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적인 전차, 전투기용 연료 부족…장비 노후화로 유지보수 어려움도 한 몫
  • ▲ 지난 8월 20일 북한은 한국군을 향해 포격을 가한 뒤 "48시간 내 대북 심리전 방송 중단 않으면 군사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김정은은 이때 전방에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고,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도 열었다. ⓒ北선전매체 화면 캡쳐
    ▲ 지난 8월 20일 북한은 한국군을 향해 포격을 가한 뒤 "48시간 내 대북 심리전 방송 중단 않으면 군사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김정은은 이때 전방에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고,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도 열었다. ⓒ北선전매체 화면 캡쳐


    지난 8월 20일부터 25일 사이 남북은 팽팽한 군사적 대치 상태를 겪었다. 북한은 대북 심리전 방송 확성기 주변을 향해 포격과 고사총 사격을 한 뒤 ‘준전시 상태’를 선언했다. 48시간의 ‘최후통첩’ 성격 선언도 했다.

    이때 한미 연합군은 정보자산을 총동원해 북한군의 동향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며 대응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들이 보였다. 잠수함이나 공기부양정 등 ‘기습작전용 무기’들은 그럭저럭 기동을 했지만, 실제 전쟁이 일어나면 남침의 주력이 될 것으로 보였던 북한 인민군 기갑전력과 포병 전력, 공군의 움직임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한미 연합군은 북한군의 이 같은 동향에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닌가 우려했다. 특히 북한이 보유한 전체 잠수함 가운데 70%에 달하는 50여 척이 기지를 떠난 것은 수상했다.

    8월 21일, 북한군의 제안에 따라 남북 고위급 접촉이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렸다. 무려 43시간 동안의 마라톤 회의였다.

    8월 25일 이른 새벽, 남북 고위층 간의 ‘공동 보도문’이 합의된 뒤, 중국 접경 지역의 북한 소식통들로부터 북한 내부의 상황이 전해졌다. 이들에 따르면, 남북 대치 상황 당시 북한군 기갑 전력과 포병 전력, 항공 전력의 움직임이 잠잠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장비 노후화와 만성적인 연료 부족 탓이었다.

    한미 연합군은 북한군이 기습남침을 할 때 특수부대를 은밀히 침투시키는 것과 동시에 전방 군단의 뒤편에 배치한 포병군단이 전방으로 배치돼 수도권과 전방 일대에 무차별 포격을 가하고, 북한 공군기들이 저공비행으로 침투해 공격을 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토대로 작전 계획을 세워놓은 상태다. 하지만 이 같은 전략은 이번 북한군의 현실이 드러나면서 상당 부분 수정이 필요해졌다.

    북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김정은이 ‘준전시 상태’라면서 전방 부대들에 ‘완전무장’과 ‘진지 투입’을 명령한 뒤 실제 전투 부대의 장비 가동율이 상상 이하였다는 것이다.

  • ▲ 지난 1월 하순, 北선전매체는 김정은이 공군부대를 현장지도했다고 전했다. 한국 국민들은 이때 북한 공군 조종사들의 '장난감 훈련'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YTN 관련보도 화면캡쳐
    ▲ 지난 1월 하순, 北선전매체는 김정은이 공군부대를 현장지도했다고 전했다. 한국 국민들은 이때 북한 공군 조종사들의 '장난감 훈련'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YTN 관련보도 화면캡쳐


    북한 공군의 경우 전투기와 공격기, 폭격기 수가 820여 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MIG 17, MIG 19, MIG 21 등 개발된 지 50년도 더 된 전투기다.

