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고위급접촉 결과를 보면서 느끼는 아쉬움

    남측의 두 대표가 잡았던 북측의 목줄을 조금 때 이르게 풀어 놓아 준 것이
    이번 접촉의 결과가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동복   

  • 43시간의 산고(産苦) 끝에 8월24일 발표된 남북고위급접촉의 6개 항목 합의서는 내용을 잘 읽어 보면 북측의 입장이 너무 꼬여 있고 그 때문에 합의서 타결에 워낙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 보여서 남측이 좀더, 어쩌면 이틀 정도만 더 버티었으면 이보다 나은 내용의 합의서가 만들어졌을 것 같다는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전반적으로 합의서의 내용은 남측 입장에서 그만 하면 괜찮다고 평가할 만함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그같은 아쉬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번 합의서의 핵심은 ④항의 “북측은 준전시상태를 해제하기로 하였다”는 부분이다.
    이번 사태의 전개 과정에서, 아마도 김정은(金正恩) 자신의 작품일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북한의 입장에서 8월20일 오후 5시 발표한 '48시간 최후통첩'은 치명적 실착(失着)이었다.

    이 '최후통첩'은 만약 북한이 설정한 시한인 22일 오후 5시까지 남측이 “비무장지대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고 그 시설을 철거하라”는 북측의 ‘절대적’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북측으로 하여금 선택의 여지없이 비무장지대에서 대북 방송 중인 남측의 확성기를 '조준 타격' 하는 것을 포함하여 남측에 대한 대대적인 군사도발을 감행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한반도와 주변에서 전개된 상황은 북측이 그 같은 추가적 군사도발을 자행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북측은 스스로의 발을 묶어 버린 '48시간 최후통첩'의 올무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북측보다는 남측이 주도권을 행사하는 형식과 내용으로 진행되는 남북고위급 접촉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남북고위급 접촉의 눈을 끌었던 특이한 양상은, 회담의 주도권 장악 수단의 하나로 대부분의 경우 북측 지역에서의 첫 회담 개최를 고집하던 과거의 행보와 달리, 북측이 접촉 장소로 남측 지역인 ‘평화의 집’을 사용하는 것을 받아 들였다는 사실이었다. 북이 '기(氣) 싸움'에서 밀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였다.   

    22일 오후 남북고위급접촉이 시작됨으로써 북측은 일단 이날 오후 5시였던 '48시간 최후통첩' 시한으로부터는 해방되었다. 북측의 '최후통첩' 자체가 고위급 접촉의 논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로서 북측은 일정 시간 이후에는 남측에 대한 추가 군사도발을 감행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해방되었다. 이에 따라, 역설적으로 ‘시한’에 쫓기는 부담에서 해방된 북측은 본래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남측의 '목함 지뢰'와 '대남 포격'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요구는 '남측의 자작극(自作劇)' 주장으로 봉쇄하면서 “남측이 비무장지대 확성기 방송을 중지하고 그 설비를 철거하라”는 요구를 일방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북측은 이 일방적인 주장을 고수할 수 없었다. 상황이 북측에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북측은 북측이 스스로 선포한 '준전시 상태'(8월21일 오후 4시30분)와 '전시 상태'(8월22일 낮 12시)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다. 무엇보다도 북측은 북측이 군과 주민사회를 대상으로 무리하게 가동한 '전시동원태세(戰時動員態勢)' 유지에 필요한 엄청난 비용 부담을 감당하는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다. 이와 아울러 남측의 대응이 단호했다. 북측의 '공갈·협박'이 남측에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그리고 국제정세가 결정적으로 북측에 불리해졌다. 한미동맹 틀 속에서의 한미 연합작전 체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9월3일 ‘전승절(戰勝節)’ 행사를 코앞에 둔 중국의 불쾌지수(不快指數)가 눈에 띠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에 더하여 북측의 무리한 강수(强手)가 남측 사회에서 역효과를 발생시키기 시작했다. 북측은 “이번의 전쟁위기로 남측 사회가 동요하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선전, 선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지만 실제로 남쪽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특히 20/30대의 안보의식 변화가 단연 가시화(可視化)되었고 북측이 조장(助長)하는 ‘남남갈등(南南葛藤)’도 기세를 떨치지 못했다. 이번 사태로 북한의 국제적 고립은 한층 심화(深化)되었고 김정은의 영도력이 심각한 손상을 입는 것을 회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북측은 남측의 대북 확성기 방송에 관한 북측의 요구 가운데 '시설 철거' 문제는 슬그머니 덮어두고 '방송 중단' 요구만을 남겨 두는 한편 '목함 지뢰' 와 '대남 포격' 문제에 관하여 남측이 요구한 '시인·사과'와 '문책' 및 '재발 방지 보장' 문제에 관해서도 '시인·사과' 문제만을 가지고 흥정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주고받기' 흥정을 벌인 것이다.   

