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럴 때 이승만, 박정희라면 어떻게 했을까?

    최응표 /뉴데일리 고문 (韓國史 바로 알리기 미주본부 대표)

    박근혜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인 ‘원칙주의’의 가치가 이번처럼 돋보인 때가 없다.
     ‘최고존엄’은 언제나 甲의 위치에서 호령하고, 지시하며, 상대를 끌고 가야한다는
    그 오만이 박대통령의 ‘원칙주의’에 찍소리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세기적인 대사건이다.

하지만 스스로 판 48시간이라는 ‘무덤’ 속으로 빠져드는
‘악마’의 손을 그처럼 쉽게 잡아준 것 또한 역사에 남을 큰 실수다.

다급하고 초조한 것은 ‘정은’이다.
목까지 빠져 숨이 넘어갈 찰나까지 지켜보다 건져주었어야 했다.
무덤에 발목도 묻히지 전에 건져준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런 식으로는 그 고약한 버릇을 고칠 수가 없다.

정신병자를 일반병원에서 치료하지 않고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별도로 치료하는 이유를 안다면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확성기 방송을 중단한다’는 잠꼬대 같은 합의문은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화해를 구하는 것은 역량(力量)을 비축하기 위한 수단이며,
평화는 전쟁준비를 위한 일종의 휴식방법이다.”
이것이 바로 레닌의 ‘협상전술’이다.

1938년 9월 영국의 체임벌린 수상을 상대로 뮌헨 협정을 체결한 히틀러도 그랬다.
히틀러의 속임수 전략에 넘어간 체임벌린은 역사의 죄인이 됐다. 

황병서 북한 수석대표는 평양으로 돌아가기 바쁘게 25일, “이번 북남 고위급 긴급 접촉을 통해 남조선 당국은 근거 없는 사건을 만들어 가지고 일방적으로 벌어지는 사태들을 일방적으로 판단하고, 상대측을 자극하는 행동을 벌이는 경우 정세만 긴장시키고 있어서는 안 될 군사적 충돌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심각한 교훈을 찾게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저들의 실체다.
지금까지 숱하게 당하고도 저들의 속성을 그렇게도 모르겠는가.

“국가생존의 문제엔 타협이 있을 수 없다”며 1982년 뮌헨 올림픽 선수촌에 침입해
이스라엘 선수 11명을 살해한 팔레스타인 테러범을 ‘神의 분노’라는 작전으로 응징한
골다 메이어 수상, 그가 만일 목판지뢰 도발과 연천포격 같은 도전을 받았다면
어떻게 응징했을까? 

김정은은 벼랑 끝 전술을 쓰다 벼랑 끝으로 몰려 허둥대다
48시간이라는 함정에 빠져 고사 직전에 처한 상태였다.
우리 같은 무뢰한도 48시간이 지나더라도 우리의 대북방송 확성기에 절대 포격 못한다는
확신이 서는데, 軍 지휘부와 국가안보 전문가들은 왜 그처럼 허둥대며 저들의 협상제의를
감지덕지 받아 들여 저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나? 

지금까지 북한은 목판지뢰도발과 연천포격 사건을 우리 측의 조작극으로 몰며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주장해 왔다. 북한이 언제 자신들의 소행을 순순히 인정한 일이 있었던가. 

이런 북한이 데드라인 48시간을 겨우 4시간 남은 상태에서 ‘최고 존엄’에 먹칠을 해 가면서까지 전격적으로 협상제의를 해왔다면 분명히 막다른 지경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다.

지금처럼 시간과 외부여건 모두가 우리 편에 선 ‘하늘이 내린 기회’를 만났을 때,
이승만과 박정희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인 여건으로 보아 48시간이 지나도 절대 무력행사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꿰뚫어 본 이승만과 박정희는 분명히 먼저 목판지뢰도발과 연천포격을 인정하고 책임 있고 진정성 있는 사과와 책임자 처벌, 그리고 확고한 재발방지책을 내놓은 다음 협상을 할 수 있다는 강경한 태도를 취했을 것이다. 

다급하고 초조한 것은 우리가 아니고 북한이다.
‘최고존엄’의 체면을 구기면서까지 대화에 매달리는 북한의 막다른 현실을
똑바로 직시(直視)했다면 협상제의 2시간 만에 서둘러 받아들이는 우(愚)는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북이 발표한 ‘공동보도문’을 보자.
우선 제2항,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 지역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당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였다’ 

북한은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목판지뢰도발과 연천포격은 남측의 조작극이라고 주장해 왔다. 제 2항 어디를 뜯어봐도 북측이 종전의 주장을 접고 자기들의 소행임을 밝히는 대목도 없고 도발의 주체도 없다. 뭐하나 딱 부러지는 문구가 없다.

