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인신공격하고도 ‘검증 위한 의혹제기’ 변명하면 끝?
  • ▲ 4일 오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항소심 선고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 조선닷컴DB
    ▲ 4일 오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항소심 선고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 조선닷컴DB

    4일 오후 서울고법 형사6부(재판장 김상환 부장판사)는 지난해 서울교육감 선거 당시, 경쟁후보인 고승덕 변호사의 미국 영주권 보유 의혹을 기자회견과 방송 등에서 제기해 지방교육자치법 위반(낙선 목적 허위사실 유포)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에 대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뒤엎고, 형량을 벌금 250만원으로 감경하면서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이로서 교육감 직 상실 위기에 처했던 조희연 교육감은 기사회생했고, 법정은 조희연 교육감 지지자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선고유예’ 판결 직후, 야당 및 친전교조 지지성향의 시민들은 “법원이 나라를 구했다”, “역시 믿을 곳은 법원 밖에 없어” 등, 항소심 재판부를 향해 찬사를 쏟아냈다.

    이날 재판부는 고승덕 변호사가 미국 영주권 보유 의혹을 부인한 뒤에도, 조희연 교육감이  라디오방송 등에 출연해 같은 의혹을 계속 제기한 부분에 대해, 고의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점을 인정하고, 이 부분을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250만원을 선고하면서도,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악의적인 흑색선전이 아니라면,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 사이의 ‘검증을 목적으로 한 의혹제기’는 폭넓게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 재판부가 밝힌 선고유예의 결정적 이유였다.

    김상환 부장판사는 “조희연 교육감의 허위사실 유포를, 유권자의 선택을 적극적으로 오도하려는 무분별한 의혹제기나 일방적인 흑색선전으로 볼 수 없고, 선거결과에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판결이유를 밝혔다.

  • ▲ 서울고법 김상환 부장판사. ⓒ 네이버
    ▲ 서울고법 김상환 부장판사. ⓒ 네이버

    김상환 부장판사가 밝힌 판결이유를 보면, 재판부는 고승덕 변호사의 미국 영주권 보유 의혹에 대한 조희연 교육감의 거듭된 의혹 제기를 흑색선전으로 볼 수 없고, 조희연 교육감의 행위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판단했음을 알 수 있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조희연 교육감 측 변호인이 항소심 변론과정에서 주장한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에서, 재판부가 변호인의 변론을 상당부분 수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항소심 판결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없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조희연 교육감을 지지하는 야당 및 친전교조 성향 인사들을 제외한다면, 이날 항소심 판결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무엇보다 만장일치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국민배심원단의 판단을, 항소심 재판장이 임의로 파기했다는 점에서, 재판장의 재량 남용이란 비판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앞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이 사건 1심 재판에 참여한 국민배심원단 7명은 만장일치로,  조희연 교육감에게 유죄판단을 내렸다. 1심 재판부의 판단도 국민배심원단의 그것과 같았다. 이에 1심 재판부는 지난 4월, 조희연 교육감에게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1심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시민들과 재판부가 만장일치로 조희연 교육감의 행위에 유죄판단을 내리고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형량을 선고한 배경에는, 선거 때마다 무책임하게 되풀이되는 ‘카더라’식 의혹제기 관행에 경종을 울리고, 후보자 검증이란 미명 아래 자행되는 인신공격성 흑색선전의 폐단을 바로잡자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변호인 측 주장만을 받아들여, 1심 재판에 참여한 유권자인 국민들의 바람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조희연 교육감의 행위를 허위사실 유포로 인정하고 유죄판단을 내렸으면서도, 흑색선전은 아니라고 본 재판부의 판단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 사건 검찰의 적용 혐의는 지방교육자치법 위반이지만, 해당 법률이 공직선거법을 준용하고 있어, 실제 조희연 교육감에게 적용된 혐의는 낙선 목적 허위사실유포다.

    그렇다면, 재판부는 피고인이 경쟁 후보자의 낙선을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했는지를 판단하면 된다. 피고인의 행위가 유죄로 판단되는 이상, 그것이 흑색선전이냐의 여부는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특히 ‘허위사실 유포’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쳤느냐의 여부는, ‘낙선 목적 허위사실 유포’라는 범죄의 구성요건도 아닐뿐더러, 조희연 교육감의 거듭된 의혹제기가 선거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는 재판장이 자의적으로 판단할 사안도 아니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이 일반화된다면,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 사이의 무책임한 ‘카더라’식 의혹제기는 앞으로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의혹제기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후보자의 자질 검증’을 위한 정당한 행위였다고 발뺌을 하면 된다.

    검증 안 된 각종 설들이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눈 깜짝할 사이에 확산되는 한국의 온라인문화를 생각할 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현실을 무시한 안이한 결정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경미한 범행을 저지른 피고인이,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신속하게 복귀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선고유예 제도를, 중대범죄인 공직선거법 상 허위사실유포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적용한 사실도 논란거리다.

    항소심 결정에 검찰은 즉각 반발했다.

    검찰은 “허위사실유포죄의 법정 하한을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벌금 500만원으로 정한 바탕에는, 이 죄를 범한 피고인의 당선을 인정할 수 없다는 국민적 합의가 있다”면서, 항소심 재판부의 선고유예 판결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국민배심원단이 만장일치로 유죄평결을 내린 범죄 피고인을, 항소심 재판장이 임의로 풀어 준 것은 상식 밖의 결정”이라며 즉각 상고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조희연 교육감에게 ‘선고유예’라는 선물을 안긴 김상환 부장판사의 과거 판결도 눈길을 끌고 있다.

    김상환 부장판사는 지난 1월,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가 5촌 살인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제기한 인터넷 팟캐스트 멤버 주진우 시사인 기자와 김어준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김상환 부장은 ‘일부 과장된 표현은 있지만 보도를 진실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언론의 자유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언론활동의 범주에 속한다“고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반면, 지난 2월 이른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항소심에서는 원세훈 전 원장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원 전 원장을 법정구속했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원세훈 전 원장에게 적용된 혐의 중 공직선거법 위반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1심 재판부는 원세훈 전 원장이 국가정보원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원 전 원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김상환 부장은 원심을 뒤엎고,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를 인정, 원세훈 전 원장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지난 7월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하급심이 증거 판단을 잘못했다”며, 항소심 판결을 파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하급심이 유죄의 증거로 삼은 국정원 직원 김모씨의 파일 2개는 출처를 명확하게 알기 어려운 단편적이고 조악한 형태“라며, ”개인적으로 수집한 정보가 들어있는 등 국정원 심리전단 활동을 위해 작성된 문서로 볼 수 없어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김상환 부장은 2012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재임 당시, 북한 대남 공작기구의 지령을 받고 첨단 군사장비 관련 정보를 탐지·수집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기소된 대북 사업가 김모씨와 이모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대전 보문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김상환 부장판사는, 30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을 20기로 수료했다. 1994년 부산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법관생활을 시작했다.

    서울고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제주·수원·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거쳐 2013년 부산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했으며, 지난해 6월부터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