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1,500만원 요구에 "제가 돈이 없어서.." 거절
  • 판사님, 제가 귀가 좀 안좋아서요.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4일 오후 5시 서울중앙지법 서관 421호 법정에서 지난 5월경 남자 대학생의 성기를 만진 혐의(준강제추행)로 재판에 회부된 뮤지컬 연출가 백재현(45)의 항소심 공판이 열렸다.

    1심에서 이미 유죄 판결(징역 4월, 집행유예 1년, 성폭력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을 받은 상태였지만, 형량이 낮다며 이의를 제기한 검찰의 항소로 백재현은 다시 한 번 같은 죄목으로 법정에 오르는 신세가 됐다.

    이날 심리를 맡은 제2형사부의 홍이표 판사는 신원 확인을 위해 백재현에게 생년월일과 집주소를 연거푸 물었다. 그런데 그 순간 백재현이 자신의 왼쪽 귀를 만지작거리며 "다시 한 번만 말씀해 주실 수 없겠느냐"고 정중히 요청했다.

    백재현이 손으로 매만진 건 귀 속에 삽입한 보청기였다. 지난 2006년 병원에서 '난청' 진단을 받고 왼쪽 귀에 보청기를 착용해 온 백재현은 청력이 80세 노인과 비슷한 준 장애수준으로 알려졌다.

    캐주얼정장 차림에 모히칸 헤어스타일로 멋을 낸 백재현은 겉으로 보기엔 여느 연예인들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백재현의 법률대리인 입에서 나온 그의 사정은 상당히 심각했다.

    신용불량자입니다. 현재 신용회복 절차(개인 워크아웃)를 밟고 있는데요. 경제적으로 많이 어렵습니다.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채무조정도 받고 있습니다.


    변호인에 따르면 백재현이 2005년부터 운영해오던 모 사회적기업은 지난 2013년 11월 폐업신고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가 좋지 않은 가운데 뮤지컬 제작·공연을 강행한 백재현은 흥행 실적 저조로 막대한 채무를 진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백재현은 수년 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하루에도 100회씩 빚 독촉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며 "하도 스트레스가 심해 안면마비 증세가 두 번이나 올 정도였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재판에서 피해자 이OO(26)씨는 법률대리를 맡은 이OO 변호사를 통해 1,500만원의 '배상명령'을 신청했다. 피고인에 대한 형사적 처벌을 논하는 형사 공판에서 원고가 배상 신청을 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었다.

    이OO 변호사는 '원고가 손해배상을 원한다면 따로 민사재판을 통해 청구하면 되지 않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사정상 의뢰인이 민사소송을 제기할 여력이 안된다"며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는 변론이 종결될 때까지 법원에 피해배상 차원의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원고 측으로부터 이같은 배상신청을 받은 홍이표 판사는 백재현과 그의 법률대리인에게 "원고가 청구한 금액을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를 대신할 의향은 없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백재현의 법률대리인은 앞서 언급한 피고인의 경제적 상황을 거론하며 "그럴 형편이 못된다"고 잘라 말했다.

    나아가 "이번 사건은 금액이 특정될 수 없는 사건"이라며 "이같은 원고 신청을 각하해달라"고 요청했다. 단,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피해보상 차원에서 법원에 '공탁금'을 기탁할 계획이라며 재판부의 선처를 호소했다.

    원고 측에서 사실상 1,500만원을 주면 고소를 취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 백재현 측은 "그 정도의 돈도 없다"며 자금 사정이 '최악'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백재현의 법률대리인은 "사건 초기, 피해자 측에서 제시한 합의 금액이 너무 커서 합의가 불발된 사실이 있다"고 밝힌 뒤, "당시에도 직접 찾아뵙고 합의를 하려고 했으나 별도의 연락 수단이 없어서 합의를 못한 측면이 있다"며 피해자의 주소를 알려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그러자 원고 측 변호인은 "공탁금이 너무 작은 수준이라면 의뢰인이 납득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의뢰인이 허락할 경우, 소재지를 건네 드리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홍이표 판사는 "원고가 위자료를 받기 위해선 직접 법정에 나와 당시 피해 상황을 진술해야할 필요가 있다"며 차기 변론기일에 피해자이자 고소인인 이OO씨가 증인으로 출석해야 '배상명령신청'이 가능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에 변호인은 "의뢰인과 상의해 (출석 여부를)알려드리겠다"고 밝혔다.

    피해자 이OO씨가 형사재판을 통해 피해배상을 받기 원한다면, '법정 자진 출두'가 불가피해진 상황.

    과연 지난 5월 발생한 백재현 강제 동성 추행 사건의 전말을 피해자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을지 차기 공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백재현은 지난 5월 17일 오전 3시경 종로구 명륜동 소재 OO사우나에서 잠들어 있는 대학생 이OO씨의 성기를 손으로 만진 혐의(준강제추행)로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 조사에서 백재현은 이씨를 추행한 사실은 인정했으나 깨어날 당시 자신이 어떤 일을 벌였는지 모를 정도로 만취한 상태였다며 고의성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결국 준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백재현은 지난 7월 10일 1심(형사13단독) 선고 공판에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성폭력치료프로그램 교육 40시간 이수를 선고받았다.

    1993년 KBS 특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백재현은 <개그콘서트>, <폭소클럽>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다 2001년부터 뮤지컬 감독으로 전향, 메디컬 뮤지컬 <루나틱> 등을 연출한 바 있다.

    지난 2002년 자신의 오랜 팬과 결혼했던 백재현은 2년 후인 2004년 11월 이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