    결국, 쌍방은 서로 부분적인 양보를 교환한 ②·③항의 표현에 합의하는 데 성공했다. 이 합의의 의미는 북측은 ① 대북전단과 ② 대북 전광판 문제를 포함하는 남측의 총체적 대북 심리전 활동은 물론 ③ 확성기 방송 시설 철거 문제 등은 언급함이 없이, '비정상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이라는 조건을 붙여서, 남측이 '군사분계선 상에서의 모든 확성기 방송'의 중지에 합의함으로써 실제로는 방송의 재개 가능성도 열어 둔 반면, 남측은 행위 주체로 '북측'을 명기(明記)한 가운데 '유감'이라는 표현으로 북측의 '사과'를 수용하고 '문책'과 '재발방지 보장' 요구는 접는 식으로 흥정을 성사시켰음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이 같은 합의 내용은 북측이 '기 싸움'에서 밀리고 있어서, 만약 남측이 조금만 더 시간을 가지고 압박을 가했다면 북측은 최소한 '목함 지뢰'와 '대남 포격' 문제에 대한 '문책'과 '재발방지 보장' 문제에 관하여 합의문 ②항의 내용보다는 진전된 내용으로 합의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필자는 본다. 과거, 1970년대와 1990년대에 북측과의 협상을 주도했던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남측의 김관진·홍용표 두 대표가 잡았던 북측의 목줄을 조금 때 이르게 풀어 놓아 준 것이 이번 접촉의 결과가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아울러, 이번 합의문 내용에 관하여, 반드시 지적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이산가족 상봉 재개' 문제에 관한 ④항의 합의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남북이 2000년 이래 15년간에 걸쳐 진행해 온 '이산가족 상봉'을 통하여 이 방식이 이산가족 문제의 적절한 해결방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는 사실을 직시(直視)하고 그 토대 위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2000년 이래 남쪽에서는 도합 12만9698명의 이산가족이 ‘상봉’을 신청하고 있다. 그 동안 남북 간에는 19회의 ‘상봉’이 실현되었지만 신청자 가운데서 ‘상봉’에 성공한 사람은 1956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들 신청자의 대부분은 고령자들이기 때문에 지난 15년 사이에 연평균 4227명, 도합 6만3406명이 고령으로 사망했으며 남은 생존 신청자 6만6292명도, 그 동안의 연평균 사망률에 의하면, 앞으로 16년 안에 모두 세상을 떠나게 되어 있는 반면, 종래의 성공률에 의하면, 이들 가운데 상봉에 성공할 사람은 2000여 명에 불과하다.   

