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현장까지 찾아갔지만, 예산정책협의회 분위기만 어색해져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3일 광주광역시청 중회의실에서 열린 예산정책협의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굳은 표정으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표 오른쪽으로는 차례대로 이종걸 원내대표, 안민석 예결특위 간사, 김동철 의원이다. ⓒ연합뉴스 사진DB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3일 광주광역시청 중회의실에서 열린 예산정책협의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굳은 표정으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표 오른쪽으로는 차례대로 이종걸 원내대표, 안민석 예결특위 간사, 김동철 의원이다. ⓒ연합뉴스 사진DB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당 상황에 대한 낙관론을 펼친 지 불과 사흘 만에 광주로 달려갔다. "당이 빠르게 안정되고 있다"고 하자마자 내홍이 급격히 불거지는 상황에서 '호남 민심'을 잡겠다는 행보였지만, 광주에서도 쓴소리가 나오고 자리를 비운 서울에서는 탈당이 선언되는 등 위기감만 고조됐다는 평이다.

    문재인 대표는 3일 예산정책협의를 위해 광주를 방문했다. 그는 광주광역시와의 협의에 앞서 구 전남도청 자리에 소재한 아시아문화전당을 방문하는 등 광주 민심 다독이기에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은 영·호남 남북에 각각 1곳씩 네 곳의 문화중심도시를 조성한다는 이른바 '4대 문화도시 사업'(부산 영상문화도시·경주 역사문화도시·전주 전통문화도시·광주 아시아문화도시)의 하나인 광주 아시아문화도시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문재인 대표는 이종걸 원내대표·안민석 예결특위 간사·신기남 김동철 장병완 임내현 권은희 의원과 함께 4일 부분 개관을 앞둔 아시아문화전당 곳곳을 둘러보며 "2002년 대선 때 (광주를) 문화수도로 삼겠다고 공약해서 (아시아문화전당 사업을) 하게 된 것"이라고 내세웠다. 이에 장병완 의원도 "당시 한나라당이 반대해서 예타(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시키느라고 애먹었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어 장병완 의원이 "영상산업과 연계하기 위해 송암산단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히자, 문재인 대표는 "컨텐츠를 잘 채워서 수출도 해야 광주의 미래 먹거리가 된다"며 "컨텐츠진흥원은 그러라고 (나주 혁신도시로) 내려보낸 것이니까 연계가 잘 돼야 하겠다"고 지시했다.

    나아가 최근 지역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의 운용 인력 규모와 관련해 "기재부에서 허용한 인력 154명은 모자란 것이 아니냐"고 관심을 표명했다. 장병완 의원이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야겠다"고 답했으나, 문재인 대표는 "점차적으로 늘려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처음 출발할 때 야무지게 출발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고집했다.

    이에 이종걸 원내대표가 지난달 22일 "예결위 간사가 되고나니 현직 장관도 굽실거리고 국회의원도 눈을 맞추려고 한다" "권력이 무엇인지 알겠다" 등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논란이 된 안민석 예결특위 간사를 가리키며 "예산(예결위) 간사가 TO를 만들어버리면 될 것이 아니냐"고 명쾌한 해법(?)을 제시해 좌중은 웃음바다가 됐다.

    문재인 대표는 아시아문화전당을 나서며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아시아문화전당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공약으로 제시하며 시작된 광주시민의 숙원사업"이라며 "우리 (노무현정권) 때 시작한 만큼 우리 당이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나아가 "(아시아문화전당을) 컨텐츠로 제대로 채우려면 충분한 운영 인력이 배치돼야 한다"며 "정기국회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우리 당은 그에 대해 책임지고 노력하겠다는 의미로 오늘 여기를 다시 한 번 방문했다"고 민심을 다독였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3일 광주 예산정책협의회에 앞서 아시아문화전당을 방문해 전시물들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김동철 의원, 안민석 예결특위 간사, 이종걸 원내대표, 문재인 대표, 장병완 의원이다. ⓒ연합뉴스 사진DB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3일 광주 예산정책협의회에 앞서 아시아문화전당을 방문해 전시물들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김동철 의원, 안민석 예결특위 간사, 이종걸 원내대표, 문재인 대표, 장병완 의원이다. ⓒ연합뉴스 사진DB


    이러한 '호남 민심' 잡기 행보에도 불구하고 이날 문재인 대표의 행보는 광주와 서울, 양 쪽에서 도마 위에 올랐다.

    이날 문재인 대표보다 먼저 아시아문화전당에 도착한 새정치연합 김동철 의원(광주 광산갑)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문재인 대표 체제로는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호남 민심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경고하고 있다"며 "'그냥 물러나라'고 하기에는 뭣하니까 '대표는 내려놓고 대선주자들로 원탁회의가 구성되면 그 중에 한 명으로 다시 (지도부에) 들어가라'고 (퇴로를) 열어줬는데, 그걸 '지도부 흔들기'라고 하지 않느냐"고 답답해 했다.

