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권역별 비례대표제… "지역감정 해결 못해, 독일도 마찬가지"安 중대선거구제… "계파 정치 폐단 극심, 일본도 96년 폐지"
  • 8월 31일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의 활동 시한이 만료된 데 이어, 9월 2~3일에는 정개특위의 여야 양당 간사가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의결 데드라인으로 설정한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진행된다. 대외적으로는 남북 문제와 주변 4강 관계가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방중을 계기로 긴박한 흐름을 탄 가운데, 국회에서는 내년 4월 13일에 치러질 총선 룰 관련 논의로 막판 진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은 8월 28일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정개특위 여당 간사인 정문헌 의원에게 "지역구를 늘리고 비례대표를 줄이는 방향으로 협상에 임하라"며 이례적으로 '가이드라인'을 내렸다. 반면 문재인 대표는 "국민의 뜻은 비례대표를 줄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비례대표 의원 수의 축소 여부를 놓고 여야 양당의 대표가 직접적으로 칼날을 맞댄 것이다. 정치권과 국민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비례대표 의원 정수 문제의 올바른 해결 방안은 무엇이며, 진정한 정치 혁신의 길은 어떠한 방향일까. 〈뉴데일리〉는 5회 연속 기획 연재를 통해 국내외 비례대표제의 운용 현황을 살펴보고, 올바른 정치 개혁과 혁신의 방향을 모색해 본다.

    [비례대표 정수 논란… 올바른 정치 혁신의 방향은]

    ① 문재인의 '국민'은 누구?… 여론은 "비례대표 줄여라"
    ② 문재인·안철수의 정치혁신론은 '오발탄'
    ③ 비례대표에 고사 위기 처한 농어촌 지역대표성
    ④ 해외 사례는… "선진 민주국가는 비례대표 없어"
    ⑤ 올바른 정치 혁신의 방향은 비례대표 축소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각자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중대선거구제를 주장하며 이것이 정치 혁신인양 고집해, 총선 룰 논의를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각자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중대선거구제를 주장하며 이것이 정치 혁신인양 고집해, 총선 룰 논의를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내년 4·13 총선이 불과 7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아직까지 총선을 치를 룰이 결정되지 않아 유권자와 예비후보자들이 혼란에 휩싸여 있다. 이러한 혼란의 중심에는 대권 주자를 자처하는 야권의 유력 정치인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있다는 평이다.

    문재인 대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며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에서의 논의에 걸림돌을 만들고 있고, 안철수 전 대표는 총선이 불과 7개월 앞으로 다가온 이 때 중대선거구제를 주장하며 판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더욱 문제인 것은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가 자신들이 주장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중대선거구제가 정치혁신의 정도(正道)이며,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인 양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그러한가.

    ◆문재인 주장대로라면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만병통치약'

    문재인 대표는 지난달 7일 확대간부회의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망국적인 지역 구도를 타파하기 위한 선거제도 개혁 방안"이라며 "우리 정치에서 그보다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개혁 과제는 없다"라고 단언했다.

    이어 10일 열린 의원총회에서도 "유독 지역주의 문제는 수십 년 째 진전 없이 재생산되면서 우리 정치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며 "그 해결방안이 바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라고 반복했다.

    그 뿐만 아니라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헌법에 규정된 평등 선거의 원칙에 충실한 제도"라며 "유효투표의 절반에 달하는 사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꼭 도입해야할 제도"라고 강조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고집 때문에 매관매직과 자질 미달의 표상인 비례대표를 줄이기 어렵게 됐고, 이로써 농촌 지역구의 급격한 통폐합이 불가피해져 농촌 대표성 문제가 불거지자 문재인 대표는 이 해결책조차 권역별 비례대표제라고 강변하기에 이른다.