    요컨대, 그 동안의 ‘상봉’ 방식에 의하면, 전체 12만9698명의 신청자 중 상봉에 성공하는 사람은 도합 4000여명으로 이 수자를 제외한 12만5000여명은 처음부터 상봉의 혜택에서 배제되어 있는 것이 된다. 이렇게 되면 적십자를 통한 ‘상봉’ 방식은 더 이상 중심적인 이산가족 문제 해결 방안으로 추구되어서는 안 되게 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박근혜 대통령도 금년 들어 와서 3.1절과 8.15 경축사에서 이산가족 문제에 관하여 ‘상봉’ 방식보다는 “전체 이산가족을 대상으로 생사와 주소를 확인하고 서신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문제”를 중점적으로 언급함으로써 이 문제에 관한 정부의 대처에 변화를 추구할 것을 생각하고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합의문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장관은 이산가족 문제에 관하여 '상봉' 문제를 거론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전체 이산가족의 주소와 생사 확인 및 서신 교류와, 가급적이면, 인도적 고통이 보다 절박한 고령이산가족의 성묘 방문 같은 문제들을 가지고 북측과 논의했어야 했었다. 그 동안의 상봉 방식이 북측에서 가급적 기피하는 ‘대인(對人)’ 접촉이라는 데서 오는 문제점이 없지 않았다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번에 이산가족 문제를 다룰 때는 ‘상봉’ 방식 외의 보다 적절한 방식에 관한 논의를 추구하는 것이 마땅했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아니 할 수 없다.   

    이같은 사실은 김관진 실장이나 홍용표 장관의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인식이 피상적(皮相的)이거나 부족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는 점에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합의문 ⑤항에 의거하여 오는 9월 중 쌍방 적십자간의 실무접촉이 있게 될 때 ‘상봉’ 재개 문제와 아울러 전체 이산가족을 대상으로 주소와 생사를 확인, 통보하고 서로 서신을 주고 받는 문제와 아울러 고령 이산가족들의 성묘 방문을 서로 허용하는 문제를 중점적으로 협의해 주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합의문의 ①·⑥항을 가지고 언론에서는 금강산 관광 재개 및 5·24 재개 문제 등과 관련시켜 설왕설래(說往說來)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이 두 항목은 “남북 간의 모든 문제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토의하자”는 박 대통령의 평소 지론의 테두리 안에서 그 의미가 천착(穿鑿)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 두 조항은 실제로는 거의 무의미한 '동어반복(同語反覆)'(Tautology)에 해당되는 것으로 논란의 대상이 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   

    이번 남북고위급접촉의 과정을 보면서 필자가 다시 한 번 필요를 절감하는 것은 차제(此際)에 남북대화 체제를 근원적으로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접촉을 전후하여 언론에서는 이른 바 '통-통 라인'이라고 해서 우리측 통일부와 북측의 ‘노동당 통일전선부’를 연결하는 대화 라인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같은 언급은 매우 부적절하다.  

    우리 쪽 통일부와 북측의 노동당 통일전선부는 결코 대화 라인이 될 수 없다.
    왜냐 하면 우리 쪽 통일부는 그 존재 이유가 '자유민주 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추구하는 데 있고 북측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존재이유는 '적화통일'을 추구하는 데 있다.

    바로 이같은 상반되고 상극(相克)된 존재이유 때문에 남측 통일부와 북측 노동당 통일전선부는 서로 대화의 상대방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남북 간의 대화는 ‘통일’이 아니라 ‘통일’ 이전의 단계에서 남북의 두 이질적 체제 간에 평화적인 '분단관리'를 주도하는 기능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일’이 아니라 ‘분단’을 관리하는 기능인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과거 양독 분단 시기 서독(西獨)은 이 문제에 관하여 절묘한 분업(分業) 체제를 발전시켰었다. 우리의 통일부에 해당하는 ‘내독관계성’(‘전독성’의 후신)은 통일 문제만 전담하고 양독 간의 대화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양독 간의 ‘대화’는 수상실에 동독과의 대화를 전담하는 ‘무임소 장관’을 두고 그로 하여금 양독간 대화를 필요로 하는 사안이 생길 때마다 해당 부처의 주무 관리와 범정부 차원의 협상 전문가들을 모아서 ‘태스크 포스’를 구성하여 동독과의 협상과 교섭을 전담하게 하였다. 협상의 결과물은 담당 부처로 이첩되어 담당 부처가 동독의 상대 부처와 협력하여 이행하게 했었다.   

    박근혜 정부도 이 같은 서독의 분업 체제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벤치마크하여 ‘통일’ 업무와 ‘대화’ 업무 간에 분업체제를 구축하는 문제를 이번 기회에 진지하게 검토해 볼 때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