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정수 확대…문재인 분위기 잡고, 이종걸 띄우고
  • 새정치민주연합이 의원정수 확대를 거론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국민들의 의견을 도외시한 당리당략적 주장이라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이 의원정수 확대를 거론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국민들의 의견을 도외시한 당리당략적 주장이라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오픈프라이머리, 권역별 비례대표제, 선거구 획정 등 정치 개혁을 둘러싼 여야의 첨예한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야당발(發) 의원정수 확대 논란이 정치권의 혼란을 심화시키고 있다.

    의원정수 문제와 관련돼 새누리당은 "확대는 곤란하다"는 비교적 일관된 입장을 보이고 있는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친노와 비노, 주류와 비주류가 확연히 다른 견해를 보이면서, 내분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2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내 한 호텔에서 현지 한인언론인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국회의원 정수는 지금의 300석을 유지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일반적인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무성 대표의 발언대로 새누리당 의원들은 국회의원 정수 문제와 관련돼 '현행 유지' 입장을 밝히고 있다. "현재보다 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는 새정치연합 측 의견에 동조하는 견해는 찾기 힘들다.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모임인 '초정회' 역시 지난달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숫자가 부족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정치 시스템 개혁과 자구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의원정수를 늘리자는 주장은 정치혁신 노력의 본질을 훼손하고, 국민들의 신뢰를 더욱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은 "의원 정수를 늘려 나가는 것은 국민들의 뜻에 반하는 것"이라며, "없던 일로 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권에서는 정수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 다수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지난 4월 6일 새정치연합 민주정책연구원이 주최한 정책 엑스포에 참석해, '청년 유권자 연맹'이 진행한 스티커 설문조사에서 '국회의원 정수는 351명 이상이 적당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에 대해 야권의 한 관계자는 "진지한 분위기가 아니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나섰다. 나아가 이 관계자는 지난달 26일, "의원 정수 확대는 당론이 아니"라고 밝히면서, 이 문제에 관한 여론의 흐름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당 관계자의 적극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런 견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정치권 인사는 많지 않다. 문재인 대표의 입에서 "의원정수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분명한 발언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현재 흐름상 야권의 의중이 '의원정수 확대'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 정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친노진영은 물론이고 심상정 의원 등도 같은 목소리를 내는 현실은 이런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무엇보다 새정치연합 지도부를 비롯한 야권이 의원정수 확대를 이야기하면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좌파 정치권이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력 유지 및 강화를 위해, '의원정수 확대'를 계기로 합종연횡에 나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는 의원 정수를 369명으로 늘리는 안을 내놓으면서, 이 문제를 주요 정치현안으로 띄우려는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새정치연합 혁신위는 의원 정수 확대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면서, 그 이유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내세웠다.

    새정치연합 혁신위는 현재의 선거제도를 "지역주의 중심의 전근대적 정당체계"라고 정의하면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국민 한 표가 갖는 비례성을 높여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혁신위는 자신들의 제안을 '개혁안'이라고 표현하면서, 새누리당의 동참을 촉구했다.

    새정치연합 혁신위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및 이에 따른 의원정수 확대'를 "새정치를 위한 구현 노력"이라고 자평하면서, 새누리당이 여기에 동참하지 않거나 혹은 반대한다면, "개혁정당에 맞서는 수구정당이라는 국민적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한발 더 나아가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의원정수를 390명으로 늘리되, 세비는 50% 삭감하자"는 안까지 제시했다.

    그러나 야권 비노·비주류의 목소리는 이와 전혀 다르다. 새정치연합 조경태 의원은 같은 당 혁신위와 이종걸 대표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그는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비례대표제 폐지'를 역설했다. 조경태 의원은 "'비례대표제'가 본래의 취지를 잃은 채 계파정치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며, "구태정치의 온상으로 전락한 비례대표제를 폐지하고, 의원 정수를 줄여야 한다는 데 여야 모두 동의해 줄 것"을 촉구했다.

    이어 그는 "공천헌금을 내고 비례대표에 당선된 분들이 국회에 입성한 사례는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많고, 당 대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천권을 휘두른다"며, 비례대표제의 폐해를 신랄하게 지적했다.

    조경태 의원은 "이런 상황에서 의원 정수를 확대하겠다는 것은 국민들의 정서와 너무나 동떨어진 황당한 주장"이라며, "자기들 마음대로 안하무인식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원정수 확대 안건을 먼저 띄운 새정치연합이 내부 교통정리에 실패하면서, 지난달 국회 정개특위는 별다른 갈등 없이 지나갔다. 문제는 이달이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어떻게든 이 문제에 대해 합의를 해야 하는 상황이란 점을 은근히 강조하면서, "현실적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합의를 해야 한다면, 결국 의원정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하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여론마저 우호적인 방향으로 흐른다면, 의원정수 확대는 새정치연합이 원하는 대로 결론이 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의원정수 확대에 대한 여론이 매우 부정적이고, 가까운 시일 내 이런 분위기가 바뀔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 새정치연합의 바람대로 그림이 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새정치연합도 내부적으로는 국민들의 여론이 상당히 부정적이란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지난 해 12월 11일 새정치연합 민주정책연구원 한상익 연구원은 '권역별 정당명부비례제의 현실적 도입 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의원정수 확대 반대 비율이 거의 90%에 달한다"며, "현 단계에서 국회의원 정수 확대를 추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통일을 대비해야 하는 우리의 특성상, "의원정수 확대를 논하는 것 자체가 근시안적"이란 비판도 거세다.

    우리 헌법과 국회의원 정수에 관한 입법역사를 돌이켜 볼 때, 통일 전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정수는 200석 정도로 묶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정수에 관한 우리의 입법 역사는 북한이라는 미수복지구에 유보된 의석을 전제로 하고 있다.

    실제로 통일이 이뤄지면 인구비례에 따라 현재의 50%에 해당하는 의석 확대가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을 감안한다면, 현재 300명의 의원정수도 작은 규모가 아니다.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은 지난달 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통일한국은 인구 8,000만 명 수준에서 의원 정수는 450명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면서 이인제 의원은 미국의 인구수 및 하원 의석수와 비교했을 때 통일 한국의 예상 의석수는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대한민국은 그 특성상 통일을 준비해야 하는 국가인데, 지금부터 국회의원이 너무 많으면 곤란하다"며, "의원 정수가 많은 것이 과연 국민에게 유리할 것인지 국회의원들의 깊이 있는 고민이 어느 때 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