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리비아 무슬림 난민들, 안전·취업 등 목적으로 세르비아 거쳐 헝가리로
  • ▲ 지난 27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고속도로에서 발견된 냉동 트럭. 난민 시신 71구가 발견됐다. 이 트럭이 발견된 고속도로는 헝가리 국경과 인접한 지역에 있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27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고속도로에서 발견된 냉동 트럭. 난민 시신 71구가 발견됐다. 이 트럭이 발견된 고속도로는 헝가리 국경과 인접한 지역에 있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27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의 고속도로 갓길에 그래도 서 있는 냉동트럭 한 대가 발견됐다. 트럭에서는 이상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트럭 화물칸을 열자 수십여 구의 시신이 쌓여 썩고 있었다. ‘이상한 액체’란 시신이 썩으면서 흘러나온 체액이었다. 발견된 시신은 71구. 남녀노소의 시신이 섞여 있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이 주요 외신을 통해 알려지면서, EU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난민 문제’의 심각성에 주목하게 됐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이후 지금까지 며칠 사이에 또 ‘난민 시신 트럭’이 발견됐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에서 발견된 ‘난민 시신 트럭’은 서유럽으로 밀입국하려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 업자’들의 소유로 추정된다는 것이 현지 언론들의 소식이다.

    인신매매 업자들은 난민들을 서유럽으로 밀입국시켜주는 댓가로 수천 유로를 챙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인신매매 업자’들은 난민의 안전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때문에 서유럽으로 가는 도중 ‘냉동 트럭’ 등에서 집단 사망하는 사건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난민으로 인한 EU의 갈등은 이제 ‘인신매매 근절’ 차원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 차원으로 비화하는 분위기다. 현재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는 나라는 헝가리다.

    헝가리는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세르비아와의 국경 175km 지역에 장벽과 함께 3중으로 철조망을 쌓았다. 경비 병력도 3배로 늘렸다.

    헝가리가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된 것은 세르비아 국경을 통해 들어온 난민 때문. 인구 990만 명인 헝가리에 올해에만 14만 명의 난민이 몰려들었다고 하니 ‘국가 존립의 위기감’을 느낄 만 하다.

    특이한 점은 헝가리로 몰려든 난민들이 세르비아나 기타 동유럽 국가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 대부분은 시리아, 예멘,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와 중동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다.

    무슬림이 국민의 다수인 세르비아가 자신들의 입국에 우호적인 점, 그리고 세르비아 국경을 거쳐 헝가리까지만 가면, 서유럽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을 노리고 세르비아를 거쳐 헝가리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EU 회원국인 헝가리는 다른 회원국들에 ‘난민 문제’를 함께 해결하자고 호소했다. 헝가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구 850만의 오스트리아에서도 비슷한 여론이 비등하다.

  • ▲ 세르비아와의 국경에 설치한 철조망 장벽을 점검하는 헝가리 병사들. ⓒ러시아 스푸트니크 뉴스 보도화면 캡쳐
    ▲ 세르비아와의 국경에 설치한 철조망 장벽을 점검하는 헝가리 병사들. ⓒ러시아 스푸트니크 뉴스 보도화면 캡쳐


    하지만 EU의 중심점을 맡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가 “인도적 차원에서 EU 회원국들이 난민을 골고루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갈등이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동유럽 국가들이 무슬림 난민을 종교적인 이유로 수용하기를 꺼려한다면 이는 EU 결성 가치에 위배되는 것이며 EU에서의 자유로운 이동권을 보장하는 ‘솅겐 조약’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자 헝가리뿐만 아니라 동유럽의 다른 EU 회원국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헝가리를 포함한 동유럽의 EU 회원국들은 “무슬림 난민의 95%는 ‘정치적 망명’이 아니라 ‘정치적 망명을 빙자한 불법 취업’을 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헝가리와 동유럽 EU 회원국들은 그 근거로 무슬림 난민들이 자꾸만 서유럽 국가로 몰려가려고 하는 점을 들었다.