    舊소련의 무기개발 개념에 따라 유지보수가 용이하다고는 하나 그래도 정밀부품이 필요한 항공기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어디서도 MIG 17, MIG 19와 같은 ‘고물 전투기’는 사용하지 않는다. 中인민해방군이 MIG 19, MIG 21을 개량한 전투기를 일부 사용하고 있지만, ‘공짜’로 북한에게 관련 부품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또 다른 문제는 바로 연료 부족. 북한군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자연발생한 ‘장마당’에 내다팔 수 있는 물품은 모조리 내다 판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2000년 초반 북한군 사이에서는 “혹시 총탄을 산다는 사람이 있으면 팔고 싶다”는 농담이 나왔다. 기존에 배급된 장비와 피복, 연료 등은 이미 장마당에 내다판 뒤여서 남아도는 것은 총탄 밖에 없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북한군 부대에서 내다판 것 가운데 가장 많은 값을 받은 것이 바로 연료였다. 전차, 자주포 연료와 전투기 연료는 옥수수나 쌀 등으로 바꾸기 가장 용이했었다고 한다.

    ‘고난의 행군’ 이후 군부대의 보급품 밀매가 성행한 뒤 특히 공군 전투기 부대에서는 저장고에서 연료를 빼내 팔아먹은 뒤 그 자리에 물을 채워놓는 일이 빈번했다는 것이 탈북자와 북한 소식통들의 증언이었다. 물은 연료보다 무거워 아래로 가라앉기 때문에 연료를 빼낸 것이 표시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수리할 수 있는 부속도 없고, 부대 저장고에 연료도 없으니, 북한 공군은 ‘준전시 상태’가 선포되어도 하늘로 날아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 ▲ 북한 공군의 주력 전투기 MIG 21. 1956년에 첫 비행을 한 전투기다. ⓒ北선전매체 화면캡쳐
    ▲ 북한 공군의 주력 전투기 MIG 21. 1956년에 첫 비행을 한 전투기다. ⓒ北선전매체 화면캡쳐


    그나마 기동이 가능한, 북한군에서는 최신 무기에 속하는 MIG 29, MIG 23 등은 오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을 위해 평양으로 간 상태였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20년 가까이 이어지다보니 북한 공군 조종사들의 비행 훈련 시간은 연간 30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실제 한국 언론에도 소개된 북한 공군 조종사들이 장난감 전투기를 손에 들고 ‘시뮬레이션 연습’을 벌이는 모습도 연료부족 때문에 이런 상황 때문이라고 한다.

    북한군이 남침의 핵심 전력이라고 부르는 기갑 부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북한군은 전방의 1, 2, 4, 5군단 뒤편에 620포병군단과 강동포병군단, 그리고 815기계화군단, 108기계화군단, 425기계화군단, 806기계화군단을 배치해 놓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갑군단이라고 하면, 모든 병력이 전차, 장갑차, 차량 등을 통해 신속히 이동할 수 있으며, 화력도 막강한 부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북한의 기갑전력은 그런 서방 진영의 ‘통념’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이 또한 노후화된 장비와 연료 부족 탓이다.

    북한군의 기갑 전력은 양적인 측면에서는 한국군을 압도한다. 전차 수는 무려 4,300여 대, 장갑차는 2,500여 대나 된다. 하지만 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북한군 전차의 절반 이상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에 생산된 모델, T-55와 T-62, T-72를 카피해 생산해낸 것들이다. 게다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스탈린 정권이 ‘찍어낸’, ‘6.25 참전용사 모델’인 T-34와 전차라 부를 수 없는 기동차량 PT-76 등 800여 대가 ‘예비역’으로 배치돼 있다. 

    한국 언론을 통해 뭔가 새로운 무기로 소개된 ‘천마호’는 T-62를 카피해 만든 전차고, 1990년대 ‘천마호’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폭풍호’는 T-62를 개량해서 여기에 각종 사격통제장치 등을 장착한 것으로 한국군의 K1 전차에게는 상대가 안 될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 ▲ 북한군이 최신 전차라고 자랑하는 선군호. 한국군의 K1 전차보다 성능이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北열병식 관련 플릭커 공개사진 캡쳐
    ▲ 북한군이 최신 전차라고 자랑하는 선군호. 한국군의 K1 전차보다 성능이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北열병식 관련 플릭커 공개사진 캡쳐


    북한군이 최신형의 무적전차라고 선전하는 ‘선군호’의 경우에는 한국군이 “오래됐다”며 이미 개량작업에 착수한 K1 전차(정식명칭 88전차)보다 뒤떨어지는 성능을 갖고 있다.

