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전선에서 무장투쟁 전개해 독립운동에 전념한 광복군""맥아더 장군의 최측근 보좌관으로 한국을 사랑한 미국인"
  • ▲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한국광복군 제1지대장 이준식 선생의 모습. ⓒ국가보훈처
    ▲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한국광복군 제1지대장 이준식 선생의 모습. ⓒ국가보훈처


    국가보훈처는 2015년 '9월의 독립운동가'와 '9월의 6.25전쟁 영웅'으로 이준식 선생과 윌리엄 해밀턴 쇼 미 해군 대위를 각각 선정했다.

    보훈처는 광복회와 독립기념관 공동으로 한국광복군 제1지대장 이준식(李俊植) 선생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이준식 선생은 1900년 2월 18일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1921년 중국 곤명에 있는 운남강무학교를 졸업한 후 만주 대한통의부에서 활동했다. 이준식 선생은 1924년 정의부 중앙위원에 선임된 후 1927년 오동진이 일제에 체포되자 그 후임으로 정의부 군사위원장에 임명된다.

    이후 이준식 선생은 1929년 조선혁명당 중앙위원 겸 산하 무장 단체인 조선혁명군 참모장으로 활약했으며, 1939년 임시정부 군사위원회 화북지구 특파단으로 서안에 파견돼, 병사를 모집하고 훈련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이준식 선생은 1943년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고급 참모로 임명됐으며, 같은 해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으로도 선출된다.

    정부는 항일 전선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해 독립운동에 전념한 이준식 선생의 공로를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보훈처는 이준식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내달 9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공훈선양 학술강연회를 개최하며, 9월 한 달간 천안 독립기념관과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이준식 선생의 생애와 한국광복군 활동을 담은 사진 전시를 개최한다.

     

  • ▲ 9월의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된 윌리엄 해밀턴 쇼 미 해군 대위는 지난 6월 호국영웅 우표의 인물로도 선정됐다. 사진은 기념우표 모습. ⓒ국가보훈처
    ▲ 9월의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된 윌리엄 해밀턴 쇼 미 해군 대위는 지난 6월 호국영웅 우표의 인물로도 선정됐다. 사진은 기념우표 모습. ⓒ국가보훈처

     

    보훈처는 윌리엄 해밀턴 쇼 미 해군 대위를 '9월의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했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1922년 미국인 선교사 부부의 아들로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자신을 한국인이라 생각할 만큼 한국을 사랑했다. 평양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해밀턴 쇼 대위는 유창한 한국어 실력으로 한국인 친구들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미 해군에 입대한 해밀턴 쇼 대위는 제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한 뒤 1947년 전역했으며, 이후 한국에서 조선 해양경비대사관학교(현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에서 교관으로 근무하며 생도들을 가르쳤다.

    교관으로 근무하던 해밀턴 쇼 대위는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 과정을 공부하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겠다는 다짐으로 미 해군에 재 입대해 6.25전쟁에 참전한다.

    한국어와 한국 지리에 정통한 쇼 대위는 미 극동군사령관 맥아더 장군의 최측근 보좌관인 해군정보장교로 임명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으나, 1950년 9월 22일 적 후방 정찰을 위해 녹번리(현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에 접근하 중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적 매복조의 공격을 받아 28세의 꽃다운 나이에 전사한다.

    해밀턴 쇼 대위는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로부터 충무무공훈장과 은성무공훈장을 각각 추서 받았고, 2015년 6월에는 '호국영웅 우표'의 인물로 선정돼 기념우표가 발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