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선진화포럼 창립10주년 세미나-토론문>

    개인-기업-정부 "그때처럼 하나 되어야 살아남는다"

    권혁찬(芝巖 선진화 아카데미 16기, 건국대 경제학과)

  • 우리나라의 경제발전과정은 눈부시게 찬란하고 역동적이었습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건국과정에서 당시 기업이 뭔지도 모르는 전근대적, 봉건적 사회를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을 확립한 것도 큰 역할을 하였고 6.25전쟁도 어떤 측면에선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경제성장을 이야기한다면 박정희라는 개인과 60년대 이후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시대를 이를테면 ‘박정희 대통령 시대’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이제 말씀드리려고 하는 이야기가 바로 60년대부터 70년대의 위대했던 시기입니다.

    전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이 선진국들의 클럽이라는 OECD에 가입하고 소득이 2만 8천달러까지 성장하는 기록적인 고속성장을 경험합니다. 특히나 식민지 피지배국가 150여개 국가 중에서 근대화와 산업화를 모두 이루어낸 나라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싱가폴이나 대만, 홍콩과 대한민국정도입니다. 싱가폴은 경제적으로는 우리나라와 비교가 힘들정도로 앞서가고 있지만 규모면에서 도시국가에 불과하고 대만의 경우에는 우리나라와 경제적인 격차가 약간 벌어지고 있습니다.
    소득 2만달러 이상, 인구 5천만명 이상의 국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20-50클럽에 대한민국이 세계 6번째로 가입한 만큼 일정한 규모의 인구를 가지면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뤄낸 아주 특별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근대화, 산업화를 넘어 기어코 민주화까지 이루어 냈다는 점입니다.
    또한 현재의 대한민국은 엄청난 개방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2011년부터 4년 연속 무역규모 1조달러를 달성했을 뿐 아니라 한국인들은 수없이 많은 나라에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눈부신 대한민국 발전과 성공의 역사를 단순히 국민소득이 좀 늘어났다거나, 여러나라가 경쟁하는데 우리나라가 팔자를 좀 폈다는 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협소한 역사인식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대한민국의 성공을 더 대단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바로 대한민국의 성공은 20세기의 전세계적 흐름의 물결을 가장 잘 체화했기 때문에 훨씬 위대합니다. 이를테면 산업화, 민주화, 개방화, 글로벌화(혹은 세계화)라는 20세기의 가치를 전부 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국민소득이 좀 늘어났다는 정도, 혹은 대한민국이라는 특정한 국가만의 성공이 아니라 20세기를 규정하고 지배했던 가치의 성공이고 그래서 아주 독특하고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대한 성공은 어떤 요인을 통해 달성되었을까요?

    60년대와 70년대, 국제적 조건이나 상황이 어떠하였는지를 말하지 않고 단순히 국내 경제정책만을 가지고 평가한다면 우리는 대한민국이 한 마리 연어처럼 물살을 헤치고 올라가는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을 둘러싼 세계는 엄청난 대 변혁을 겪고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선 68년 문화혁명을 시작으로 좌파 사회주의 정권으로 교체가 일어나고 있었고, 중국 역시 모택동의 문화혁명으로 중국을 암흑기로 몰아넣고 있었습니다. 세계가 좌편향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월남전이 발생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71년에는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를 견디지 못한 미국이 닉슨대통령의 금태환 정지 선언을 기점으로 엄청난 충격이 전 세계를 강타했습니다. 금태환 정지는 오일쇼크를 비롯해 스태그 플레이션이라는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고물가에 경기불황이 겹치는 위기상황을 만들어 냈습니다.
    한편 북한은 김신조 일당을 청와대 근처까지 침투시키는 등의 강력한 무력도발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중국에서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65년에 김일성은 제 2 남침을 위해 중국에 파병을 요청하였다고 합니다.

    73년을 기점으로 남북한의 경제력 순위가 뒤바뀌게 되었는데, 이것을 김일성이 직감적으로 알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론 60년대 말 단말마적인 도발을 감행하며 대한민국을 위협한 것입니다.
    이렇듯 60년대와 70년대는 대한민국으로서는 위기와 대혼돈의 시기였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안보적으로도 항상 위기의 숨결이 대한민국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본인이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주 결정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운명적으로 맞았습니다.