    비슷한 시각, 서울에서는 유선호·장세환 전 의원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정치연합을 탈당한 뒤 이른바 '천정배 신당'에 합류할 뜻을 밝혔다. 유선호 전 의원은 3선의 의원 경력 중 두 차례를 전남 장흥강진영암에서 지냈으며, 장세환 전 의원은 전북 전주완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바 있는 호남 정치권 인사다.

    김동철 의원은 이를 가리켜 "자기 개인 생각을 갖고 그런 것(탈당)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호남 민심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므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호남 민심이 탈당하지 말라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서는 문재인 대표에게도 질문이 던져졌다. 취재진으로부터 이러한 질문을 받은 문재인 대표는 "허허허"라고 잠시 당황한 듯 웃더니 "지금까지 혁신위의 활동을 통해 우리 당이 더 추락하는 것을 막고 안정감을 되찾았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중요한 위치에 계신 분들은 혁신이 국민 기대만큼 되지 못하고 있다고 걱정만 할 게 아니라, 다들 혁신에 참여해서 벽돌이라도 하나씩 놓겠다는 마음으로 함께 해주시면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을까 싶다"라고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후 문재인 대표는 광주광역시와의 예산정책협의를 위해 광주광역시청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표는 시청으로 들어서기에 앞서 신세계복합쇼핑몰 철회를 외치며 집회를 하고 있는 현장을 먼저 찾았다.

    '금호월드대책위' 등의 명의로 집회를 하고 있던 상인들은 "박혜자 시당위원장이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를 모시고 오셨다"며 "재벌 대기업의 복합 쇼핑몰 건설이 중소상인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데, 당의 입장을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마이크를 잡은 문재인 대표는 "광주시와 예산정책협의를 하러 왔는데 난처하다"면서도 "대규모 판매 시설이 들어서면 골목상권의 영세상인들이 다 죽을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걱정에 공감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우리 당 을지로위원회에서 광주시와 신세계 사이의 MOU를 백지화하라고 했는데, 시장에게도 걱정을 잘 전달하겠다"며 "을지로위가 대책위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가져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도로 오늘은 인사드리고 예산정책협의를 하러 가겠다"고 자리를 떴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3일 광주 예산정책협의회에 앞서 시청 앞에서 대기업 쇼핑몰의 입점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지역 상인들의 집회 현장을 찾아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3일 광주 예산정책협의회에 앞서 시청 앞에서 대기업 쇼핑몰의 입점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지역 상인들의 집회 현장을 찾아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문재인 대표가 당초 예정에 없던 것으로 보이는 지역상인들의 집회 현장을 방문해 발언까지 한 것은, 그만큼 호남 민심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하지만 잠시 후 광주광역시청 3층 중회의실에서 마주한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은 문재인 대표의 집회 현장 방문에 우회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윤장현 시장은 "국정도 바쁘고 국회도 바쁘고 당의 단합과 혁신을 위해 심려들이 많으시다"며 "들어오시는 중에 민생 현장에까지 귀를 기울여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꼬집었다.

    이어 "특별히 마음에 담은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새정치연합의 역사적 중심인 광주·전남에서 당과 시가 함께 협력해서 민생을 살피고 민심을 얻어야 하는데 지역총생산과 1인당 소득·시 재정자립도가 전국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라며 "정말 바쁘신 와중에 방문해주신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예산) 심의 과정에서 잘 살펴서 새정치연합의 정신적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광주에서 민심을 잘 살펴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아시아문화전당 방문에 이어 예정에 없던 집회 현장 방문으로 문재인 대표의 동선이 늘어지는 바람에 정작 예산정책협의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 됐다. 윤장현 시장은 이른바 '민생 행보'보다도 광주광역시의 예산과 정책에 더욱 신경을 기울이는 것이 민심을 얻는 길이라는 점을 호소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종걸 원내대표도 "새정치연합이 과거 어느 때에 비해서 광주에서 야단 맞고 꾸중을 듣고 있다"며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색해진 공기는 박혜자 광주시당위원장이 수습했다. 박혜자 위원장은 "문재인 대표가 말씀하시기를 광주 예산은 새정치연합이 책임지겠다고 하셨다"고 말했고, 이에 문재인 대표는 깜짝 놀라며 박혜자 위원장 방향을 돌아보며 "허허허허"라고 크게 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혜자 위원장은 "(문재인 대표의) 오늘 그 말씀에 의지해 끝까지 예산 싸움을 하겠다"고 천명했고, 참석자들 사이에서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박혜자 위원장의 "여러분, 힘을 모아달라"는 말이 끝나자, 문재인 대표와 박혜자 위원장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돌아보고 눈을 맞추며 악수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