    문재인 대표는 지난달 3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헌재결정을 지키려면 부득이 농어촌 지역 의석이 줄고, 그만큼 수도권 지역 의석이 늘게 된다"며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지역에서 줄어드는 지역구 의석을 권역별 비례대표 선출로 보완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설명을 듣고 있다보면 권역별 비례대표제야말로 우리 정치의 '만병통치약'인 것 같다. 왜 지금까지 우리 입법자들은 이를 도입하지 않았는지, 제헌국회부터 18대 국회에 이르는 국회의원들은 전부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주장에 따르면,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만병통치약 같지만 사실은 다르다는 지적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주장에 따르면,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만병통치약 같지만 사실은 다르다는 지적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상대 텃밭에서 의원 나온다고 지역 감정 해소 안 돼

    물론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역 감정의 결과가 선거로 나타나는 것이지, 선거의 결과로 지역 감정이 새삼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말전도의 처방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호남에서 현 새누리당 계열의 국회의원이 배출되고, 영남에서 현 새정치연합 계열의 국회의원이 당선되는 것으로 지역 감정이 타파됐다면, 1985년 치러진 12대 총선을 통해 지역 감정은 진즉 극복됐을 것이다.

    12대 총선 대구 수성·남에서는 현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정당 이치호 후보와 함께 신민당 신도환 후보가 당선됐다. 경북 영천·경산에서도 민정당 염길정 후보와 함께 신민당 권오태 후보가 당선됐다.

    광주 북·동에서는 반대로 신민당 신기하 후보와 함께 민정당 고귀남 후보가 당선됐으며, 전남 목포·무안·신안에서는 민정당 최영철 후보가 민한당 임종기 후보와 함께 당선되고 신민당 유경현 후보는 낙선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중선거구제를 통해 이처럼 인위적으로 상대 정당의 텃밭에서 국회의원이 당선되도록 했지만, 그 결과 지역 감정이 해소됐는지 여부는 문재인 대표를 포함해 모두가 다 알 것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통해 인위적으로 조작을 하더라도 지역 감정이 없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실시하는 독일, 지역 감정 여전

    지역 감정이란 역사적·문화적 유래에 따라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선거 제도를 어떻게 해서 해소할 수 있다고 보는 것 자체가 지극히 단순한 견해라는 지적이다. 일례로 문재인 대표가 목놓아 부르짖는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모범인 독일을 보더라도 전국을 16개 권역으로 나눠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지역 감정은 전혀 없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특정 지역(바이에른주)에만 후보를 내고 당선자를 배출하는 권역 정당(기사당)이 있고, 동부 지역에서만 맹위를 떨치는 정당(구 민사당)도 건재하다. 기사당은 우리나라로 비유하자면 '호남 자민련'에 가까운데, 바이에른을 중심으로 하는 남독일과 북독일 사이의 지역 감정이 극심하기 때문에 존립하는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를 봐도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통해 지역 감정을 해소한다는 게 얼마나 일차원적인 생각인지 알 수 있다.

    또, 권역별 비례대표제 실시에 따른 초과의석(Überhangmandat)의 발생 우려도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그 특성상 초과의석의 발생이 불가피한데, 이 때문에 독일 연방하원은 의원 정수가 598석인데도 2013년 총선을 치른 결과 하원 의원 수는 631명에 달한다.

    의원 정수 증가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이 심한 상황에서, 만일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통해 은근슬쩍 의원을 늘릴 심산이 아닌지 여전히 의구심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주장하는대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더라도 지역 감정이 해소되고 사표가 줄어드는 효과가 어느 정도 있을지는 지극히 의심스럽다는 지적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주장하는대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더라도 지역 감정이 해소되고 사표가 줄어드는 효과가 어느 정도 있을지는 지극히 의심스럽다는 지적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사표 없앨 수 없어… 없애려면 나치 독일 독재 전철 밟는다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사표(死票)를 줄인다는 문재인 대표의 주장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사표는 줄어든다.

    하지만 사표는 선거라는 것을 치르는 이상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각종 선거 중 가장 많은 사표가 발생하는 선거는 최대 다수자가 지지한 한 명만 당선되고 나머지 사람들의 표를 받은 후보들은 다 떨어지는 대통령 선거인데, 그렇다면 대통령 선거에서는 사표를 어떻게 방지할 생각인지 묻고 싶다.

