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서 “박근혜, 암살당한 사대주의자 민비 닮아” “청일전쟁, 러일전쟁도 민비 탓” 주장
  • ▲ 日산케이신문이 온라인 프리미엄판에 게재한 문제의 칼럼. ⓒ산케이신문 화면캡쳐
    ▲ 日산케이신문이 온라인 프리미엄판에 게재한 문제의 칼럼. ⓒ산케이신문 화면캡쳐


    中공산당이나 러시아 푸틴 정권을 향해서는 ‘찍’ 소리도 내지 못하는 일본 극우언론에게 한국 대통령은 ‘만만한 동네북’인 걸까, 아니면 아베 정권의 비뚤어진 역사관을 대변하느라 정신이 나간 걸까.

    아베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日산케이 신문이 中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故박정희 대통령까지 거론하며 ‘암살당한 사대주의자 민비 같다’는 칼럼을 게재해 물의를 빚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31일 온라인판 프리미엄 뉴스에 “美-中간 양다리 외교는 한국이 끊을 수 없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 뉴스 가운데는 “이씨 조선에도 박근혜 대통령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다. 민비는 ‘사대주의 도착(倒錯)’ 때문에 암살당했다”는 대목도 들어 있다.

    산케이신문은 1895년 10월 8일, 을미사변 당시 일제가 미우라 고로 공사의 지휘 아래 침략 선봉대였던 ‘현양사’와 ‘한성신보’ 관계자 등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명성황후를 시해한 사실은 쏙 빼고, “당시 민비는 무질서한 사대주의 도착으로 암살됐으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도 당시 민비의 그릇된 사대주의 외교 탓에 위기에 처한 일본의 대응이었다”는 식의 주장을 펼쳤다.

    산케이신문은 칼럼에서 한반도 지배권을 둘러싸고 일본과 청나라가 맺은 ‘텐진조약’을 가리켜서는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담보하기 위해 맺은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산케이신문은 또한 故박정희 前대통령을 가리켜 “사대주의라는 ‘민족의 나쁜 유산’을 필두로 개혁을 모색했다”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故박정희 前대통령을 동시에 싸잡아 폄훼했다.

    이 칼럼을 쓴 사람은 산케이신문 정치부 전문위원인 ‘노구치 히로유키’로 알려졌다. 그는 지금까지 자위대 역할 확대, 안보법제 통과 등 아베 신조 정권의 정책을 옹호하는 칼럼과 기사를 작성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케이신문이 이 같은 황당한 칼럼을 게재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中전승절 열병식 참석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반발을 대변하기 위해라고 한다. 하지만 역사왜곡을 통해 이웃 나라 국가원수를 매도하는 것은 물론 그의 작고한 부친까지 끌어들여 비하하는 태도는 ‘선을 넘은 행동’으로 풀이된다.

     

  • ▲ 남산자락에 있던 일제 침략선봉대 '한성신보'의 사장, 주필, 편집장, 기자들의 단체사진. ⓒ뉴데일리 DB
    ▲ 남산자락에 있던 일제 침략선봉대 '한성신보'의 사장, 주필, 편집장, 기자들의 단체사진. ⓒ뉴데일리 DB


    아베 정권 감싸기를 넘어 ‘나팔수’를 자처하는 산케이신문을 보면, 100여 년 전에 한국에 있었던 한 언론사가 생각난다. 바로 ‘한성신보(漢城新報)’다.

    ‘한성신보’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와는 전혀 다른 매체였다. ‘한성신보’는 일제 외무성의 자금으로 한국에서 창간한, 일제의 선전조직이자 침략 선봉대였다. 반면 ‘한성순보’는 조선 정부의 명령에 따라 박영효가 책임지고 펴낸, 관보(官報) 성격의 신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은 이노우에 공사가 작전을 짜고, 미우라 고로 주한 일본공사의 지휘 아래 낭인 출신 폭력배인 ‘현양사’와 일제 헌병 등이 저지른 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 여기에는 ‘한성신보’ 기자들과 외교관, 주한 무관까지 동참했다.

    ‘한성신보’의 사장 아다치 겐조를 필두로, 주필, 편집장이 특파원과 기자들을 이끌고 조선 황궁에서 닥치는 대로 학살을 자행했다. ‘언론을 가장한 살인마’들은 ‘현양사’ 칼잡이들과 주한 일본 공사관 무관, 외교관과 함께 조선 황실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명성황후 암살에 가담한 ‘한성신보’ 편집장은 나중에 이를 자랑하듯 ‘민후암살기(閔后暗殺記)’라는 책까지 펴낸다.

    이들이 당시 일제 정부의 명령에 따라 명성황후를 살해했다는 것은 주한 일본 영사 ‘우치다 사다쓰지’가 작성한 명성황후 시해 보고서를 일왕이 직접 결제한 사실이 2005년 드러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 ▲ 일제의 조직적인 범죄로 시해당한 명성황후의 영정. ⓒ뉴데일리 DB
    ▲ 일제의 조직적인 범죄로 시해당한 명성황후의 영정. ⓒ뉴데일리 DB


    이처럼 이웃 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언론의 탈’을 뒤집어쓰고 ‘반인류적 범죄’를 저지른 ‘한성신보’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그 정신은 현재 ‘산케이신문’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산케이신문의 반한 감정은 2014년 10월 8일 가토 다쓰야 前산케이 서울지국장의 기소에서도 낱낱이 드러났다.

    가토 다쓰야 前산케이 서울지국장은 2014년 8월 3일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을까’라는 기사를 산케이신문 온라인 판에 올렸다.