    이처럼 북한군 전차는 개발된 지 40년이 지난 모델이 전체 전차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북한군 주력 전차와 비슷한 시기에 생산된 한국군 전차는 M-48A5K로 이제는 퇴역 단계다. 그 숫자도 전체 전차 2,400여 대 가운데 15% 정도 밖에 안 된다.

    아무튼 북한군은 마치 2차 세계대전 당시 스탈린이 나치 독일군대와 싸울 때처럼 ‘질보다 양’으로 한국군을 압도할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북한군은 전면전이 일어나면, 전방 군단과 포병군단이 한국군을 괴멸시킨 뒤 전차군단과 기계화군단을 보내 한국 점령에 들어간다는 작전을 갖고 있다. 90년대 말 이후 연료 부족을 겪으면서부터는 “남조선 곳곳에 있는 주유소에서 연료를 보급하고 편의점에서 식량을 조달한다”는 작전계획을 도입했다.

    그런데 이번 ‘준전시 상태’로 이 작전계획도 틀어지게 됐다. 2진에 배치돼 있는 전차들이 전방으로 이동할 연료조차 부족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1년 평균 하루도 ‘실제 기동훈련’을 하지 않은 탓에 전차 부대원들이 전차와 장갑차 조종도 제대로 할 줄 몰라, 이동만 하면 대형 사고가 일어나 지휘관들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북한군이 만성적인 연료부족 때문에 전투기, 전차, 자주포, 장갑차의 기동이 불가능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언론은 북한 소식통들을 인용해 “김정은이 이 사실을 알고 대노(大怒)해 인민군 전체에 대한 감사를 실시할 것이며, 지휘관들이 숙청을 당할 것으로 보인다”는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북한 공군조종사들의 장난감 훈련’ 등으로 미뤄볼 때 김정은 또한 북한군의 현실을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27일 북한전문매체 ‘자유북한방송’, 지난 9월 3일 ‘데일리NK’가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전한 소식도 김정은이 북한군의 만성적인 연료부족과 장비 문제를 알고 있다는 점을 뒷받침해 준다.

  • ▲ 그랬다. 김정은이 현영철, 황병서 등을 전차와 장갑차에 태워 훈련을 시킨 것은 그만큼 연료가 귀하다는 증거였다. ⓒ北선전매체 화면캡쳐
    ▲ 그랬다. 김정은이 현영철, 황병서 등을 전차와 장갑차에 태워 훈련을 시킨 것은 그만큼 연료가 귀하다는 증거였다. ⓒ北선전매체 화면캡쳐


    ‘자유북한방송’과 접촉한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전면전 상황에서 전방 또는 진지에 배치되어야 할 장비 가운데 절반 이상이 제 자리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자유북한방송’은 “전방 군단에 배치된 포병에게 ‘전방진지 투입’이라는 최고사령부 명령이 떨어졌는데 포를 움직일 차량과 연료가 없어, 트랙터를 동원하거나 사람들이 직접 끌어 진지에 배치했다”고 전했다.

    ‘데일리NK’는 “총참모부가 전방 군단들에 ‘적들의 도발에 절대로 말려들지 말라’는 지시를 하달했다”고 전했다.

    ‘데일리NK’는 “총참모부가 ‘부대 지휘관들은 감정대응, 오발사고로 인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부대원 관리에 특별히 주의할 것’을 강조했다”며 “총참모부 소속 고급 장교들이 전방 부대에 급파돼 이를 이행하는 지 점검하기도 했다”는 소식통의 설명을 전했다.

    즉, 북한군의 포격 도발 이후 한국군이 자주포로 대응 포격을 가한 뒤 김정은이 ‘48시간 최후통첩’을 하고, 저녁에는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열어 “총참모부 지휘관을 전방군단에 내려보냈다”고 떠든 것은 “한국군이 공격해도 반격하지 말라”며 감시 인력을 보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지난 8월 20일부터 닷새 동안 계속된 남북 간의 군사적 대치 상황은 결과적으로 한미 연합군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된 반면 김정은과 북한군에게는 ‘적’에게 절대 보여주기 싫었던 ‘치부’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해석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