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스텝부터 꼬인 가운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초조함만 커져
  • ▲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3일 오전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관련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상곤 혁신위원장(사진 가운데)은 혁신위 제안의 초점은 의원 정수 확대에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3일 오전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관련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상곤 혁신위원장(사진 가운데)은 혁신위 제안의 초점은 의원 정수 확대에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자신들이 내세운 권역별 비례대표제 카드로 인해 점차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달 26일 혁신안을 발표하면서 국회의원 정수를 369명(지역구 246 + 비례대표 123)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섣불리 띄웠다가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으며 첫 스텝부터 꼬였기 때문이다.

    내심 뜻을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조차 "의원 정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국민의 공감을 얻을 때 다양한 구상 속에서 논의될 수 있고, 선거구 재획정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논의될 수도 있는 문제"라며 "국회의원 정수 문제가 너무 앞질러 논란이 되지 않도록 신중한 논의를 당부한다"고 혁신위의 세련되지 못한 행보를 우회적으로 꾸짖었다.

    '국회의원을 늘리자'고 하면 못 이기는 척 적당히 장단을 맞춰줄 줄 알았던 새누리당의 반응도 뜻밖이다.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은 30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20대 국회에서 의원 정수 확대는 결코 없다는 것을 당론으로 못박아야 한다"며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무성 대표최고위원도 2일(한국시각) 로스앤젤레스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현지 한인 언론 간담회에서 "지역구 의원 수를 늘리더라도 비례대표를 줄여 현재 의원 정수 300석을 유지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일반적인 생각"이라고 화답했다.

    이에 따라 방미 중인 김무성 대표와 남미 순방 중인 원유철 원내대표가 귀국하는대로 새누리당은 의총 소집을 통해 '의원 정수 확대 절대 불가'를 당론으로 정할 것으로 보인다.

    '의원 정수' 전선(戰線)에서 열세에 몰린 새정치연합 혁신위는 공세 지점을 변경해 의원 정수에 대한 언급은 삼간 채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받을 것인지만을 묻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러한 기조는 3일 오전에 열린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혁신 토론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혁신위 제안의 초점은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있지, 의원 정수 증가에 있지 않다"며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도입은 새로운 민주주의의 시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아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여론의 등 뒤에 숨는 것은 혁신이 아니다"라며, 의원 정수 확대에 관한 여론의 거센 거부감을 등에 업고 있는 새누리당을 향해 날을 세웠다.

    지난달 26일 혁신안이 발표되자 '의원 정수는 390석(지역구 260 + 비례대표 130)까지 늘리는 게 좋다'며 한 술 더 떴던 이종걸 원내대표도 이날 토론회에 참석해 "유효 투표의 절반인 천만 표의 사표가 발생하는 등 현행 제도는 유권자의 표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것이 논쟁화되면서 의원 정수 문제로 귀착되는 것에는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국회가 더 사회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당위에 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며 은연 중에 의원 정수 확대가 여전히 소신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발제를 맡은 김형철 성공회대 교수는 "(지역구를 늘리고 비례대표를 줄여야 한다는) 김무성 대표의 발언은 시대에 역행하는 아이디어로, 정치학자로서 크게 개탄을 금치 못했다"며 서두부터 공격에 나서기도 했다.

    이날 토론회의 인사말·격려사·모두발언 등에서는 '의원 정수 확대'를 중심으로 전선이 형성되고 논란이 벌어지자, 논의의 초점을 어떻게든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옮겨 여론을 반전시켜보고자 하는 초조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의원 정수 확대를 전제하지 않은 권역별 비례대표제 논의는 당내의 의견조차 하나로 묶어낼 수 없기 때문에 애초부터 힘이 실릴 수가 없는 공세 포인트라는 냉정한 비판이 제기된다.

    의원 정수를 현 300석으로 유지하면서 중앙선관위의 안에 따라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려면 지역구를 현재보다 46석이나 줄여 200석으로 하고 비례대표를 100석으로 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호남을 중심으로 하는 농어촌 지역에서 급격한 지역구의 통·폐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계파 색깔이 옅은 것으로 알려진 새정치연합 중진의원은 "(지역구 200 + 비례대표 100은) 혁명 상황이 아닌 다음에야 관철할 수 없다"며 "이를 억지로 당론으로 밀어붙이려 하면 되레 혁신위가 엎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의원 정수 확대를 전제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꺼내면 여론의 거센 역풍과 여당의 공세에 직면하고, 그렇다고 의원 정수 현행 유지를 전제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꺼내면 당내 반발과 내홍이 우려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의 상황에 빠진 모양새다.

    그렇다고 이미 꺼낸 권역별 비례대표제 제안을 스스로 거둬들일 수도 없는 가운데, '분당(分黨)의 뇌관'으로 평가받는 공천제도 혁신안 발표는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어 다시금 당내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의원들 중에 내심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에 공감하는 의원들이 많은 가운데, 혁신위가 이를 일축한 것에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며 "'어디 얼마나 좋은 공천 혁신안을 내놓나 보자'라는 식으로 일단 두고 보고들 있지만, 막상 발표되면 선거제도 혁신안과 엮이면서 큰 논란이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