    가토 다쓰야 前산케이 서울지국장은 이 기사에서 ‘증권가 관계자’를 인용, “(의혹은) 박 대통령과 남성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상대는 대통령의 모체인 새누리당의 측근으로 당시는 유부남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증권가는 그 이상 구체적으로 파고들면 신중해진다”는 등의 주장을 폈다.

    이후 법원에 의해 출국금지 명령이 떨어지고,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가토 다쓰야 前산케이 서울지국장의 기사는 ‘사실’이 아니라 ‘주장’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하지만 산케이신문은 자신들의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한국 정부에 의한 해외 언론 탄압”으로 포장해 세계 방방곡곡에 떠들어 댔다.

  • ▲ 2014년 8월
    ▲ 2014년 8월 "세월호 침몰 당시 박근혜 대통령 행적"이라는 기사를 올려 기소당했던 가토 다쓰야 前산케이 서울지국장(가운데).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4월 가토 다쓰야 前산케이 서울지국장에 대한 출국금지가 해제된 뒤 한동안 잠잠한 가 싶었던 산케이신문이 또 다시 ‘망발’을 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들이 120년 전 조선 황궁에서 학살을 저질렀던 ‘한성신보’처럼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을까.

    명성황후 시해를 저지른 ‘한성신보’ 편집장은 ‘민후암살기’라는 책에서 “왕비의 모든 흔적을 없애기 위해 궁녀와 함께 태웠다”고 ‘자백(?)’하기도 했다. 이웃 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왕실에 침입, 그 왕비를 살해한 것을 책으로 써서 자랑하는 ‘언론인’이라니….

    을미사변의 주범 가운데 한 축이었던 ‘한성신보’ 관계자들은 일본으로 돌아간 뒤 ‘증거불충분’ ‘무죄’ 등의 선고를 받고 몇 달 만에 풀려났다고 한다. 이후 일제 침략세력을 등에 업고 출세가도를 달렸다고 한다.

    120년 뒤 ‘아베 정권의 나팔수’를 자처하는 산케이신문도 어쩌면 ‘대일본 제국’을 꿈꾸는 아베 정권과 그 지지자들처럼 ‘제2의 한성신보’를 꿈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을 제대로 못 보고 있는 것이라 단언할 수 있다.

    19세기 말의 조선? 지금의 대한민국은 ‘조선’이 아니다. 남북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거나 북한 체제가 붕괴된 뒤 한반도가 엉망이 되면 다시 기회가 생길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만에 하나라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듯 한다면, 일본이 무사할 수 있을까. 일본이 ‘이승만 라인’이라고 부르는 ‘한국 평화선’을 다시 부활시킨다면, 현재 일본 정부는 막을 능력이 있을까?

    산케이신문은 박근혜 대통령을 ‘사대주의자 민비’라고 부른 칼럼을 게재하기 전에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中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한다고 결정한 데 대해 “유엔의 신뢰와 중립성을 손상시키는 행동”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이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이 왜 생겼는지 잊었나”라고 반문했다.

  • ▲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 폭발 장면. 일본은 원폭을 맞은 것을 내세워 '피해자'인 척 하지만, 이들이 태평양 전쟁과 일제 침략으로 살해한 사람은 원폭 피해자의 수십 배다.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 폭발 장면. 일본은 원폭을 맞은 것을 내세워 '피해자'인 척 하지만, 이들이 태평양 전쟁과 일제 침략으로 살해한 사람은 원폭 피해자의 수십 배다.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뼛속부터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그 속마음으로는 미국의 뒤통수를 노리는 일본 극우, 아직도 태평양 전쟁 당시 세계 14개국 여성들을 강제로 성노예로 학대하고서도 사죄를 하지 않는 일본 극우를 서방 국가들이 무조건 도와주리라 생각하는가.

    여기에 하나 더. 한일 간의 극한대립 구도가 이뤄질 때 한반도 주변국들은 한국이 망하기를 바랄까 아니면 일본이 망하기를 바랄까. 국제관계에서의 ‘진공’이 크면 클수록 주변국이 이익을 얻을 기회가 더 많아진다는 것을 상상해보라. 그런 상황에서 일본은 한국 군대로부터 대마도나 큐슈를 지킬 능력이 있는가.

    쿠릴 열도 문제, 센카쿠 열도 문제를 두고 러시아, 중국에는 ‘찍’ 소리도 못하는 일본, 그러면서 한미일 동맹의 한 축인 한국을 폄훼하고 비난하는 일본, 일본 내 혐한 여론을 주도하는 매체들 대부분이 중국인 출신이라는 점을 숨기는 일본의 모습을, 일본이 지금도 ‘상전’이라고 생각하는 미국 조야(朝野)에서 알게 된다면, 한미일 삼각동맹에서 빠지는 것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본은 유엔이 왜 생겼는지를 뼛속까지 느끼는 ‘패전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 ▲ 영하 10도의 날씨에 이뤄진 특전사 요원들의 해상침투 훈련. 일본 자위대가 이들을 막을 수 있을까. 산케이신문과 같은 주장이 일본 사회에 퍼진다면, 일본인들은 집 앞에서 한국군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채널A 관련보도 화면캡쳐
    ▲ 영하 10도의 날씨에 이뤄진 특전사 요원들의 해상침투 훈련. 일본 자위대가 이들을 막을 수 있을까. 산케이신문과 같은 주장이 일본 사회에 퍼진다면, 일본인들은 집 앞에서 한국군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채널A 관련보도 화면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