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노 비판 이어지자, 문재인 다시 혁신위 뒤로 숨고 김상곤 나섰나
  • 새정치민주연합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9차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9차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비노(非盧·비노무현) 진영의 비판에 거세게 반발하며, 스스로 계파 싸움이라는 진흙탕 속으로 뛰어들었다.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4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9차 혁신안을 발표하기에 앞서 "혁신위를 흔들고 혁신안을 바꾸려는 의도에 대해 강력히 경고한다"며 "지금도 당을 책임졌던 사람들이 혁신의 반대편에서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아울러 "국민과 당원이 아닌 계파와 기득권을 위했던 사람들이 지도부에 있었기에 우리 당이 지금 혁신의 수술대 위에 있는 것"이라며 "심지어 당의 이름으로 열매를 따먹고 철새처럼 날아가려는 사람도 있다"고 공격했다.

    이날 김상곤 위원장의 발언은 최근 문재인 체제와 혁신위를 향해 날을 세웠던 김한길·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탈당을 경고했던 박주선 의원 등을 정조준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상곤 위원장은 혁신안 발표 이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전 대표를 맡은 분이 성급하게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문제가 있다"며 "위기를 모두 다 외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도 혁신을 포함한 종합적인 혁신안을 마련해달라는 취지가 있어, 아주 열심히 혁신 작업하고 있는 혁신위에 대해 폄하하는 이야기를 성급하게 하는 것은 예의에 벗어난 것"이라고 이러한 해석을 확인했다.

    나아가 "전 대표를 한 분으로서 (안철수 전 대표도) 우리 당의 위기에 책임이 있는 것"이라며 "그렇게 성급하고 무례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무책임한 면이 있지 않느냐"고 재차 공격을 가했다.

    이날 김상곤 위원장의 작심 비난은 최근 며칠간 이어져 온 비노 진영의 문재인 대표와 혁신위를 향한 일련의 비판에 대한 반격으로 보인다.

    김한길 전 대표는 지난 1일 안철수 전 대표가 주최한 좌담회 축사를 통해 "혁신위가 많은 애를 쓰긴 했지만, 그 성과가 국민들의 희망을 자아내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며 "더 큰 변화와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 새정치민주연합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9차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는 가운데, 현역 의원으로는 유일하게 혁신위에 들어가 있는 우원식 혁신위원이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9차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는 가운데, 현역 의원으로는 유일하게 혁신위에 들어가 있는 우원식 혁신위원이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안철수 전 대표는 이튿날 전북대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이 말을 받아 "혁신위를 통해서 당은 변화를 보여줬어야 했지만, 혁신안에 대해 국민의 관심과 공감대는 거의 없다"며 "국민이 변하지 않았다고 느낀다면 혁신은 실패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나아가 "지금 당의 혁신이 제대로 된 혁신인지 국민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물어야 한다"며 "당의 일대 변화와 쇄신을 가져올 수 있는 정풍 운동이나 야당 바로세우기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주선 의원은 3일 MBC라디오 〈시선집중〉에 출연해 "혁신위가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처방을 했느냐(를 묻는다면) 동의하는 국민이 없다"며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친노 계파 청산과 중도개혁주의 정당으로 이념 노선의 변경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도 없고 외면해버리는데 혁신안이 어떻게 마음에 들 수 있겠느냐"라고 바통을 이어받았다.

    같은 날 김동철 의원도 광주에서 취재진과 만나 "문재인 대표로는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게 호남 민심"이라며 "(퇴로를 열어주기 위해) 일단 대표에서 물러나고 대선주자 원탁회의가 구성되면 다시 (지도부로) 들어가라고 했지만 '지도부 흔들기'라고 하더라"고 답답해 했다.