누구의 소행인지는 상관없이 일반 사고를 당한 부상자에 대한 일반적인 위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확실한 사과와 재발 방지가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을 땐 상응한 조치를 취하고 확성기 방송도 계속 유지할 것’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박대통령의 이런 단호한 입장표명에 배신감마저 느껴진다. 48시간 내에 대북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무력행사를 하겠다고 허풍을 떨던 김정은의 공갈과 무엇이 다른가.
 누가 묻은 지뢰에 우리병사의 발목이 잘렸는가.
국민전체가 알 수 있도록 왜 그 실체를 밝혀내지 못하는가.

이런 두루뭉술이 식 협상(접촉)을 위해 몇 날 며칠을 허비하며 국민의 가슴을 조였단 말인가.
이런 두루뭉술한 접촉으로 구겨졌던 ‘최고 존엄’은 되살아났지만, 우리는 무엇을 얻었나?

이런 식의 협상 또는 접촉으로 저들의 고약한 버릇을 어떻게 고칠 수 있나.
공동보도문 제 2항 어디에 박대통령이 요구한 ‘확실한 사과와 재발방지책’이 들어있나.
‘그렇지 않으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고 확성기 방송도 계속 유지할 것’이라는
박대통령의 단호한 천명은 어디 가고, ‘확성기 방송 중단’ 조치를 취했는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의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이라는 표현에 ‘재발방지’책이 들어있다는 해명은 국민을 문맹으로 보는 태도다.

제 3항, <남측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확성기 방송을 8월 25일 12시부터 중단하기로 하였다.> 여기 적힌 문장 하나하나를 뜯어봐도 “다시는 그런 짓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긴 문구는 없다. 우리가 비정상으로 보는 사안도 저들은 저들의 속성대로 정상이라 생떼 쓰며 시비를 걸 소지가 분명히 있다.

이산가족 상봉문제만 해도 그렇다. 지금까지 저들이 돈은 돈대로 받아먹고도 찔끔찔끔 적선하듯 저들 입맛대로 요리해 왔다. 저들에게 인도주의가 어디 있고, 도리(道理)라는 게 어디 있나.

이산가족상봉,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왜 이산가족만 늙어 죽어간다고 생각하나.
국군포로와 납북자들도 늙어 죽어가기는 마찬가지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국군포로는 나라를 위해 적과 싸우다 포로가 된 희생자들이고,
납북자들은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해 납치된 국가가 무한책임을 져야할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산가족은 자신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스스로 택한 길이다.
그러니 거기 따른 고통도 스스로 지겠다는 각오가 돼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과연 어디에 우선권을 둬야 하나.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인가, 이산가족인가.

달라는 대로 억수로 퍼주고도 국군포로와 납북자송환문제에 대해선 입도 뻥끗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번처럼 완전히 접촉의 주도권을 쥐고 회담을 요리해나가면서도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문제를 꺼내지 못한, 아니 꺼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제대로 된 국가라면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가 우선이 돼야 하지 않나.
언제까지 저들의 눈치를 봐야 하나.
비정상은 비정상으로 다루어야 문제가 풀리는 법인데.

“도덕적인 인간들 사이에서는 사랑이 유효할지 모르나, 비도덕적인 사회에서는 힘으로 힘을 제압할 수밖에 없다”는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신학자 라인홀트 니버의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공동보도문 제 6항, 지금까지 교류가 없고, 대화가 없어서 남북관계가 이처럼 꼬였는가.
대화는 숱하게 이어졌고, 이런 저런 구실을 달아 억수로 퍼주고 저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해온 것이 우리의 모습이었는데, 새삼스럽게 또 무슨 교류를 말하는 것인가. 

저들의 속셈은 금강산 관광 재개와 5.24조치 해제에 있다.
8월 25일의 공동보도문 만들기 식으로 제 6항을 다루다간 저들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일방적으로 퍼주기가 되기 쉽다. 쌍방통행이라야 교류가 되는 것이지 일방통행을 어떻게 교류라 할 수 있나. 

그리고 오늘 중아일보는 사설에서 ‘남과 북 모두 진정성을 갖고 대화에 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럼 지금까지 남한도 북한처럼 진정성이 아니라 사기성을 가지고 대화를 해왔다는 말인가.
어떻게 남과 북을 동일선상에 놓고 말하나. 제대로 된 사설이라면 “앞으로 北은 모든 대화에 진정성을 갖고 임해야 한다”고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이번 경우에 있어서 ‘최고존엄’의 무릎을 꿇린 박대통령의 ‘원칙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빛났다. 다만 ‘하늘이 내린 기회’를 백분 활용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 몇 마디 해본 것이다. 

이럴 때 이승만과 박정희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승만과 박정희 정신에 그 길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몇 마디 적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