    나아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더라도 봉쇄조항(封鎖條項, 일정 득표율 미만을 얻은 정당의 의회 진출을 막는 제도)을 둬야 하는데, 그러면 봉쇄조항에 걸린 정당에 투표한 유권자의 표는 사표가 되니 근본적으로 사표 발생을 막을 수 있는 제도도 아닌 셈이다.

    만일 사표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봉쇄조항을 두지 않는다면,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전철을 밟는 셈이 된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사표를 원천적으로 없애고 표의 등가성을 극단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순수비례대표제와 무봉쇄조항으로 총선을 운영했고, 이념적 양 극단에 위치하는 군소정당들이 난무해 국정은 혼란으로 치달았다. 그 결과는 나치당이 우익을 오른쪽으로 견인하고, 공산당이 좌익을 왼쪽으로 추동한 끝에 나치 독일 독재 체제 성립으로 막을 내렸는데, 문재인 대표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더라도 사표를 아예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할 수는 없으며, 따라서 표의 등가성이 완전히 보장되지도 않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농촌 대표성을 보완한다는 문재인 대표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지난달 11일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주최한 공청회에서 김종철 법무법인 새서울 대표변호사는 중앙선관위가 제시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6개 권역(서울, 인천·경기·강원, 세종·충남·충북, 광주·전남·전북·제주,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으로 나누고 있다는 점을 가리켜 "(대도시와 농촌이 합쳐져 권역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농어민 대표가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며 "강원은 농촌 지역이지만 인천·경기와 합쳐져 있으니 과연 그 권역에서는 어떻겠는가"라고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우리나라에서 1981~1985년 동안 두 차례의 총선에서 실시한 결과 실패했다는 사실이 판명난 바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우리나라에서 1981~1985년 동안 두 차례의 총선에서 실시한 결과 실패했다는 사실이 판명난 바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안철수 "중대선거구제 도입해야"

    이와 함께 새정치연합 안철수 전 대표의 중대선거구제 도입 제안도 뜬금없기는 매한가지라는 지적이다.

    안철수 전 대표는 지난달 2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현 소선거구제를 바꾸지 않으면 국회의원 300명 모두 바꿔도 똑같은 국회의 모습"이라며 "한 선거구에서 국회의원 1명을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에서 3~5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28일 정의화 국회의장을 만나서도 "얼마 전 북한과 무박 4일 협상을 했듯이 국가 미래를 위해 중요하면 밤을 새서라도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도록) 해야 한다"고 의기투합했다.

    안철수 전 대표 역시 자신의 중대선거구제만이 정치 혁신의 올바른 방향이요, 정주행인양 주장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1988년 김대중 "소선거구제 외면은 국민 배신 행위"

    우리 정치권은 중대선거구제를 안 해본 게 아니다. 1981년 4·11 총선과 1985년 2·12 총선은 한 지역구에서 2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로 실시됐다.

    하지만 민정당·신민당·민한당·국민당 등 많은 정당이 있어도 결국은 대권을 잡기 위해 양당 정치로 귀결되는 대통령제의 특성상 거대 양당에서 공천한 후보가 막대기를 꽂듯 당선되는 부작용이 극심했다. 유권자는 을(乙)이 되고, 공천을 주는 당 지도부만 갑(甲)으로 올라선 것이다.

    이 때문에 1988년 선거법 협상 과정에서 현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정당과 공화당은 중선거구제 유지를 희망한 반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민당 등 이른바 '민주화 세력'은 소선거구제 복귀를 강력히 요구했다.

    특히 현 새정치연합의 전신인 평민당 김대중 총재는 1988년 2월 2일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소선거구제를 외면하는 것은 국민 배신 행위"라며 "소선거구제 외에 타협이나 후퇴는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피력했다. 김대중 총재의 시각에서 볼 때,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주장하는 안철수 전 대표의 주장은 국민 배신 행위가 되는 셈이다.