    1. 월남파병(개인)
    이 시대 여러 자료들을 통해 파독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들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월남파병이 대한민국에 미친 경제적 영향은 과소평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월남전 당시 대한민국은 연인원 31만 명에 달하는 병사를 파병하였습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파병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병사들은 6.25 전쟁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군인이 많았고 따라서 잘 싸우기로도 유명했습니다. 그런데 전투만 나가면 총과 장비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바로 잃어버린 총과 장비는 미군을 통해 재보급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적당히 한국으로 빼돌렸던 것입니다. 정말 열악했던 우리나라 사정으로 당시 총기 한 정, 장비 한 개가 절실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브라운 각서 등을 통해 우리나라가 미군으로부터 국군의 현대화나 각종 경제적 원조를 받기로 약속도 받았습니다.
    김치 통조림 일화 역시 유명합니다. 우리나라가 만든 최초의 전투식량인 김치 통조림 역시 온전한 김치가 아닌 녹물이 섞인 김치 핏물이나 다름없는 상태였습니다. 대한민국은 통조림 하나 제대로 생산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병사들이 항의하자 채명신 장군은 “만약 먹지 않겠다고 하면 2~3주 후엔 정말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다. 하지만 그 통조림은 일본산이다. 통조림 값은 농촌에 있는 우리 부모들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일본 사람들에게 가는 것이다.” 라며 병사들을 독려하자 모두 눈물을 흘리며 김치 통조림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통조림 값은 조국으로 보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월남 파병으로 우리가 얻은 것이 비단 통조림 몇 개의 값, 빼돌린 총기 몇 정이 아니었습니다.
    월남 파병을 통해 우리나라 기업들이 비로소 사업하는 눈을 뜨게 되고, 수출을 해 보고 무역이 무엇인지, 해외 진출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한진그룹과 현대건설입니다. 해방 직후 우리나라에서 병사들과 장비를 싣어 나르며 물류와 유통을 알게 되고 베트남에 공장을 지으며 건설업을 배웠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벌어들인 돈을 통해 한진그룹은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되고 현대건설은 현대자동차에 투자하며 현대자동차는 삼성전자와 더불어 아직도 우리나라를 이끌어 가는 엄청난 대기업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월남 파병은 단순히 한국 기업 몇 개가 베트남에 가서 돈을 좀 벌어온 것이 아니고 그 이후 한국의 산업화와 중화학공업 육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후에 중동 특수도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경제적인 영향을 넘어서, 월남으로 간 한국인들은 미국이라는 선진국과 베트남이라는 후진국의 차이를 배웠습니다. 나아가 대한민국이 일본의 식민지배, 미군정으로 이어지는 피지배 의식이나 열등의식에서 벗어나 숭고한 자유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배우고 대한민국의 자주성을 확립했던 시기가 바로 월남 파병이었던 것입니다.

    2. 개발독재(기업)
    월남파병만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에 도움을 준 것은 아닙니다.
    박정희 시대를 얘기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개발독재입니다.
    결과적으로 박정희의 개발독재는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스탈린 역시 국가주도형 개발독재를 하였고 그 결과는 박정희의 개발독재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우리는 흔히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국가주도형이고 그래서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만 70년대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은 국가주도형이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스탈린의 개발독재역시 국가주도형이었지만 고르바초프에 이르러 철저하게 망했고 그 밖에 수많은 나라들도 국가주도형 경제성장을 추진하다 실패하였습니다.

    박정희의 개발독재는 스탈린의 개발독재와 달리 민간기업을 키워 경제성장을 달성하려 했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스탈린의 경우에는 공영화, 혹은 국영기업을 만들어 경제성장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민간기업을 위한 대표적인 것이 바로 8.3조치입니다. 8.3 조치는 사채동결과 세법개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원초적 자본축적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사채동결을 통해 높은 이자와 낮은 수익률에 신음하던 기업들을 구제하였습니다. 신고만 한다면 부채를 3년간 갚지 않아도 되었으며, 이자도 1/3 수준으로 경감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또한 자회사를 만들고 투자하는 것을 대단히 장려하였습니다. 자회사를 만드느라 투자를 한다면 투자한 만큼 세금을 내지 않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모회사의 이익금에서 투자성과로 인한 배당금은 오히려 세금을 공제해주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대한민국에선 기업을 많이 만들수록, 일자리를 많이 만들수록 세제해택을 주는 일종의 격려를 해 준 것입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기업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민간 기업인들의 기업가정신은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수 많은 기업들이 생겨나고 투자가 이루어지고 일자리가 만들어지며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한 것입니다.