    이처럼 문재인 체제와 혁신위를 향한 총공세가 들불처럼 일어난 것은, 안 그래도 당 내부가 부글부글 끓던 찰나 문재인 대표가 "당이 빠르게 안정돼 가고 있다"며 "계파패권주의라는 말도 사라지지 않았느냐"고 기름을 부었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문재인 대표가 민심과 괴리된 안이한 현실 인식을 드러낸 것이 사태의 발단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표가 결자해지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다시 혁신위 뒤로 숨고,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전면에 나서 반격에 나선 모습은 모양새가 매우 안 좋아졌다는 평이다.

    야권 관계자는 "혁신위는 국민과 당원만 보고 가야지, 본인들이 스스로 어느 한 쪽을 비난하면서 계파 싸움에 뛰어들어버리면 어떻게 하느냐"며 "'문재인 구하기'에 나선 셈인데, 이제는 빼도박도 못하게 '친노 혁신위'가 돼 버렸다"고 혀를 찼다.

    혁신위는 지난 6월 출범할 때부터 친노·운동권 일색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 어린 시선을 받아 왔다. 하지만 이후 친노패권주의 청산 등 당의 고질적인 병폐를 건드리지 못하고 선거·공천 관련 제도 개선에 매몰됐을지언정, 이동학 혁신위원 등이 입바른 말을 곧잘 하면서 의심을 희석시키고 있던 중이었다.

  • 새정치민주연합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9차 혁신안을 발표한 직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9차 혁신안을 발표한 직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그러나 이날 9차 혁신안을 발표하며 당내 비노 진영을 향해 포격을 개시해, 마침내 친노 진영의 포문 중 하나였다는 '커밍 아웃'을 한 셈이 되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한편 이날 혁신위가 발표한 9차 혁신안의 내용적 측면을 향해서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9차 혁신안은 △당무위를 50인 이하로 축소하고 국회부의장·상임위원장·본부장 등을 배제해 선출직 위주로 구성 △최고위를 폐지하고 대표위를 구성하되 당대표와 원내대표, 권역별 대표 5인, 직능(여성·청년·노동·민생)대표 4인 등 11인으로 운영한다는 내용이다.

    또, 최근 문재인 대표가 맞닥뜨린 원내 쟁점을 거들기 위함인지 △특수활동비의 투명성 제고와 함께 △총선·대선 등 선거의 수개표 실시 △선거권 18세로 인하 등도 다소 맥락에 어울리지 않게 9차 혁신안에 포함됐다.

    이날 발표된 9차 혁신안 중 핵심은 최고위를 대체할 대표위의 운영에 관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혁신안 발표에 배석한 우원식 혁신위원은 취재진과 만나 "최고위는 계파 대립의 성격이 굉장히 강해서 실질적인 논의가 잘 되지 않았다"며 "지역·부문·세대별로 대표성이 분명한 사람들로 구성하면, 최고위에 올라오는 안건도 실감이 나고 논의에 충실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대의성이 강화되는 체제"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야권 관계자는 "전국 단위에서 선출되는 대표위원이 당 대표 1인 뿐이고, 나머지 대표위원들은 의원·권역·직능 등에 한한 제한적인 대표성만 가져 당 대표에게 권력이 집중될 수 있는 방식"이라며 "과거의 제왕적 총재 체제로 퇴행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또다른 야권 관계자도 "예전에는 전당대회에서 비주류도 일부 당선돼 최고위원회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전대에서 딱 1명만 선출되기 때문에 'All or Nothing'이 됐다"며 "비주류가 대표위에서 완전히 배제돼 대표위가 한 목소리만 내게 되는 게 계파 해소 방안이냐"라고 되물었다.

    이 관계자는 "전당대회에서 득표 순서대로 5~6명을 뽑는다고 하면, 어느 계파도 TO 전부를 자기 계파로 당선시킬 수는 없지만, 각종 경선에서 딱 1명씩만 당선된다고 하면 이야기가 다르다"며 "'전대 친노'가 당 대표가 되고 '의총 친노'가 원내대표, '여성위 친노' '청년위 친노' '노동위 친노' '서울 친노' '호남 친노' '영남 친노' 등이 각종 경선에서 1등을 차지해 대표위로 들어가면, 대표위가 그야말로 친노 일색이 된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