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8개 임시정부가 하나로 통합, 우리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민족사적 의미 지닌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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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가운 마음과 비장한 각오가 공존하는 자리다.

    2박 3일의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상하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재개관식에 참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축사를 통해 "새롭게 단장한 상하이 임시정부청사가 수많은 선열들의 고귀한 애국정신을 널리 알리고 우리 역사의 뿌리와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살아 있는 역사교육의 장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상하이 임시정부는 1919년 3.1운동의 결과 수립된 국내외 8개 임시정부가 하나로 통합을 이뤄 우리의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민족사적 의미를 지닌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오늘 재개관식은 우리 독립항쟁 유적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한-중 양국이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청사 재개관에 협조해 준 중국 정부와 상하이 시(市)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앞으로 중국 측과 협조해 중국 내 독립항쟁 유적의 보전과 관리에 최선을 다할 것이고, 또한 평화통일을 이뤄서 진정한 광복을 완성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는 임시정부 수반이었던 이승만, 박은식, 이상룡, 김구 선생의 후손 및 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이 함께해 의미를 더했다.

    우리 측에서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김장수 주중대사,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한석희 주상하이총영사, 나경원·원혜영·김세연 의원이 참석했다. 중국 측에서는 양슝(楊雄) 상하이 시장, 추궈홍(邱國洪) 주한중국대사, 탕지핑 황포구청장 등이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한 후 박승춘 처장의 안내를 받아 청사 내부를 관람했다.

    3층 연구관에 전시된 이승만 초대 대통령 등 임시정부 각료들의 사진에 대해 설명을 들은 박근혜 대통령은 "여기가 이번에 새롭게 만들어진 공간이라 할 수 있겠네요,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이라고 말했다.

    곧이어 박 대통령은 한인 2세들의 교육을 위해 설립, 운영됐던 인성학교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그 어려운 시절에도 교육을 중시해 가지고..."라고 말했다. 독립운동가들이 각 지역에서 활동한 내용을 접한 뒤에는 "그래도 다행히 사진들이 남아 있네요"라고 말했다.

    사진을 둘러본 박근혜 대통령은 방명록에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이어받아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이뤄내겠습니다. 2015. 9.4.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라고 적었다. 

     

  • ▲ 미주 독립운동을 이끈 이승만, 서재필 박사. 1921년 미국 워싱턴DC. ⓒ 뉴데일리DB
    ▲ 미주 독립운동을 이끈 이승만, 서재필 박사. 1921년 미국 워싱턴DC. ⓒ 뉴데일리DB

     

    임시정부청사는 1988년부터 우리 정부와 상하이 시(市)가 공동으로 진행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 발굴 조사를 통해 건물의 존재가 확인됐고, 2년간의 복원작업을 거쳐 1993년 4월13일 일반에 공개됐다. 이후 연평균 20만여명 이상의 한국인 관광객이 방문하는 대표적인 국외 독립운동 유적으로 자리매김했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임시육군무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훈시하는 것을 시작으로 1921년 5월 28일 상하이를 떠날 때까지 6개월간 임시정부에서 대통령 직무를 수행했다.

    훗날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김구는 이승만이 상하이에 있던 때를 임시정부가 가장 활발히 활동했던 시기로 회고했다.

    "한때 상하이 우리 독립운동자의 수가 1,000여명이었던 것이 차차 줄어 수십 명에 불과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취임 시무할 때에는 중국 인사는 물론이고 영국·프랑스·미국 친구들이 임시정부를 방문하였다. 그런데 이제 임정에 서양인이라고는 프랑스 경찰이 왜놈을 대동하고 사람을 잡으러 오는 이 외에는 없다." (백범일지 中)

    하지만 공산주의 노선을 택한 좌익 인사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1920년 12월 8일, 미국에서 활동하던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을 맡게 되자, 공산주의자였던 이동휘는 국무총리직을 사임했다. 이승만 박사와 갈등을 빚던 안창호도 임시정부에서 이탈했다. 하지만 이승만 박사와 다른 독립운동가들은 이념 성향을 떠나 독립운동을 위해 힘을 모으기로 했다.

    1921년 초 이동휘와 한형권 등은 스탈린 정권으로부터 200만 루블의 독립자금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이들은 상하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주지 않고 고려 공산당 창립 자금으로 빼돌렸다. 좌익 인사들이 외부로부터 받은 독립자금을 빼돌려 유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임시정부에서는 내분이 커졌다. 이 일을 시작으로 결국 이승만 박사는 상대 진영의 주도로 탄핵을 당하고, 다른 주요 인사들도 임시정부에서 빠져 나가게 됐다. 이후 임시정부는 제대로 된 내각을 조직하고자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재개관식 참석에 이어 두 번째 일정으로 상하이 인근 지역 동포 260여명을 초청해 오찬간담회를 가졌다.

    박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상하이 동포사회가 자발적으로 봉사단체를 만든 점 등을 높게 평가하고, 한-중 양국이 더욱 발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도록 동포들이 지속적으로 협조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과거 독일 통일의 사례에서도 보았듯이 우리가 통일을 하려면 주변국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북한의 올바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는 중국이 중요한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우리 민족이 기나긴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고, 한반도 통일 시대를 열어가는 길에도 동포 여러분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의 지뢰 도발을 언급하면서 "국민의 안위를 위협하고, 안보불안을 야기하는 이런 행위가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의지로 임했다. 앞으로 정부는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대화와 교류는 계속 이어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정희천 상하이 한인회장은 환영사에서 "이 곳은 우남 이승만, 백범 김구, 도산 안창호, 매헌 윤봉길 등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신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한민국의 위상이 날로 발전하고 있는 때에 맞춰 대통령님께서 상해를 방문하신데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한국과 상하이의 인적-물적 교류가 확대되고 오늘과 같은 발전을 이뤄낼 수 있었던 데에는 여기 계신 동포 여러분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중국 최대 인터넷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의 인턴 1기생 대표인 이은혜씨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박 대통령은 이후 예정된 한-중 비즈니스포럼 참석 일정을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귀국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