    3.경제정책(정부)
    경제정책도 항상 엄청난 반대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알려진 수출주도형, 중화학공업 육성 전략이 바로 그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농업이 아닌 공업, 내수가 아닌 수출이었습니다.

    당장 먹을 것도 없는데 농업이 아닌 공업을 육성한다는 것이 말이 되냐며 국내 교수와 전문가들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또한 우리가 쓸 것도 없는데 수출을 한다며 많은 비난도 있었습니다.
     경부고속도로 역시 건설 과정에서 야당 정치인들이 공사현장에 드러눕기까지 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러한 반대를 무릅쓰고 내수시장이 아닌 수출시장을 선택했고 농업이 아닌 공업과 제조업을 선택했으며 민족과 세계의 갈림길에서 세계를 선택하였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다행이고 당연한 선택이지만 전통적인 시각에서는 정말 무모하고 잘못된선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혹자는 수 없이 많은 전문가와 대학교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선견지명이 매우 뛰어나서 그럴 수 있었다는 일종의 신격화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 포럼의 이승윤 이사장님의 경험담을 예로 들자면, 박정희 대통령은 밤이 늦었는데도 갑자기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계획하기 위해 정주영 회장을 호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의 밤이 새도록 계획을 세우고 회의를 거듭했다고 합니다. 정말 기적과도 같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정말 많은 희생과 시련, 노력 끝에 완공되었으나 그때에도 박정희 대통령은 본인의 선택을 반신반의하며 이승윤 이사장님께 자신의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잘못된 것인지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재 경부고속도로가 대한민국의 기적같은 경제발전 과정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 당시 대한민국의 발전과정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고 단 한 번의 실수로도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일까요?

    경제학에서는 개인(가계), 기업, 정부를 가장 중요한 경제의 3가지 주체라고 이야기합니다. 60~70년대 무수한 희생과 피땀 흘린 노력 끝에 얻은 오늘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은 바로 이 세 가지 경제주체인 개인과 기업, 정부가 우리 자식들에게는 이러한 가난을 물려주지 말자는 일념으로 하나 되어 노력했기 때문에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멀게는 베트남전과 독일 광산에서부터, 가까이선 경부고속도로 공사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갔던 개인들과 위대한 기업가 정신, 그리고 나라를 위한 사업보국의 정신으로 기업을 세우고 경제를 활성화시킨 많은 기업가들, 마지막으로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던 정부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 덕에 저는 이 땅에서 단군 이래 가장 호화롭고 영광된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대한민국 역시 심각한 위기상황입니다.

    전통적으로 경쟁우위를 가지고 있던 조선, 자동차업계는 엄청난 위기상황을 맞고 있고 산업계 전반이 일본과는 기술적인 격차, 중국과는 가격경쟁력에서 밀려 뒤쳐지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중국의 추락 위험성이 고조되며 중간재 무역을 담당하던 우리나라역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외교적으로도 심각하게 고립될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새로운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로 한국을 빼고 호주를 넣는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실정입니다.
    최근엔 북한의 지뢰도발 및 전면전의 위기까지 닥쳐왔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비록 쫓겨나긴 했지만 통진당과 같은 무리들이 국회에 입성하였으며 국회선진화법 이후로 경제 활성화 법조차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하는 식물국회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 일수록 60~70년대 역시 대내외적으로 엄청난 위기상황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개인과 기업과 정부가 하나가 되어 발전된 대한민국의 모습을 꿈꾼다면 우리가 다시 기적 같은 성장을 펼쳐 보이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습니다.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각자 위치에서 충실히 노력한다면 우리도 해낼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제 토론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