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성이 백성답지 않으면 나라가 나라다울 수가 없다."

    천재 李承晩은 높은 곳을 버리고 아래로 들어갔고,


  • 그곳에서 가장 높은 차원의 이상과 見識을 다졌던 사람이다.

    趙甲濟   
      
         <무릇 開明進步(개명진보)하는 길은 대략 네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학교를 세워 학문을 일으키는 것이요, 하나는 民會를 열어 토론을 하는 것이오, 하나는 널리 신문사를 설치하는 것이오, 하나는 도서관을 세우는 일이다. 이 네 가지 중에서 도서관을 세우는 일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긴요하다.>
      
       이 글은 李承晩이 고종황제를 쫓아내려는 쿠데타 계획에 연루되었다가 한성감옥에 갇혀 있던 시절(1899-1904년)에 쓴 논설이다. 이 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李承晩의 대중노선이다. 그는 국민 전체의 역량이 향상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근본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국민들을 교육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교육의 수단이 학교, 신문, 도서관, 민회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李承晩은 대중을 설득하여 여론을 형성하고 그리하여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임을 인식한 민주적 정치인이었다. 

  • 한성감옥의 사형수 이승만(1899년 24세)
    ▲ 한성감옥의 사형수 이승만(1899년 24세)

       다른 獄中雜記를 보자.
       <지금 나라를 논하는 자들은 걸핏하면 '정치가 어떻다, 법률이 어떻다'라고 말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자들은 의례히 '광업이 어떻다, 철도가 어떻다, 산림이 어떻다, 어장이 어떻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민은 어떠한가'라는 논제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전혀 언급하지 않으니, 더욱 政法을 모르는 것이다. 만약 백성이 백성답지 못하면 나라가 나라다울 수 없으며,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다면 위에서 말한 여러 政事가 또한 어떻게 큰 정사가 될 수 있겠는가. 백성을 소유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백성으로 하여금 나라를 위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야 한다. 백성으로서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없다면 느낌도 없고 움직임도 없는 나무 인형이나 풀인형과 다름없을 것이다. 그들과 더불어 나라를 세우고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몇백만 혹은 몇천만 사람의 모습과 사람의 몸을 빌린 썩은 풀과 썩은 나무를 거느리고 스스로 나라를 만들어보겠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李承晩은 평생 민중 속으로 들어갔던 사람이다. 수많은 여행과 연설을 통해서 그는 한국인들과 호흡을 함께 하면서 이들을 교화하려고 했다. 李承晩의 신화는 그렇게 하여 만들어졌다. 정치의 진정한 힘은 민중 속에서 형성된 여론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李承晩연구가인 연세대학교 柳永益 교수가 쓴 [젊은 날의 이승만](연세대학교 출판부)에는 또 이런 편지가 실려 있다. 당시 미국 공사 호레이스 N. 알렌에게 보는 편지이다.
      
       <근자에 듣자오니 각하께서 생을 위하여 일본공사에게 보호를 요청하기도 하고, 또 외부에 석방도 요청하였다는 소식이 누차 신문지상에 게재되었습니다. 생의 사사로운 분수에 비추어 감사함을 이기지 못하겠사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생이 직접 혹은 간접으로 청탁한 바가 있어서 그런가 하는 의혹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생의 염원을 저버린 것이요, 또한 각하의 公人으로서의 체통을 훼손하는 일이 됩니다. 하물며 한국 죄수의 보호를 이웃 나라의 공사에게 부탁하는 것은 우리 한국의 독립을 존중히 여기는 본의에 위배되며, 貴國과 우리 나라의 友誼를 손상시키는 바입니다. 생은 차라리 억울함을 품고 달갑게 죽을지언정 이 일만은 참으로 원하지 않는 바이오 차마 할 수도 없는 바입니다. 1904년 7월18일>
      
       기록광인 이승만은 한성감옥에 있을 때 목격한 죄수 사망 사례를 자세히 적어놓아다. 고문으로 죽은 경우, 사형 집행, 콜레라 사망 등이다. 1902년 9월12일에는 17명이 호열자로 죽었다고 되어 있다. 이런 환경에서도 그는 국가의 체통을 생각하면서 외국인의 救命운동을 거절하고 있다. 그의 애국심은 민중에 대한 동정과 국가적 자존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다.
      
       김유신, 박정희, 이승만은 자신의 인격과 국가의 권위를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했다. 민족주의자란 말은 단어 그대로 민족을 중심에 놓고 이해를 따지는 이들이다. 그런 행동의 논리는 대중 속에서만 나올 수 있다. 천재 이승만은 높은 곳을 버리고 아래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가장 높은 차원의 이상과 見識(견식)을 다졌던 사람이다. [조갑젣닷컴=뉴데일리 특약]

  • 이승만이 옥중에서 쓴 저서 [독립정신] 현대문판 표지.
    ▲ 이승만이 옥중에서 쓴 저서 [독립정신] 현대문판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