  •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일본에서 당내 계파 정치의 폐단이 극심해지고 기형적인 1.5당 체제를 만들어낸다는 이유로 1996년 폐지된 바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일본에서 당내 계파 정치의 폐단이 극심해지고 기형적인 1.5당 체제를 만들어낸다는 이유로 1996년 폐지된 바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일본 중대선거구제, 계파 정치 극심… 1996년 폐지

    물론 안철수 전 대표도 이같은 헌정사 정도야 알고 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지난달 26일 기자간담회에서 "과거에 한시적으로 중선거구제를 한 적이 있고, 그때 선거구 별로 2명을 뽑았다"며 "(선거구마다) 3~5명 정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 논의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 정치 혁신의 정방향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하나의 국회의원 선거구에서 3~5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는 전후(戰後) 일본에서 1996년까지 시행했던 방식이다.

    이 방식은 한 정당이 공천한 여러 명의 후보가 하나의 선거구에서 당선될 수 있기 때문에 당내 계파 정치가 극렬해지는 폐단을 야기했다. 일본의 집권 자민당 내에 이른바 5대 파벌인 다나카파·후쿠다파·미키파·나카소네파·다무라파가 성립한 배경은 이 때문이다. 한 선거구에서 최대 5명까지 의원을 선출하기 때문에 당내에서도 이에 맞춰 5개의 거대 파벌이 생겨난 것이다.

    이들은 중의원만 해산되면(일본은 의원내각제이기 때문에 국회를 해산해 총선을 치른다) 마치 서로 다른 정당인 마냥 각자 파벌별로 공천해 총선을 치르고, 총선을 치른 뒤 파벌별로 살아돌아온 의원 수에 따라 총재와 수상을 뽑았다.

    소선거구제인 현 체제 하에서도 우리 정당 내의 계파 정치·파벌 정치의 폐단이 심각한데, 제도적으로 이를 부추기고 용인하는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되면 계파 정치가 얼마나 극심해질 것이며, 파벌 정치의 끝은 어디에 다다를지 궁금해진다.

    ◆1.5당제 성립에 기여… 안철수, 정무적 판단력 있나

    게다가 중대선거구제는 그 특성상 국회의원 선거구가 대단히 넓어지게 된다. 현행 소선거구제 하에서도 농촌에서는 군(郡) 4개를 합쳐 선거구 하나를 이루는데, 만일 의원 5명을 뽑는 선거구를 만든다고 하면 군(郡) 20개를 합쳐야 하고, 그렇게 되면 서울특별시의 수십 배 면적에 이르는 국회의원 선거구가 등장하는 것도 꿈만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 비용이 대단히 많이 들게 된다. 일본의 중대선거구제 하에서 자민당~사회당의 양당이 경합하면서도 항상 자민당이 집권하는 '55년 체제', 이른바 1.5당제가 자리잡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관변단체와 지역조직이 뿌리박고 있는 자민당에 비해 사회당은 대도시 중심의 노조 조직 밖에 없기 때문에 중대선거구제 하에서 모든 선거구에서 선거를 치러내기가 무리였기 때문이다.

    계파 정치가 들불처럼 일어나고 1.5당제가 자리잡는 현실, 과연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중 어디에 더 유리하고 불리할까. 안철수 전 대표에게 정무적 감각이 있는지 의심스러워진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중대선거구제를 포기하고 소선거구제를 채택한 마당에, 새삼 중대선거구제를 내세우는 안철수 전 대표의 주장은 정치 혁신이라기보다는 정치 역주행처럼 여겨진다.

    다만 이른바 '도농(都農) 복합선거구제'는 일응 검토의 가치가 있다. 특별시·광역시는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하고, 도(道) 지역은 소선거구제를 채택하는 이 제도는 면적의 광대함에 따른 선거 비용의 증가라는 폐단을 방지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채택 가능한 방안 중의 하나이다. 안철수 전 대표의 문제 의식이 문재인 대표보다는 조금 나은 셈이다.

    하지만 판 자체를 뒤흔드는 이런 제안이 당초 국회 정개특위의 활동 마감시한(8월 31일)보다 불과 닷새 전에 제기됐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안철수 전 대표가 기자간담회를 하고 정의화 의장과 만났던 시기는, 최대한 쟁점을 줄여나가면서 막판 타결을 모색해야 했던 시점"이라며 "쟁점을 좁혀가도 타결이 될까 말까인데 오히려 판을 더욱 키우는 제안을 했다는 점에서 역시 정무적 판단력이 의심스럽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