    실제 세르비아를 거쳐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으로 몰려든 무슬림 난민들의 최종 종착지는 독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독일이 지난 8월 24일 ‘더블린 조약’의 효력을 잠정 연기하고, 어느 나라를 거쳐 들어왔든 간에 시리아 등 북아프리카에서 온 무슬림 난민이면 모두 받아들이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 소식에 환호한 것은 무슬림 난민만이 아니었다는 게 문제다. 무슬림 난민을 밀입국시키는 ‘인신매매 업자들’ 또한 기회라고 본 것이다.

    EU 회원국이 지켜야 하는 ‘더블린 조약’은 1951년 제네바 난민협약 등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분쟁국 난민이면, EU 회원국에 발을 딛는 순간 해당 회원국이 난민의 망명 절차를 대신해주고 이들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헝가리 국경으로 유입되는 난민의 수가 워낙에 많아 헝가리 정부로서는 사실상 ‘수용 불가능’을 선언한 것이다.

    헝가리, 슬로바이카 등 동유럽 EU 회원국들은 독일과 프랑스가 “EU 회원국이 인도적인 차원에서 무슬림 난민을 골고루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 데 대해서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독일이야 현재 실업률이 4.7%에 불과할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동유럽은 인구도 작고 경기도 그리 좋지 않은 상황에서 독일처럼 세금으로 난민을 먹여 살리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독일이 올해 80만 명의 난민을 수용하는 ‘모범’을 보였다고는 하나, 인구 8,060만 명의 독일이 80만 명의 난민을 받는 것과 인구 990만의 헝가리가 14만 명의 난민을 수용하는 것은 차원이 전혀 다르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처럼 무슬림 난민의 대량 유입을 두고 독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서유럽과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을 포함한 동유럽이 팽팽히 대립하기 시작하자 파이낸셜 타임스 등 영국 언론들은 “EU가 동과 서로 나뉘어 대결하고 있다”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EU 탈퇴를 준비 중인 영국 보수당 정권에게도 ‘무슬림 난민’ 문제는 매우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영국과 아일랜드는 EU 회원국들이 맺은 ‘솅겐 조약’에는 가입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런던 인구의 20% 가까이가 서남아시아 출신 무슬림이고, 영국 전체 인구 10명 가운데 1명이 무슬림이 된 상황에서 헝가리와 세르비아의 상황은 남의 일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 ▲ 세르비아를 통해 헝가리로 들어가는 무슬림 난민들. ⓒ中관영 CCTV 아메리카 보도화면 캡쳐
    ▲ 세르비아를 통해 헝가리로 들어가는 무슬림 난민들. ⓒ中관영 CCTV 아메리카 보도화면 캡쳐


    아무튼 헝가리 정부는 독일, 프랑스의 요구를 무시하고, 난민들을 태운 열차를 오스트리아로 그대로 지나보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난민 가운데 EU 비자가 없는 사람은 헝가리로 돌려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요약하자면, 현재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등 동유럽 EU 회원국은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 세르비아를 거쳐 넘어오는 무슬림 난민의 유입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고, 독일, 프랑스 등은 이 난민을 EU 회원국 ‘모두’가 골고루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오스트리아는 그 중간에 끼인 상태로 양측의 입박을 받고 있다.

    이 같은 EU 회원국 간의 ‘동서 갈등’은 오는 1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내무·법무장관 회의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EU 의장국인 룩셈부르크는 14일 EU 내무·법무장관 회의에서 회원국들의 난민 송환정책, 회원국 및 국제적 협력, 인신매매 조직 검거 및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룩셈부르크 정부가 눈부신 활약을 보여준다면, 14일 EU 내무·법무장관 회의에서 ‘무슬림 난민’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도 동·서유럽 회원국 간에 팽팽한 대립이 이어진다면, EU 회원국들은 한동안 ‘무슬림 난민’ 문제로 갈등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