의자가 검사인 자신을 회유하려 들었겠느냐"며 당시 피의자로부터 '협박 아닌 협박'을 당했던 기막힌 경험을 털어놨다.

    피의자 : "검사님은 역사의 발전법칙도 모르십니까?"

    고영주 : "그게 무슨 소립니까?"

    피의자 : "역사라는 건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모순에 의해 발전돼 나가는데요. 원시공산사회, 고대 노예제 사회, 중세봉건사회, 근대자본주의 사회를 거쳐 곧 '공산주의 사회'가 됩니다. 곧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할 터인데 역사가 바뀌면 주역도 바뀌는 법이고 지금은 우리가 검사님한테 조사를 받고 있지만 공산주의 사회가 되면 그땐 저희가 검사님을 심판할 겁니다."

    고영주 : "역사라는 게 당신 말처럼 딱딱 공식대로 발전하는 것이라면 공산주의 사회에도 모순점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러면 그 다음 사회는 어떤 사회가 도래하는 겁니까?"

    피의자 : "아니, 아직 공산주의 사회도 완전히 도래하지 않았는데, 그 다음 사회를 논하는 건 언어의 유희 아닙니까? 저희 같고 장난치지 마십시오!"

    고영주 : "저도 장난칠 생각 없습니다. 솔직히 공산주의 사회가 되면 살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만약 그때 내가 살아있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이 당신들의 심판을 받아야겠죠. 하지만 지금은 엄연히 자유민주주의 체제입니다. 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는 공안 검사이구요. 그래서 당신들을 조사하고 기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 이사장은 "이처럼 '부림사건'은 결코 흔히 있는 사건이 아니었다"며 "저는 당시 피의자들이 '공산주의 운동'을 벌인 것이라고 누차 얘기해 왔건만, 이제와서 '민주화 운동'으로 포장을 하고 있다"고 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